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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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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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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신해철 형님이 돌아가신 지 10주기이다. 시간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친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1989년, 신해철 형님의 첫번째 밴드인 ‘무한궤도’의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말 그대로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었다. 500원짜리 노란 피아노 악보집도 사서, 악보가 삽화로 그려진 시집인 것처럼 가사를 읽어보기도 했다.



1번 트랙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가사 속 질문은 아직 어렸던 나에게 묘한 떨림을 주었다. 어린 나에게 ‘죽음’이란 주제는 추상적이고, 슬픈 동화 속에 나오는 별나라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졌었다. 아마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듣고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사유를 해봤던 것 같다.



​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이렇게 시작되는 곡이다. 학창 시절, 해가 짧아진 계절에 어둑해진 교실에서 워크맨 이어폰을 꽂으면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건네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신해철 형님의 이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직도 가슴이 떨리는 질문이다. 우리의 방황과 노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 신해철 형님은 논객으로서도 유명했다. 사이다 같은 발언으로 답답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 저 형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살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는 항상 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용감하게 부딪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를 가로막는 어두운 그 무언가에 부싯돌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쳐 반짝이며 어둠을 밝혔다. 우리가 몰랐던 진실을 볼 수 있도록 부싯돌처럼 세상과 부딪쳤던 것이다.



올해 돌아가신 김민기 선배님 생각도 난다. 김민기 선배님은 엄혹한 군사 독재 시절, 자유가 억압된 그 시절에도 청년 정신과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아침이슬’, ‘상록수’ 등의 음악으로 세상에 맞섰다. 민중들의 선택으로 독재와 맞서는 상징이 된 ‘아침이슬’ 때문에 김민기 선배님은 끌려가서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지 않았던 그는 시대의 상징이 되어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그는 치열하게 부딪치고 방황하고 행동하고 노래했다. 자유를 위해. 순수하고 연약한 눈꽃송이들을 곱게 뭉쳐서 세상에 던졌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외침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일이 있었고, 대한민국은 혼돈의 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 이 시국에 신해철 형님이나 김민기 선배님께서 살아계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 나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가사처럼 먼 훗날 지금을 돌이켜 봤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었다.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불안하고 흥분되는 마음이 침잠될 때까지 기다린 후 쓴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정말로 뉴스를 보니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불과 몇분 뒤 12월의 평온한 밤하늘을 부숴버리는 헬기 소리가 들렸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헬기들이 여의도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앞에서 시민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나와 내 가족들, 내 친구들, 내 동료들이 걱정스러웠다. 혼란스러운 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내가 하고 있는 음악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기보단 지친 영혼들에 웃음과 위로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우리 모른 척하지 말자! 어차피 한줌 재가 될 인생이다. 불의에 저항하자! 김수영님의 시처럼,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이것은 편 가르기식의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다. 그날 밤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웃음과 자유를 찾아오자! 우리 모두 노래하고 춤을 추자. 우린 살아있다고.’



​ 침묵은 귀하다고 하나 때로는 그 침묵을 깨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세상에 부싯돌처럼 부딪쳐야 할 때가 있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작고 연약한 눈꽃송이에 불과할지라도 한데 뭉쳐 던져야 할 때가 있다. 살아있다고 외치기 위해. 우리는 파도에 흔들리는 부표 같은 인간이기에 모든 일을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때로는 양보하거나 이해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모되지 말자. 우리는 한 몸 부딪쳐 어둠을 밝혀야 할 부싯돌이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대답하고 싶다.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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