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에게 듣는 한국의 민주주의'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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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오늘도 '민주주의 분야'의 세계적 석학 인터뷰 이어갑니다. 인터뷰 시리즈의 두 번째는 지난 2022년 '다시 쓰는 민주주의'라는 주제 아래 열렸던 SBS D포럼의 기조연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얀 베르너 뮐러 미국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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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베르너 뮐러 교수는 정치 이론, 특히 포퓰리즘 연구의 대가로 2022년 SBS D포럼에서는 '민주주의 위기 극복을 위한 필수요소'로 정당과 자유롭고 전문적인 뉴스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한국의 시위 문화, '권위주의 저항하는 방식의 표본' 될 것!"
Q.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은 지난 40여 년 많은 희생을 거쳐 민주주의를 쟁취해 왔습니다. 또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제 굳건하다고 믿어왔습니다. 다행히 2시간 반 만에 국회가 계엄령을 해제하고 11일 만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대한민국에서 21세기에 비상계엄이 선포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한국인들 모두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어떠셨는지요?
저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구조적인 이슈입니다. 대통령제 아래에서만 안 좋은 것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제의 경우 대통령과 입법부가 모두 국민으로부터 (자신이)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그 결과가 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꽤 있습니다. 대통령제는 구조적 취약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생각은 한국이 매우 강한 시위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받은 인상은 사람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연상할 수 있는 상징에 대한 일종의 레퍼토리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K팝과 관련된 형광 응원봉이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러한 시위문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반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정치 문화의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견이라는 것이 항상 즐겁거나 쉽게 용인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이러한 시위를 통해 '활기찬 민주주의 문화를 가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야'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모여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저는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독특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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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많은 사람들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히 거리로 나서는 (시민들의) 의지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실제 미국에서는 한국의 시위문화가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방식의 표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많은 논의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Q.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을 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전의 생각이 바뀐 것은 없으신가요?
어떤 민주주의도 악의적인 행위자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것이냐에 있을 텐데요. 오히려 한국의 정치 엘리트들, 여당의원 조차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당파적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태도로 제도가 상당히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2021년 미국에서는 탄핵 문제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공직을 맡을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화당원들이 민주주의보다는 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 대조적이었습니다.
또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군의 일부도 '우리는 이 일을 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다른 나라의 전례를 생각해 본다면 군 내의 이러한 분열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에 대해 다시 언급한다면 현재 펜타곤에서는 충성이 부족한 장성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잘 기능하는 민주주의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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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양극화보다 '의회 공격'이 더 우려스러운 트렌드"
Q. 2022년 교수님께서 SBS D포럼에 왔을 때도 저희가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에 대해 해법을 모색했었는데요. 이번 비상계엄도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많은 위기 상황에 정치적 양극화를 들이대는 경우가 있는데요. 많은 사회들이 깊이 양분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통은 시민 수준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경우를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엘리트 정치인들이 시민들보다 훨씬 더 양분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정치적 양극화를 이유로 들면 실제 그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양당제에서 양쪽 정당이 다 극단으로 가고 있나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한 정당만이 급진화되어 더 비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양쪽의 일정한 대칭을 암시하는 양극화와는 조금 다른 것이죠. 물론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답답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수파가 아닐 때는 더 그렇죠. 다수파는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막겠다'고 할 유인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뒤 유권자들에게 '봐 그들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어 그러니 우리에게 투표해'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거죠. 그럼에도 계엄 선포 같은 것이 이런 상황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우려스러운 경향은 매우 다른 상황에서도 전세계적으로 보이는 의회를 공격하려 하거나 의도적으로 의회를 훼손하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을 공격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내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나 한국의 경우처럼 최고 권력층에서조차 국회를 목표로 하고 국회에서 이뤄지는 일을 방해하려고 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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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인터뷰 중인 얀 베르너 뮐러 교수와 이정애 SBS 미래팀장>
Q. 교수님께서는 이전부터 민주주의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당'과 '자유롭고 전문적인 뉴스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었는데요. 혹시 이번 한국 상황과 관련해서 그 관점에서 언급할 내용이 있을까요?
