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집회에 참가한 청년 여성들이 윤석열 탄핵과 즉각 체포를 요구하며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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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일만큼 읽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 읽고 사는 일만큼 목소리 내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12·3 내란 발생 이후 약 2주간의 숨가쁜 시간 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읽던 책을 덮어둔 채 국회 앞 광장으로 뛰쳐나와 한목소리로 계엄 해제와 탄핵을 외쳤다. 시민들의 두려움 없는 지지에 국회는 불법 계엄 선포 3시간여 만에 계엄 해제 요구안을 적법하게 통과시켰다. 나흘 뒤 표결에 부쳐진 내란 수괴(우두머리) 윤석열의 첫 탄핵소추안은 여당의 불참 당론으로 불성립되었지만 일주일 후 상정된 두번째 탄핵소추안은 천만다행으로 재석 300석에 찬성 204표로 가결되었다. “가결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힘차게 세번 내리침으로써 시한폭탄 같았던 내란 수괴 윤석열의 직무는 마침내 정지되었다.
계엄 선포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내내 국회 앞 광장을 지킨 이들 가운데 유난히 도드라진 것은 색색의 응원봉을 손에 쥔 2030 여성이었다. 집회에 다녀온 이들은 입을 모아 광장을 가득 메운 2030 여성의 존재를 증명했다. 비비시(BBC) 코리아는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토대로 첫 탄핵안 표결일인 12월7일 오후 4시 기준 집회 참가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20대 여성(17.7%)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8년 전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에스엔에스(SNS)에는 케이(K)팝에 맞춰 빛나는 응원봉을 흥겹게 흔드는 청년 여성들의 모습을 기특하다고 상찬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와 ‘2030 여성은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고 응수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공존했다. 청년 여성과 응원봉, ‘다시 만난 세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계엄 해제와 탄핵 가결은 의사봉과 응원봉이라는 2개의 봉이 함께 만들어낸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쾌거다. 그러나 이 2개의 봉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다.
청년 여성들은 당사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계엄으로 만들어진 탄핵 광장 이전에도 늘 광장에 있었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살인 추모집회와 2018년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 2020년 ‘엔(n)번방 방지법’ 제정 촉구 시위,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 피해자 추모집회, 2024년 딥페이크 성착취 규탄 집회 등 2030 여성들은 늘 광장에 모여 외쳤다.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을 없애야 한다고. 페미니스트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공격을 막아야 한다고.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고, 황당한 집게손가락 마녀사냥을 멈추고, 비동의 강간죄를 제정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남녀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불법 성착취물의 온상인 글로벌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고,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장의 의사봉은 이 외침에 굳게 침묵했다.
청년 여성들이 손에 쥔 소중한 응원봉과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의 권력자 국회의장이 손에 쥔 의사봉이 윤석열 내란이라는 역설적인 계기로 마침내 극적으로 서로를 만난 이 시점에 나는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칼럼집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와 여기 수록된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는 글을 생각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9일에 발표된 이 글에서 권김현영은 ‘촛불광장’에 있었던 여성혐오적인 장면과 그 장면을 문제제기하고 바꾸어내는 장면을 묘사하며 “억눌렸던 목소리가 나오고, 그 목소리들이 갈등하고 반목하지만 그다음 주에 다시 광장에서 만나는”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힘 있는 정치적 장면”이라고 평가한다.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그런 불완전한 상태를 견뎌내는 능력치가 커지며 ‘불완전함이 지속 가능해지는 것’이 시민의 성숙이자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은 안타깝다. “하지만 대선이 시작되면서 그토록 다양했던 광장의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주권자는 사라지고 유권자가 남았습니다. 정치가 아니라 전략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표 계산이 남았습니다. 꽤 익숙한 풍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광장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목소리들, 이런 장면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라진 목소리는 동등한 주권자로서 여성의 목소리를 뜻한다. 촛불광장의 주역이었던 여성들은 소싯적 돼지발정제 문제에 과도하게 화내는 사람들, 박근혜의 실정에 연대 책임을 지며 ‘향후 100년간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 책 세 권에 걸쳐 룸살롱 출입 경험을 자랑하고도 자리를 보전하는 청와대 행정관을 ‘그래도 되는 선’으로 용인해야 하는 사람들로 주변화된다. “촛불시민들의 광장민주주의가 어째서 룸살롱 연대로 바꿔치기된 겁니까. 페미니스트 정권이 되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 통렬한 2019년의 물음은 2024년 응원봉을 든 2030 여성들을 상찬하는 광장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겠습니까?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탄핵의 공은 국회에서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앞으로도 2030 여성들과 모든 시민들은 변함없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빛나는 응원봉 광장은 광장민주주의를 룸살롱 연대로 바꿔치기 당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페미니즘 있는 민주주의를 지금의 광장에 분명히 새겨넣어야 한다. 헌재가 윤석열을 심판하는 동안 국회는 민주공화국의 동등한 주권자로서 여성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개혁에 지금 착수해야 한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성평등과 민주주의를 진정 한걸음 더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 20%라는 민망한 현실을 넘어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응원봉을 들었던 20대 여성의 손이 그 시대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힘차게 의사봉을 두드리는 그날을.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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