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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덮친 용의자는 사우디 출신 반이슬람주의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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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일(현지시각) 독일 마그데부르크 성 요한 교회 앞에 마련된 공식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차량 돌진 공격으로 숨진 이들을 위해 조의를 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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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센안할트주 마그데부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발생한 차량 돌진 사건으로 21일(현지시각) 기준 5명이 숨지고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의사인 용의자 탈렙 압둘모센은 반이슬람 성향의 극우주의자로, 독일 난민 정책이 독일을 “이슬람화”한다는 주장을 펼쳐온 것으로 나타났다.



옛 동독 지역이기도 한 작센안할트주는 이번 테러로 9살 어린이 한 명과 성인 4명이 숨졌고, 200명 이상의 부상자 중 41명은 중상이라고 밝혔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기 위해 인파가 몰린 금요일(20일) 저녁, 압둘모센은 렌트한 베엠베(BMW) 차량을 몰고 마켓 안으로 돌진해 약 3분간 400m 가량을 질주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현장 앞 트램 정류장에서 곧장 그를 체포했고,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등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수사 당국은 그가 단독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사건을 테러 공격으로 다룰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1일 사건 현장을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크리스마스 마켓만큼 평화롭고 즐거운 장소는 없다”며 “그렇게 잔인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는 것은 정말 끔찍한 행위”라고 말했다. 숄츠 총리는 “가해자의 행동과 그 동기를 완전히 이해한 뒤 필요한 법적 조처 등을 취해야 한다”며 부상자 규모를 고려할 때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압둘모센은 테러 발생 지점에서 약 40㎞ 떨어진 베른부르크(Bernburg) 지역에 살며, 심리치료 전문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고 독일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는 2006년 처음 독일에 들어와 영구 거주 허가를 받은 뒤 2016년 영주권을 얻었는데, 스스로를 “사우디 반체제 인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독일에 정착한 뒤엔 여러 소셜미디어 계정에 자신을 ‘여성의 권리에 관심이 많은 전직 무슬림’이라고 소개하며 사우디 난민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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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마그데부르크 크리스마스 마켓 현장 모습. 20일(현지시각) 발생한 차량 돌진으로 5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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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압둘모센의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낸시 페저 내무장관은 기자들에게 “범인이 이슬람 혐오주의자라는 사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그데부르크 검찰은 독일이 사우디 난민을 대하는 방식에 “불만”을 품은 것이 한 가지 동기가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수사 기관은 압둘모센이 범행 당시 마약을 복용한 것으로도 의심하고 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미 네 차례가량 독일 보안 당국에 압둘모센을 위험한 인물로 지목하며 경고를 보낸 것으로도 나타났다. 한 사우디 당국자는 워싱턴 포스트에 사우디 여성들이 종교를 버리고 독일에서 망명 신청을 하도록 부추겨 온 활동 때문에 압둘모센을 주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고 말했다. 압둘모센은 사우디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지원하는 웹사이트를 만들기도 했으며, 지난 2019년 독일 매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와의 인터뷰에선 자신을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이슬람 비판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점차 독일 사회나 정부의 난민 정책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다. 엑스(X·옛 트위터)에 4만3000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했던 압둘모센은 “나는 (서방의 좌파들이)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해 난민을 환영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을 이슬람화하기 위해 난민을 환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썼다. 또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2015년 난민들을 대량 받아들인 결정에 대해선 “유럽을 이슬람화하려 한다”며 그를 살해할 거란 위협이 담긴 메시지도 올렸다. 그는 자신이 독일 정부의 박해를 받고 있다고도 주장하며, 운영 중인 웹사이트엔 정부가 독일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독일에서 망명신청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범행을 저지르기 며칠 전 한 반이슬람 단체와 한 인터뷰에선 “독일을 비롯한 많은 서방 국가들이 자국의 이슬람화를 촉구할 뿐 아니라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억압을 피해 탈출한 합법적 난민들을 박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압둘모센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를 비롯해 영국과 네덜란드의 극우 인사와 일론 머스크를 지지하는 글도 자주 게시했다.



영국 킹스칼리지의 테러 전문가인 피터 노이만 교수는 자신의 엑스에 “이 일을 25년 하다보면 더 이상 놀라울 것이 없다”며 “하지만, 동독에 거주하며 ‘독일을 위한 대안’을 사랑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을 향한 독일의 관용을 처벌하고 싶어하는 50살의 사우디 출신 전직 무슬림은 내 레이더에 포착된 적이 없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한편 추모 분위기로 가득했던 이날 저녁 마그데부르크 광장에선 극우 단체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독일 네오 나치 정당의 깃발과 함께 수백명은 “우리가 국민이다”, “지금 당장 재이주를 실시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독일 쥐트도이체자이퉁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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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각) 독일 마그데부르크 크리스마스 마켓 앞에서 극우주의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재이주”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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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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