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야심찬 꿈꿔
안보 불확실성 걷어내야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
검은 백조인 블랙스완(black swan)은 전대미문의 인물이나 사태를 지칭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50년 역사의 미국 정치에서 블랙스완에 가깝다. 트럼피즘은 미국의 뉴노멀이 되었다. 미국 정치는 공화·민주당의 정책 대결이 아니라 '트럼프 이전과 이후(Before and after Trump)'로 나뉠 것이다. 그는 당선 직후 전 세계 75개국 지도자들과 통화는 했지만 칠레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직접 면담을 거절했다. 관세부과 위협에 놀란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직접 찾아와 몸을 낮추고 불법이민 단속 등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향후 트럼프 외교의 미래 방향을 점칠 수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관세' 폭탄을 투하한다. 높은 관세 앞에서 백기 투항하지 않을 국가는 없다.
그는 2016년 1기 행정부 당시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앵무새 타입의 40~50대 충성파들로 내각을 채웠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시니어' 그룹은 그의 주변에 없다. 내년 1월 취임 이후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각국 정상들은 미국의 청구서에 대한 답변서를 들고 오라는 입장이다. 외교적 수사로 일관하는 공짜 정상회담은 없다. 트럼프 당선자는 유세 기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지금의 9배를 강조했다.
한편 김정은과 부분비핵화 협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겠다는 야심 찬 꿈도 꾸고 있다. 노벨상에 대한 트럼프의 열병은 내년도 한반도 국제정세에 가장 큰 변수다. 트럼프 당선인은 과거 미북 정상회담의 실무자인 알렉스 웡을 국가안보부보좌관,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대사를 대북특사에 각각 임명하는 등 벌써부터 평양과의 협상 준비에 나서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 때마다 독재자 김정은과 잘 지내고 있다는 멘트도 잊지 않는다. 평양과의 협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종료되면 예상보다 빨리 시작될 수 있다.
생뚱맞은 비상계엄에 따른 무단 병력이동으로 한미동맹은 근간까지 흔들렸다. 탄핵 충격은 글로벌 외교 네트워크에서 한국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었다. 최근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은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을 만났으나 기후변화 등 이슈보다는 한국의 계엄 사태에 대한 질문만 받았다고 한다. 재외국민이나 외국 방문 인사들은 상대국 인사로부터 왜 한국 대통령이 '그런 큰 실수(such a big mistake)'를 저질렀는지 궁금하다는 단골 질문을 받는다. 계엄을 20차례나 했던 태국 국민들은 한국의 계엄 사태에 대해 동질감까지 느낀다고 한다. 가슴 아픈 질책이고, 국격을 비하하는 발언 등이나 유구무언이다.
한국외교 70년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모든 국가가 트럼프의 입을 바라보며 접촉에 올인하고 있다. 일본은 고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까지 동원해서 트럼프 공략에 나섰다. 마침내 트럼프 취임 전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상회담 일정이 잡혔다. 서울의 워싱턴 접근은 모든 국내 사태가 정리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트럼프는 현재 자신의 청구서를 전달할 서울의 카운터파트를 찾지 못해 접촉을 유보 중이다.
을사(乙巳)년 상반기에는 외교의 아노미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혼란의 장기화는 수출로 살아가는 한국에 치명적이다. 탄핵 정국에서 벌어지는 무책임한 언사와 외교적 자해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면책특권 뒤에 숨어 가짜 외교뉴스를 마구 발설하는 일부 의원의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쟁은 국경에서 멈추어야 한다'는 경구처럼 총질은 내부에서 그쳐야 한다.
외교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장기간의 불확실성하에서 국제적 고립을 피하기 위한 민관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와 공무원들의 한계를 기업들이라도 보완해야 한다. 풍전등화의 시점에서 국민들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재외동포들도 서울에 대한 불필요한 정파적 관심보다는 거주국 조야에 한국의 안정적인 정국을 홍보해야 한다. 각자도생의 글로벌 국익 중심시대를 헤쳐나갈 유일한 방도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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