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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식물 전자공학, 식량 위기의 해법…건강 측정부터 감염병 진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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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식물 잎 표면에 금 나노 매쉬를 이용해 전극을 부착했다. 임피던스(교류 저항) 변화를 통해 식물의 상태를 알 수 있다./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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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4월 25일 ‘세계 식량위기 보고서(GRFC)’에서 지난해 2억8160만명이 극심한 식량 불안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인구 중 4%에 가까운 이들이 식량 부족으로 건강과 경제적인 고통을 받았다는 의미다.

과학기술계는 식량 위기를 극복할 정보통신기술(ICT) 개발에 힘 쓰고 있다. 농약을 뿌리는 드론(무인기)이나 자율주행 농기구, 자동으로 환경을 제어하는 스마트팜 등이 대표적 성과이다. 최근에는 ICT로 주변 환경을 조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물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학기술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한 수단이 바로 ‘식물 전자공학’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서울대는 지난 1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호암교수회관에서 ‘제1회 식물-전자공학 융합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김재준 ETRI 선임연구원은 “식물 전자공학(Plantronics)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산업을 이끌 차세대 과학기술”이라고 말했다.

식물 전자공학은 사람에 쓰던 전자공학 기술을 식물에 응용하는 연구 분야다. 식물이 물 부족이나 추운 환경에서 나타내는 생체 신호를 직접 연결된 센서로 측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박성준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교수는 “이전까지는 식물의 건강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외형을 관찰하거나 세포를 갈아 나온 물질을 분석하는 방법에 그쳤다”며 “사람에게 사용하는 인바디(체성분 분석기)처럼 전류를 흘리고 임피던스(교류 저항)를 측정하면 빠르게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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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장대가 곤충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내부 신호 전달이 퍼져나가는 모습. 식물 전자공학(Plantronics) 기술을 이용하면 식물의 신호를 직접 측정해 현재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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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교수 연구진은 사람의 피부에 센서를 붙여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전자피부(electronic skin)’ 기술을 식물에 적용했다. 식물의 잎 표면에 센서를 붙일 수 있는 젤(gel)을 개발해 장기간 안정적으로 식물의 생체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연구진은 이렇게 개발한 젤을 이용해 식물용 인바디를 만들었다. 식물의 잎 표면에 생체 신호를 측정하는 센서를 붙이고 저항 변화를 측정해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토양에 소금기가 많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식물이 말라 죽기 전 발빠르게 진단하고 대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박성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농경지가 줄면서 바다 위에서 농사를 짓는 ‘해양 농업’을 연구 중이다”며 “만약 소금 필터에 문제가 생겨 식물이 죽어간다면 이를 발빠르게 조기진단하고 식량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모방해 식물 내부에 센서를 삽입하는 방식도 연구하고 있다. BCI는 사람의 뇌에 전극을 삽입해 신경 신호를 직접 수집하는 기술로, 질병 진단과 신경 손상 환자의 재활에 이용하고 있다.

한상길 인천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미세 전극을 토마토 줄기에 심어 실시간으로 이온 농도를 측정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칼륨 농도를 여러 단계로 나눠 식물 뿌리에 주고 미세 전극으로 측정한 결과, 다른 이온의 1000배에 달할 정도로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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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서울대 교수가 식물 잎에 센서를 밀착하는 젤(gel)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연구진은 젤 기술을 이용해 식물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인바디' 기술을 구현했다./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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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는 “이번 실험은 칼륨 농도 센서로만 진행했지만, 각각의 이온에 대한 센서를 사용하면 식물의 상태를 더 정확히 알 수 있다”며 “식물이 받는 스트레스의 종류를 정확히 감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식물 전자공학은 감염병을 예방하는 데도 사용된다. 이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의 정수 바이오시스템공학전공 교수와 곽선영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교수는 각각 배추 무름병과 곰팡이 감염을 진단하는 기술을 소개했다.

무름병은 배추가 세균에 감염돼 나타나는 질병으로, 세균이 세포벽을 깨뜨리고 저항의 변화를 일으킨다. 기존 진단법으로는 무름병을 진단하는 데 최소 2~3일이 걸리지만, 정수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식물 전자공학 기술을 이용하면 8시간 이내에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

곽선영 교수 연구진은 광학 센서를 이용해 곰팡이 감염을 진단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곰팡이가 검출될 정도로 번식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식물의 반응을 감별하는 기술이다. 곽 교수는 “밀, 보리 같은 곡물에서 실험을 했는데, 진단 속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며 “식물 감염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게 되면 농약 사용을 줄이면서도 식량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국내 연구자들은 식물 전자공학 기술이 점차 심해지는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준 선임연구원은 “전자공학 기술은 이미 사람의 건강을 진단하기 위해 고도로 발전해 있다”며 “발전된 전자공학 기술을 식물에 적용을 하면 단기간에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철 기자(alwaysa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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