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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서울 집값 잡았던 1기 신도시… 6년 뒤에도 구원투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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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33년 만에 재건축’ 1기 신도시의 과거-현재-미래

부동산 시장 과열된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 주택 200만 채 공급

1991년 입주 시작하자 집값 안정… 쾌적한 환경으로 인기 끌었지만

자족력 약해 서울 의존도 높고, 부족한 대중교통도 한계로 작용

지난달 재건축 선도지구 13곳 발표… 3만6000여 채, 2030년 입주 목표

공사비 인상-이주대책 등 과제 산적

동아일보

《재건축 첫발, 1기 신도시의 미래

지난달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 5곳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에 돌입할 ‘선도지구’가 선정됐다. 1기 신도시는 서울 집값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3년 만에 재건축 첫발을 뗀 1기 신도시의 미래는 어떨까.

정부가 지난달 27일 1기 신도시 중 가장 먼저 재건축에 돌입하는 선도지구 13곳을 선정했다. 1991년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재건축 사업의 첫발을 뗀 것이다. 정부 목표대로 2030년 입주가 시작되면 1기 신도시 조성 이후 39년 만에 ‘시즌2’가 열리게 된다. 아파트 위주 주거 환경을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1기 신도시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현재와 미래의 모습까지 함께 살펴봤다.》


“100만 채나 200만 채처럼 딱 떨어져야지 어중간하게 150만 채가 뭡니까.”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민주정의당 대선 후보 시절 선거캠프의 한 참모가 주택 150만 채 공급안을 제시하자 200만 채로 확대하라며 이같이 질책했다. 200만 채 중 30만 채가 집중된 1기 신도시(경기 성남 분당, 고양 일산, 안양 평촌, 군포 산본, 부천 중동)는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1988년 대통령에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 주택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곧바로 200만 채 건설에 나섰다. 1989년 4월 주택관계장관회의에서 그는 “30평 아파트가 1억 원을 넘고, 대형 아파트 평당 가격이 1000만 원 이상인 것은 방치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서민들의 미래와 꿈을 빼앗아가고, 좌절감을 안겨주는 이런 부동산 투기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겠다”며 1기 신도시 사업의 의미를 강조했다.

● 과거: 집값 잡으려 시작한 1기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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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서울 강남의 한 은행에 분당 시범단지 아파트 청약을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가득찼다. 동아일보DB


1기 신도시를 추진한 배경은 집값 급등이었다. 1980년대 말은 국내 부동산 역사에서 ‘2차 급등기’로 불릴 만큼 시장이 과열됐다. 1986∼1988년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이 이어지면서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8%에 달했다. 풍부한 유동성은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렸다. 전국 집값 상승률은 1988년 13.2%, 1989년 14.6%, 1990년 21.0%에 달했다.

투기꾼들도 판을 쳤다. 1977년 3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목화아파트 분양 경쟁률은 당시 최고치인 45 대 1이었다. 뒤이어 분양한 여의도 화랑아파트 경쟁률은 70 대 1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해당 아파트 당첨자 중 3분의 1이 무자격자로 드러났다. 문희갑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로서는 (집값 문제가) 체제 붕괴 위협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주택 200만 채 건설을 추진하기로 하고 신도시를 물색한 것”이라고 했다.

엄청난 속도전이었다. 1989년 3월 청와대를 비롯해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개발공사 등에서 차출된 직원들로 ‘주택건설기획단’이 구성됐다. 1989년 4월 신도시 건설을 발표한 후 7개월 만인 11월 분당 시범단지(4030채)가 분양에 나섰다. 첫 입주는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1991년 9월 시작됐다. 이어 1992년 3월 평촌, 4월 산본, 8월 일산, 1993년 2월 중동에서 차례대로 입주 대열이 이어졌다.

첫 입주민은 우유 배달로 모은 돈으로 분양에 당첨된 40대 부부였다. 부부가 분양받은 32평형 분양가는 약 5000만 원.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부부는 왜 새벽에 입주하냐는 물음에 “처음으로 내 집을 갖는다니 마음이 설레서 우리 둘 다 밤새 한숨도 못 자다가 날이 밝자마자 왔다”고 했다.

속도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부작용도 많았다. 1991년 여름 발생한 불량 레미콘 파동은 신도시 입주가 마무리된 1996년까지 이어졌다. 1991년 5월 평촌 어느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한 직원이 1주 전 타설한 콘크리트가 망치로 내리칠 때마다 부스러지는 것을 발견했다. 평촌 내 다른 아파트는 바닥 강도가 기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어 놓은 아파트를 헐고 다시 건설하는 일도 있었다.

