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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K우먼톡]리더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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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패악질' 등 증오 일색 계엄문

국민에게 공포와 분노 불러 일으켜

지도자는 통합·상식·포용의 언어를

아시아경제

2024년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한 해를 조용히 마무리하고 새해를 위한 희망과 계획을 설계하는 여유를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12월 3일 밤 국가의 최고 리더인 대통령이 발표한 계엄 선포는 모든 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6천달러를 넘어 4만달러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일상에서 작동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헌법 제77조 계엄조항이 느닷없이 발효되고 그 이후 6시간 가까이 대혼란의 시간을 겪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 담을 넘으면서까지 본회의장에 집결하여 즉각 계엄 해제 의결을 하고 이후 열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 탄핵소추가 의결되면서 대한민국은 시스템으로 움직여지는 나라인 것이 입증되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만난 세계’ 등 K팝을 부르고 응원봉을 흔들면서 질서정연한 시위문화를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하마터면 추락할 뻔한 우리나라의 국격을 제자리에 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번 계엄 사태로 인해 우리의 현재 국가시스템 중 다시 짚어보아야 할 것들이 드러났다. 87년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도입된 이후 벌써 세 번이나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루어졌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양극단의 정치구조로 인한 문제도 심각한 상태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고 작금의 상황에서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이 리더의 자세와 언어의 문제이다.

12월 3일 대통령이 낭독한 계엄선언문 전문을 보면 “폭거”, “재정 농락” “내란 획책”, “괴물”, “약탈”, “패악질”, “만국의 원흉” 등 증오의 단어로 점철되어 있다. 자신의 분노를 온 국민들에게 퍼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대로 현상을 끌고 가려는 의도로 사용한 단어들이다. 그런데 사실관계에 부합하지도 않고 과장되고 일방적인 국가 최고 지도자의 언어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공포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그 증오와 망상의 언어들이 온 국민들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신뢰(트러스트)를 들었다.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가 높은 사회와 낮은 사회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신뢰가 높은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서 지도자의 언행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리더의 언어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구성원들을 통합하는 ‘통합의 언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상식의 언어’이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갈 수 있는 “포용의 언어”이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고집과 아집을 강요하는 강압의 언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갈라치게 하는 배제의 언어, 그리고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변칙의 언어는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를 깨뜨리고 사회시스템에 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밤중의 홍두깨격인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계엄 사태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계엄 해제와 헌법 절차에 따른 탄핵소추 등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침착한 태도와 언행으로 국민들에게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 리더도 등장했다. 이번 사태 수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국회의장의 계엄 해제 의결과 탄핵소추안 가결 후 연설에서 그가 사용한 언어들을 살펴보았다. “역사의 무게”, “민주주의의 무게”, “국민의 삶”, “희망”, “미래” 등 그가 사용한 언어는 현란한 수식어는 없었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언어였기에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김경선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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