저는 정치 정당들이 권위주의적 야망을 가진 지도자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려면 정당 내 민주주의나 민주적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한데 이렇게 되면 정당 내에 합법적인 야당처럼 기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를 보면 특히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자신의 정치 정당을 극도로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끄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헝가리의 오르반, 터키의 에르도안, 인도의 모디를 생각해 보세요. 물론 트럼프도 공화당을 인격 숭배와 가족 사업의 기묘한 혼합체로 변형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안된다'고 말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저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최근에 일어난 (한국의) 상황을 보면 그것이(정당 내 민주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자유롭고 전문적인 뉴스조직이 민주주의 기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미디어 생태계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측면의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더 많은 국가에서 폐쇄적인 우익 미디어 생태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뿐 아니라 정치적 적대자를 악마화하고 국민의 적이나 배신자로 설정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이것은 큰 위험이며 민주주의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봐왔습니다. 두 번째 안 좋은 소식은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들도 미디어의 중요성을 잘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더 교묘하게 직접적인 억압이나 검열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본질적인 제도들이 사실상 게임에서 제외되는 상황을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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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F2022 기조연사로 강연 중인 얀 베르너 뮐러 교수>
"대중의 목소리가 정치에 더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 필요"
Q. 이번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등의 상황을 겪으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우리의 정치체계를 더 강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드는데요?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하면 정치 엘리트들에게 더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다수의 시민들이 "우리는 민주주의를 끝내고 싶다"라고 말한 사례는 없습니다. 보통은 엘리트 계층에서 "우리는 이것을 끝내고 싶다"라고 결정하는 것이죠. 이들은 자신이 하려는 일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당신이 하려는 일을 용인하지 않겠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승인과 지지가 엘리트 계층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벨트(연결고리)를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더 많은 대중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이번에 시위에 참여한 많은 MZ세대들이 더 정치에 참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젊은 세대에게 많은 것이 걸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항상 투표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하지만 말입니다. 이들에게 정치참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이해시켜야 합니다.
젠더 같은 문제만 생각해도 미국의 예를 들면 (정치권 안에) 매우 남성중심적인 폐쇄적 우파가 우세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려스러운 일이고 저항할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정치에 더 열정을 갖게 하는 것은 분명히 나쁜 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안에서 갈등과 분열이 있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갈등을 처리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입니다. 강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 심지어 정체성이나 이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한 징후는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정치적 상대를 '국민의 적'이나 '배신자'가 아닌 정당한 상대로 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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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베르너 뮐러 교수와 인터뷰 중인 미래팀 이정애 기자, 류란 기자
Q. 조금 너무 나간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대통령제하에서 요즘 더 문제가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의원내각제든, 4년 중임제든 결선투표이든 개헌이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까 대통령제의 취약성에 대해 앞서 언급해주기도 하셨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두 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먼저 특정 개혁을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개헌에 관심이 있고 논의해보자 한다면 열린 과정을 통해 해야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럴 경우) 한 가지 해결책이 제시되곤 하는데 예를 들어 "더 많은 국민투표, 더 적은 국민투표, 이 선거제도, 저 선거제도"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것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시스템에서 잘 작동하는 것이 다른 시스템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당 시스템과 헌법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때로 민주주의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헌법은 종이 위에서는 아주 좋아 보이지만 정당 시스템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체를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는 이러한 문제는 분명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고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있다면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결국 제도 자체의 결함이 아닌 문제에 대해 기술적인 해결책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깊은 갈등,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구조적인 대립축'의 문제, 사회 내의 분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내 정상적인 갈등이 발전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법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제도적 해결책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법적인 해결책보다는 정치적인 묘안이 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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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얀 베르너 뮐러 교수께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물었더니 "메시지는 한국이, 한국의 용기 있는 대중들이 오히려 전세계에 주었다"고 말했는데요. 시민들이 대개는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비난하는 경우들도 있었는데, 어쩌면 한국처럼 중요한 순간에는 바로 그 사람들이 아래로부터 들고일어나 민주주의를 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탄스러웠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이정애 기자, 류란 기자
섭외 및 번역: 박준석 프로그램 매니저
*SDF 다이어리는 SBS 보도본부 미래팀에서 작성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관점이나 시도를 전합니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지식과 트렌드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매주 수요일 발송되는 SDF 다이어리를 구독해 주세요. →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
미래팀 sdf@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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