● 현재: ‘천당 아래 분당’이지만 자족력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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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신도시는 쾌적한 주거 환경으로 200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1970년대 지은 서울 노후 아파트를 팔고 1기 신도시로 옮기는 이주 수요가 본격화됐다. 특히 서울 강남권과 접근성이 우수한 분당은 인기가 높아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1기 신도시는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됐다. 1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1년 서울 집값은 1986년 이후 처음으로 하락(―0.5%)했다. 1992년 ―5.0%, 1993년 ―2.9%, 1994년 ―0.1%, 1995년 ―0.2% 등 집값 하락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전까지 이어졌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당시 1기 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한꺼번에 주택 공급을 늘린 것은 충격적일 정도의 공급 확대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1기 신도시는 자급자족력을 갖추지 못한 한계가 뚜렷했다. 입주 당시부터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베드타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1996년 2월 일산 입주자대표자협의회는 “신도시 건설 당시 정부가 약속한 자족 기능 유치가 지지부진하다”며 시행사인 한국토지개발공사를 상대로 15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결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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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을 제외하면 상업 및 업무지구 개발은 거북이처럼 더뎠다. 일산 대표 시설인 킨텍스(2005년)와 웨스턴돔(2007년)은 2000년대 중반이 돼서야 들어섰다. 중동·평촌·산본의 자족 기능은 일산보다도 떨어졌다. 각각 부천·안양·군포 기존 구시가지의 연장선상에서 일부 개발이 이뤄졌을 뿐이었다.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신도시다 보니 서울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해당 지역 거주민 가운데 신도시 외 서울·경기 출근 비율이 분당(52.4%)과 일산(56.1%)은 절반이 넘는다. 평촌(60.4%)과 산본(69.4%)은 더 높다. 게다가 ‘선입주 후교통’ 정책으로 아직도 대중교통 수용 능력이 부족해 승용차 중심 교통 패턴이 굳어졌다.

그나마 분당은 주요 공기업 본사가 들어서며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인근에 2기 신도시인 성남 판교까지 들어섰다. 판교에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분당은 강남과 가깝다는 매력 외에 ‘직주근접’ 이점까지 갖게 됐다.

● 미래: 고밀 개발 위한 산적한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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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경기 성남시 분당 신도시에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1991년 첫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는 2035년 준공을 목표로 재건축 절차에 돌입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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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발표된 1기 신도시 ‘1호 재건축’ 단지들은 8월 시행된 ‘노후 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받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선도지구 13곳의 총 주택 수는 3만5897채로, 1기 신도시 전체 주택(39만2000채)의 9.2% 수준이다.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가 목표다.

정부는 ‘얼죽신’(얼어죽어도 신축 선호) 시대에 고밀 개발을 통해 신규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완료되면 총 주택 수는 현재 39만2000채에서 2035년 53만7000채로 14만5000채(37.0%) 늘어난다. 정부가 169∼216%였던 기준 용적률을 300∼350%로 높여준 덕분이다. 신도시별로는 △분당 13만7000채→19만7000채 △일산 10만4000채→13만1000채 △평촌 5만1000채→6만9000채 △산본 4만2000채→5만8000채 △중동 5만8000채→8만2000채로 각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산적한 과제가 많다. 업계에서는 최근 공사비 급등으로 인해 가구당 분담금이 수억 원씩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분당을 제외한 나머지 신도시들은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아 재건축 수익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 않다. 특히 선도지구에 선정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공공 기여를 약속한 단지가 많아 사업성 확보가 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대규모 이주도 리스크 중 하나다. 정부는 19일 분당·평촌·산본 3곳에 대해 해당 지역 및 인근에 이주용 주택 7700채를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토부는 3만6000채 규모의 선도지구 이주가 시작되는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입주 물량을 파악해 보니 시장에서 공급이 예정된 물량으로 이주 수요를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토부는 이 기간 연평균 입주 물량은 7만 채인데 연평균 이주 수요는 3만4000채로 추산했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 지연, 고환율 등으로 공사비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계산해 놓은 주택 공급 속도가 현실과의 괴리가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예상보다 공급이 느린 상황에서 이주 수요가 한 번에 몰리면 특정 지역 전월세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도 있다.

1기 신도시 내 횡행한 ‘상가 쪼개기’가 향후 재건축 과정에서 갈등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대선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이 공약으로 다뤄진 후 분당 등 일부 지역에서는 상가 1실을 32개로 분할하는 등의 상가 쪼개기가 횡행했다. 1기 신도시는 통합 재건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파트 조합원과 상가 조합원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이런 고난들을 뚫어내고 새 단장을 마칠 1기 신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신도시뿐만 아니라 수도권 전체 부동산 시장의 미래가 이번 ‘메가 프로젝트’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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