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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세계화의 손익 변화와 그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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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제가 정치를 규정한다는 기계적 ‘경제 환원론’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치적 행위의 근간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다고 믿는 편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란도 ‘경제가 사회 구성원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할 수 있는 과실’을 제공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세계화의 역풍’으로 이름 붙이고 싶다.

8년 전 영국의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세계화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행한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다. 영국의 공업 지대와 러스트벨트로 불리는 미국의 제조업 지대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세계화의 피해자였다. 그들의 경제활동은 훨씬 가성비가 높은 중국 노동자들로 대체됐고, 선동가들은 쇠락한 이들의 정치적 대변자가 됐다.

오래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0년 총선이었다. 부산에서 출마한 한 정치인은 정치적 반대자의 집권에 따른 지역 홀대로 ‘부산의 신발산업이 망했다’고 주장했다. 동의하기 힘든 주장이었다. 한국의 신발과 의류 등 경공업이 쇠한 것은 중국 때문이었다. 수출 금액 기준 한국 신발산업의 정점은 1990~1991년 즈음이었다. 1990년 40억달러로 정점을 찌고 1991년에도 35억달러를 기록한 한국의 신발 수출은 1992년부터 급감했다. 1992년 29억달러(전년 대비 -18%), 1993년 20억달러(-30%)로 줄어드는 등 추락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의 원화 약세로 한국의 수출이 회복세를 보인 1998년에도 신발 수출은 전년 대비 21% 감소한 4억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한국은 중국과 1992년 수교했는데, 그 즈음부터 중국은 글로벌 자본주의 분업 체제에 급속도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대중교역 압도적 흑자시대 가고

한국의 경공업은 세계화 초기 국면부터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1990년대 이후 세계화의 전 시기에 걸쳐 한국 경제의 전체적 손익은 압도적인 플러스였다. 일부 업종의 피해가 있었지만, 한국은 세계화 시대의 최대 수혜 국가였다. 우리 시대의 세계화는 중국을 빼놓고 설명하기 힘든데, 중국과의 교역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효자 노릇을 해왔다. 1992년 수교 이후 2022년까지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흑자 누계는 7068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한국 전체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7688억달러였다. 전체 무역수지 흑자의 91%가 중국으로부터 나왔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중국에 수출해 번 돈으로 살아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 수교한 이후의 무역수지를 2022년까지 집계한 데는 이유가 있다. 2023년부터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됐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2022년 5월부터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2022년 전체 대중 무역수지는 흑자)했다. 2022년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28개월 중 두 달을 제외한 26개월이 적자를 기록했다. 이 기간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293억달러에 달한다.

기업이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면서 무역수지가 대외교역 활동을 100% 설명하지는 못한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 법인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무역수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경제 전반으로는 경상수지가 무역수지보다 중요한 개념이다. 다만 대중 무역수지 적자를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이 맺어왔던 손익관계가 바뀌고 있다는 증표로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계량적 수치가 아니더라도 중국과 다른 국가가 맺어왔던 손익관계 변화를 증명하는 일이 요즘 너무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걱정은 꼭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진 데서만 비롯된 게 아니다. 창신메모리(CXMT)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기존의 D램 분야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탓도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약진은 놀랍다. 전통의 일본 자동차 업체 혼다와 닛산의 합병 추진과 독일 폭스바겐의 공격적인 구조조정도 중국 자동차의 부상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울산 디스토피아 위기감은 커져

글로벌 과잉투자의 본산인 중국에서 흘러나오는 덤핑 물량도 다른 나라들을 옥죄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 태양광,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의 분야에서 중국발 공급 과잉이 감지되고 있다. 이래저래 우리는 중국 포비아(공포증)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요즘 한국 경제가 겪는 어려움은 세계화의 후퇴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세계화 과정에서의 국가 간 손익관계 변화에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기축통화국으로서 온갖 혜택을 누려온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반칙이지만,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적 조치가 없었더라도 중국으로부터 다른 나라들이 누렸던 수혜가 유지됐을 것 같지는 않다.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특정 산업의 피해’를 중간재 생산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 교역 흑자’가 압도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고, 이는 1%대로 향하고 있는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수직낙하로 나타나고 있다. 스웨덴 조선업의 쇠락을 상징하는 <말뫼의 눈물>(극화돼 연극으로 공연)은 미국 중부의 제조업 퇴조 과정에서 비루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다룬 <힐빌리의 노래>(트럼프 2기 행정부 부통령 J D 밴스의 회고록)를 거쳐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지역문제에 천착하는 양승훈 교수의 저작)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경제적 불안은 매우 유동적인 정치 지형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기회를 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일원이 경제적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재정이 최소한의 버팀목 역할을 해줘야 한다. 시장의 결핍을 정부가 채워주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이 격화할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경제 운용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중국과 경쟁하면서 공급과잉인 산업에 경제적 자원이 흘러가도록 용인해서도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매몰비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돈이 흘러가도록 해야 하지만, 그 대상이 뚜렷하지 않다면 당장은 새는 돈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경향신문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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