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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총리 불신임도 닮은 꼴…독일·프랑스 정치위기, 여기서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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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양자회담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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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쌍두마차 격인 독일과 프랑스 사실상 정치 공백 상태에 빠졌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의회에 불신임당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하야 요구를 받고 있다. 두 나라의 리더십 실종 상황은 집권당과 연정 파트너 또는 야당과의 갈등, 경제 상황 악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나아가 기성 정치 엘리트에 대한 국민의 오랜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정책 갈등에 리더십 위기 촉발



숄츠 총리는 2021년 12월 이른바 ‘신호등 연정(Ampelkoalition)’을 꾸려 내각을 출범했다. 독일은 한 정당이 과반을 쉽게 점하지 못하게 제도가 짜여있어 다수당이라고 해도 소수당과 합종연횡을 하지 않으면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 숄츠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당(SPD)은 중도 우파인 자유민주당(FDP), 좌파 녹색당(grüne)과 손을 잡았다. 경제적으로는 사민당의 중도진보와 자민당의 자유주의를 절충하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진보적인 경향을 보이는 조합이다. 이들 정당의 상징색인 빨강, 노랑, 초록에서 신호등 연정이란 말이 생겼다.

3년간 잘 굴러가는 듯했던 신호등 연정이 붕괴한 1차적 원인은 경제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전 발발, 러시아의 원유 및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물가상승에 시달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산 전기차가 급성장하면서 독일차가 휘청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민당 노선에 충실한 숄츠 총리는 독일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과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쓰려했다.

그러나 자민당 출신의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이 건전재정과 기업 감세를 주장하며 맞섰다. 린트너 장관은 이전부터 국가부채 감축을 전면에 내세우던 정치인이었다. 숄츠 총리는 처음에는 린트너 재무장관과 타협을 시도했지만, 결국 감정이 틀어지면서 “이기주의자”라는 맹비난과 함께 린트너 장관을 해임했다. 그러면서 연정도 붕괴했다.

프랑스가 정치적 혼란에 빠진 주요 원인도 경제 때문이다. 지난 9월 취임한 미셸 바르니에 총리는 프랑스의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사회복지 지출 감소를 기조로 하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예산안은 원내 1당인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과 3당인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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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명 총리로 기록된 미셸 바르니에 전 프랑스 총리.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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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니에는 이런 상황에서 설득 보다 권한행사를 택했다. 지난 2일 프랑스 헌법 조항을 발동해 직권으로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 법안인 사회보장 재정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프랑스 헌법 제49조3항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국무회의의 승인을 받은 법안을 총리가 의회 투표를 거치지 않고 통과시킬 수 있는 권한을 두고있다. 그러자 야권 역시 바르니에 총리에 대한 불신임을 통해 입법을 무산시켰고, 내각이 붕괴됐다.

불신임안 가결로 바르니에 총리는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1958년) 이후 최단명 총리로 남게 됐다. 어떤 면에서 바르니에 총리의 운명은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가 주도하는 중도연합(앙상블)은 지난 7월 조기 총선에서 대패해 원내 2당으로 주저 않고, 신민중전선이 1당을 차지했다. 통상적으로는 1당이 추천한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관례를 깨고 중도 우파계열인 공화당 출신의 바르니에를 총리로 발탁했다. 이에 분노한 신민중전선이 시시콜콜 딴지를 걸었음은 물론이다. 신민중전선은 내친김에 마크롱 대통령의 하야도 요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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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시위 중인 프랑스 노동조합원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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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치 엘리트에 대한 서민 반감



이처럼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경제정책을 둘러싼 연정 내부 혹은 야당과의 갈등이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성 정당 등 사회 엘리트들이 추진하던 정책에 대한 노동자·서민층의 반감도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그동안 이민자 수용 정책을 펼쳤는데, 대중 사이에선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치안이 불안해진다는 불안감이 널리 퍼졌다. 이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에선 반이민을 내세운 독일대안당(AfD),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이나 국민연합(RN)이 강력한 지지세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엘리트들이 추진한 ‘다양성 정치’와 ‘정체성’ 정치에 대한 환멸도 크다. 독일의 신호등 연정은 진보적 사회문화 정책 기조 아래, 성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도록 한 성별 자기결정법을 입법했다. 이 법에 따라 독일인은 언제든 ‘남자, 여자, 다양성, 기재안함’ 가운데 하나로 성별을 정할 수 있게 됐다. “여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법”, “성별 사기다”라는 비난이 잇따르고, 독일 내에서도 논란이 됐지만 숄츠 총리는 “이 법으로 독일이 더 현대적인 나라가 됐다”며 옹호했다. 현재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독일대안당은 다음 총선 이후 이 법을 폐지하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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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성별 자기결정법에 반대하는 독일의 여성단체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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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경기 침체가 겹치며 노동자·서민층이 정부와 여당을 흔드는 야당에 과감히 표를 던지면서 리더십 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대니얼 해밀턴 존스홉킨스대 외교정책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 위기에 대한 언론 인터뷰에서 “좌파든, 중도든, 우파든 기득권층이 서민 유권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전에 국가로부터 받던만큼의 혜택을 이제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서민들이 생각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리더십 불안에 유럽 분열 심화



독일과 프랑스의 정국은 언제쯤 안정화될까. 독일은 정권교체 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이미 선거 모드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 14일 발표된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 기민·기사 연합 32%, 독일대안당 19%, 사민당 17%, 녹색당 13%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기민·기사 연합이 1당을 잡은 후 다른 정당과 연정을 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느 정당과도 손을 잡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독일대안당은 극우로 의심받아 연정을 꺼리고 있고, 녹색당은 정책 차이가 크다. 사민당과 연정을 하는 법이 있지만, 성별 자기결정법 등 사회문화 정책에서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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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민당 대표.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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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불안정한 정국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야당의 하야 요구를 거부하고 지난 13일 프랑수아 바이루 민주운동 대표를 새 총리로 임명했지만, 야권은 벌써부터 “총리를 불신임하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독립 싱크탱크인 외교협회의 마티아스 마티 선임 연구원은 “독일과 프랑스의 상황으로 유럽에 리더십 공백이 생김에 따라, 개별 유럽국가들이 (유럽연합을 제치고) 도널드 트럼프와 직접 협상을 하려들 것”이라며 “유럽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할 상황에서 분열이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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