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우선주의 정책, 각국이 성토하고 비방하지만
세계 도처 국제정치적 난제들 트럼프 희망대로 해결되는 중
중동은 이스라엘로 권력 몰리고 유럽은 너도나도 국방비 증액
이제 美는 대중 패권 경쟁 집중… 우리만 친중 굴종할까 두렵다
가장 큰 변혁의 현장은 오랜 대립의 역사로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중동 지역이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강렬한 친이스라엘, 반이란 성향을 띤 트럼프 대통령이 미처 취임도 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앞장서 중동의 친이란 세력을 소탕 중이다. 이스라엘이 지난해 하마스와의 보복 전쟁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대다수 중동 전문가는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시리아 등 친이란 세력의 협공으로 이스라엘이 큰 위기에 처하리라 예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군사력 앞에 맥없이 몰락했다. 북한에 버금가는 잔혹한 독재 정권이라는 시리아의 친이란 아사드 정권도 지난주 반군 세력에 의해 소멸했다. 이제 세력권을 잃고 홀로 남은 이란 핵 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여부만이 남은 현안이다.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나토 탈퇴와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막으려는 유럽 국가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1990년대 냉전 체제 종식 이후 처음으로 유럽의 재무장과 국방 예산 증액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간 휴면 중이던 유럽의 무기 산업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나토 전체 군사비를 70%나 부담하고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3500억달러를 지출하는 동안 유럽의 지출액은 1000억달러에 불과한 불공평성을 비판한다. 미국이 나토에 잔류하려면 유럽이 안보 무임승차에서 탈피해 미국과 동등하게 지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토 회원국들은 이에 부응해 GDP 대비 국방 예산을 현재의 2% 미만에서 3%로 증액하고 종전 후 우크라이나에 유럽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다.
중동과 유럽의 이 같은 선도적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대로 대외 군사 개입을 줄이고 대중국 패권 경쟁에 군사력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의 도래를 의미한다. 제반 상황은 제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보다 미국에 한결 유리하다. 당시엔 중국이 2027~2028년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 경제 대국에 등극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어서 미국이 시간에 쫓기는 처지였으나, 그간의 대중국 경제 봉쇄와 중국의 연이은 경제 정책 실패로 이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또한 당시엔 독일, 이탈리아, 한국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 일부가 미국의 적국인 중국과 밀착하는 일탈적 외교 행태를 보였으나, 현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냉전의 도래를 계기로 자유 민주 진영의 총결집이 이루어진 상황이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전개해 나갈 대중국 패권 경쟁은 경제적으로는 관세 전쟁과 공급망 통제를 통한 디커플링, 군사적으로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견제라는 형태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미국의 그런 대중국 견제는 중국의 패권 도전 잠재력이 소멸할 때까지 장기간 계속되겠지만, 특히 2026년 전후로 예상되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외교·군사적 움직임이 활발할 전망이다. 한국은 대만 문제에 개입되기를 원치 않겠지만, ‘상호 방위’ 의무를 지닌 미국의 동맹국이자 주한 미군의 대중국 전초기지 소재지로서 미·중 대결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한국은 갑작스러운 국내 정치 혼돈으로 손발이 묶인 상황이다. 미·중 대결의 시대에 임하는 큰 틀의 전략적 결단은 물론, 눈앞에 닥친 방위비 분담금 문제, 주한 미군 감축 문제, 미·북 정상회담 문제 등에 대한 대응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그 혼돈의 터널 끝자락엔 더욱 큰 외교적 재앙의 싹이 도사리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삼엄한 체스판 위에서, 어쩌면 한국은 국가 정체성과 동맹 의무를 망각하고 또다시 친중 굴종 외교로 회귀하는 정치적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리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외교적 일탈을 과거처럼 참고 방치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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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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