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3 (월)

억만장자도 공산당 앞에선 '일반 인민'…반년 만에 반토막 난 中 기술 기업들[테크토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예년 평균 대비 50% 축소한 투자금

경제 위기, 정책, 대외 리스크 합쳐져

당이 이끄는 혁신, 성공할 수 있을까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지난 9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개월간 중국 스타트업이 유치한 벤처 캐피탈(VC) 투자금은 과거 평균 대비 50% 감소했습니다. 중국 테크 신이 절정에 달했던 2021년 대비 82% 추락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혁신 생태계는 세계 2위였습니다. 하지만 VC 자금이 말라가는 속도가 전례 없이 가속하면서, 중국은 스타트업 천국이라는 지위를 위협받게 생겼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글로벌 VC 3강 中이 흔들린다

아시아경제

중국은 여전히 미국, 영국과 함께 글로벌 테크 VC 3강으로 꼽힌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6월까지 중국 스타트업이 유치한 VC 투자금은 총 260억달러(약 37조원). 여전히 세계 2위 자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미국(800억달러·약 116조원)과의 격차는 아득히 벌어졌으며 3위인 영국(100억달러·약 14조5000억원)과의 갭은 줄고 있습니다. 만일 지금의 자본 이탈 속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미·중·영으로 꼽히는 글로벌 혁신 생태계에서 언젠가 중국이 이탈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올해 스타트업들은 된서리를 맞고 있습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에서 VC 투자액이 줄었지요. 하지만 중국의 위축 속도는 유독 독보적입니다.

FT 등 외신은 수년간 이어진 미-중 기술 경쟁, 부동산 등 중국 본토에서 벌어지는 자산 위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정책 등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실제 미국 정부는 자국 VC의 중국 핵심 기술 투자를 방지하는 규제를 잇달아 도입했으며, 시 주석은 작년 일명 '빅테크 때리기' 정책으로 중국 테크주의 부진을 자초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중국 VC가 부진한 진짜 원인은 해외 큰 손이 아닌 자국 VC들의 위축에 있습니다.

미국이 키운 중국 테크 산업

아시아경제

미국의 대중 견제가 심화하면서 세쿼이아 등 중국 스타트업 씬의 초석을 닦은 미국 VC들이 이탈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테크 생태계는 분명 미국의 손에 탄생했습니다. 과거 세쿼이아 등 실리콘 밸리의 대표 VC는 더 높은 잠재 투자 수익률을 보유한 시장을 물색하다가 중국 인터넷 기업가들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미국 투자자의 자금을 받아 성장한 '1세대 중국 IT 기업가'들은 실리콘 밸리 전략을 그대로 모방했습니다.

기본급 대신 스톡옵션 등의 혜택으로 인재들을 대량 확보하는 운영 방식, 심지어 조세 회피 방식도 미국 기업들의 그것을 따라갔지요. 이런 1세대 IT 기업가들의 대표 격으로는 알리바바 그룹을 설립한 마윈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1세대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거머쥔 빅테크가 되고 난 뒤론, 국외 자본의 역할은 중국 자본이 대체했습니다. 중국의 IT 기업들은 풍부한 자본을 이용해 각자의 '액셀러레이터(창업 기획자)'를 세웠고, 이들이 중국 테크 생태계의 기초 양분이 됐습니다.

IT 억만장자도 공산당 앞에선 무력
그러나 중국과 미국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과 달리, 중국은 민간 산업 분야에도 국가의 영향력이 짙게 스며들었다는 겁니다.

마윈이 2020년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금융 규제를 '저격'하는 발언을 한 뒤 당국에 소환돼 여러 건의 조사를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후 앤트그룹(알리바바)의 기업공개(IPO)는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고, 마윈의 기업 지분은 50%에서 10% 미만으로 줄어 지배권도 박탈됐죠. 설령 수십조의 부를 일군 기업인이라고 해도 당 앞에선 '일반 인민'에 불과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아시아경제

알리바바 창업자이자 한때 중국 테크 성공 신화의 주역이었던 마윈.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당시 사건에 비춰, 중국의 테크 생태계가 '소멸'하는 게 아닌 '재조정'되고 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합니다. 미국, 영국 등 스타트업이 융성한 나라는 대체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에 집중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구글, 메타, 레볼루트 등 영미권 빅테크들도 소프트웨어 사업자들이지요.

하지만 중국 당국은 중국의 테크 생태계가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를, 비즈니스보다는 기술에 집중하길 원한다는 겁니다. 특히 미국의 대대적인 기술제재로 인해 '반도체 굴기'의 필요성이 절박해진 현시점엔 더더욱 그런 갈망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따라서 빅테크들은 액셀러레이터로 차세대 스타트업 리더들을 키우는 대신 내부 연구개발(R&D) 강화에 지출하고, 민간 투자자들은 인터넷 사업자가 아니라 전기차, 반도체, 기계 설비 등 제조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특히 제조업은 인터넷 사업보다 초기 자본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합니다. '큰 손'인 국가가 직접 투자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줘야 합니다.

민간은 물러나고 당이 앞서는 새로운 혁신 생태계

아시아경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이 물러나고 당이 앞서는' 새로운 혁신 전략은 양날의 칼입니다. 만일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테크 투자가 중국의 전략 기술을 융성케 한다면, 중국은 기술 자립을 이루는 걸 넘어 어쩌면 미국의 혁신 생태계를 추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공공 투자는 민간 투자보다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습니다. 시장이 아닌 당이 지휘하는 테크 생태계는 이전보다 경직적이고, 덜 혁신적인 이류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변화가 수반하는 리스크는 당장 중국에서 활동하는 민간 투자자들이 가장 선명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중국 자본 시장 분석 컨설팅사인 '로디움 그룹' 소속 카미유 불레노아 분석가는 미 금융 매체 'CNBC'에 "중국의 민간 과학기술 개발은 점점 더 정부의 우선순위와 '일치'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