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삼성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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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한달 앞두고 SK하이닉스가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 수령을 확정 지은 가운데 삼성전자도 미 상무부와 막판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중장기적으로 수십조원 규모에 이를 수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설비 투입 규모와 가동 시기 등에 따라 지원금 액수가 달라질 수 있어 상황이 복잡하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현재 파운드리 기술력과 투자 기조로 봤을 때 인텔과 마찬가지로 보조금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삼성전자 앞서 올 연말 정기 인사를 통해 파운드리 사업부에 대한 쇄신에 나섰지만, 지난해 내내 3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수율 부진에 시달렸으며 2나노 공정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첨단 생산라인 유치를 원하는 미 정부의 눈높이에 맞는 규모의 설비투자를 단행하기엔 리스크가 크다.
◇ 美, 주요 반도체 기업과 보조금 협의 완료…남은 건 삼성뿐
미 상무부는 19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SK하이닉스에 최대 4억5800만달러(약 6650억원)의 직접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상무부는 “이 보조금은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는 SK하이닉스의 38억7000만달러(약 5조6000억원) 규모 사업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대 5억달러(약 7260억원)의 정부 대출도 지원한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SK하이닉스에 앞서 인텔, 마이크론, TSMC 등과 보조금 지급 최종 계약에 사인했다. 인텔에는 78억6500억달러(약 11조4150원), TSMC는 66억달러(약 9조5790억원), 마이크론에 61억6500만달러(약 8조9500억원)의 보조금을 주기로 확정했다. 이번에 확정된 SK하이닉스의 보조금 지급 규모는 지난 8월 체결한 예비 양해각서 금액(4억5000만달러)보다 소폭 늘어났다.
이로써 미국 내 설비투자를 발표한 세계 5대 반도체 제조업체 중 아직 삼성전자만 최종 보조금을 확정 짓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미국에 450억달러(약 65조3270억원)를 투자하기로 하고 64억달러(약 9조2900억원)의 보조금을 받는 예비 양해각서(PMT)를 체결한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집행 과정은 기업들과 예비 양해각서를 작성한 뒤, 현장 실사 등을 거쳐 최종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이 순서다. 최종 계약서에 사인을 했더라도 실제 보조금 집행은 상무부와 개별 업체 간 협약에서 설정한 지표에 도달한 경우 이뤄진다.
이번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SK하이닉스는 불확실성이 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첨단 반도체 패키징 생산 공장을 지어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메모리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주요 고객사는 엔비디아, AMD 등이 될 전망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사정이 다르다. 텍사스주 테일러에 4나노 이하 공정의 파운드리 팹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골격 공사를 끝낸 이후 속도를 당초 목표보다 늦추고 있다. 미국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HBM과 달리 삼성전자는 수주형 산업인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인데, 미국 핵심 고객사인 엔비디아, 퀄컴, AMD 등과의 수주 계약이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 역시 SK하이닉스보다 삼성전자가 11배 이상 크다.
◇ 美 “테일러 공장 가동 서둘러라”… 삼성전자는 ‘과잉 투자’ 우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일대에 짓고 있는 TSMC 팹./TSM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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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도체법은 2020년 미국반도체협회(SIA)가 자국 내 최첨단 칩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없다는 위기론을 제기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1990년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의 37% 비중을 차지하던 미국이 2020년 12%로 급감했으며, 특히 최선단 공정의 경우 대만, 한국 등에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다. 즉 반도체법은 가장 높은 수준의 칩 생산시설을 미국 본토에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유도하기 위해 삼성전자, TSMC 등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문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상황이 10년 전과 다르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2014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TSMC와 최첨단 공정을 놓고 선두 경쟁을 다퉜지만, 지난 3년간 5나노, 4나노, 3나노 모두 수율 확보에 실패하며 분기마다 조 단위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당 2500억원이 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포함해 중장기적으로 생산라인 하나에 최소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설비투자는 수주형 사업인 파운드리 사업의 특성상 악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미 상무부가 벌이는 보조금 논의의 주된 포인트 역시 테일러 공장에 투입되는 설비 규모와 본격 가동 시기 등에 대한 입장 차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공장을 완공해 가동하길 바라는 미 상무부 측과 3나노, 2나노 등 최선단 공정이 안정화할 때까지는 설비투자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싶은 삼성전자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 부연구위원은 “삼성전자보다 더 늦게 투자를 발표한 곳들도 보조금을 확정 짓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상무부의 협의가 길어지고 있다”며 “당초 양해각서 수준에서 얘기했던 보조금과 현 단계에서 논의되는 보조금에 차이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美·삼성, 최종 계약은 확정적… 문제는 시기와 보조금 규모
미 상무부는 반도체법 보조금 예산을 바이든 행정부 임기 내에 최대한 소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상무부가 삼성전자와의 최종 계약을 일부러 시간을 끌며 미룰 이유는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법이 ‘초당적 법안’이라고 강조하며 “보조금 지원을 통해 미국은 세계 그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방식으로 AI 하드웨어 공급망을 공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장기 전략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와 최후 협상을 이어가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내건 보조금 지급 기준이 과하다고 판단할 경우 삼성전자 입장에선 과감하게 트럼프 행정부와 재협상한다는 전략을 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삼성전자는 이미 테일러시에 공장을 짓고 있는 데다 지방정부와도 용수 지원, 사용세 면제 등의 협약을 맺은 상태”라며 “미국 투자 계획을 백지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보조금 기준이 되는 세부 지표를 바이든과 트럼프 중 어떤 행정부에서 논의하는 게 더 이득일지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현재 내부적으로 미 상무부 측과 계속해서 보조금 규모와 투자 방식을 두고 논의 중이며, 조만간 삼성전자 역시 최종 계약서에 사인하게 될 것”이라며 “불확실성을 피하고자 바이든 행정부 임기 내 체결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트럼프 행정부로 넘어가게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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