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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시각장애 아이들의 손끝 감각과 상상력에 묘한 ‘감동’[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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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끼리를 만지면
엄정순 지음
우리학교 | 52쪽 | 1만6800원

불교 경전 <열반경>에는 앞을 못 보는 이들에게 코끼리를 만지게 하는 왕이 나온다. 각기 다른 부위를 만지고 자기가 생각하는 코끼리의 생김새를 말하는 이들에게 왕은 말한다.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각자 자기가 아는 것만으로만 말한다. 진리도 그와 같으니라.” 자기가 아는 세계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시각 예술가 엄정순에겐 이 이야기가 유독 특별하게 다가왔다. ‘본다는 것’의 의미는 그의 오랜 화두였다. 그의 궁금증은 곧 미술 프로젝트 ‘코끼리 만지기’로 이어졌다. 시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코끼리를 상상해 보고 직접 찾아가 만져본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코끼리를 만지면>은 이 일련의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낸 논픽션 그림책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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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는 코끼리를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코끼리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코끼리는 코가 길어.” “땅 위에 사는 동물 중에 가장 커다랗지.”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코가 크다고요? 수도꼭지에 매달린 호스처럼요? 아니면 윙윙 소리 나는 진공청소기랑 닮았겠네요.”

아이들은 직접 태국 치앙마이로 날아가 코끼리를 대면한다. 손끝에 닿은 코끼리 피부에는 주름이 많다. 코는 기다랗고 다리는 두껍고 묵직하다. 그간의 상상과 직접 만난 코끼리를 더해 아이들은 저마다의 코끼리를 만들어낸다. 아무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누가 봐도 코끼리임이 틀림없는 무언가다. 손끝의 감각을 시각 이미지로 형상화한 이 코끼리들은 묘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는 말한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낯선 존재에 공감하는 힘과 생각하는 힘, 즉 상상력의 결과물입니다. 창조의 세계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결핍도 무거워하지 않습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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