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 등 소장했던 진호섭
그의 삶을 극세밀화로 그린 조덕현
서양화가 조덕현이 개성의 고미술 수장가 욱천 진호섭의 1930년대 가족 사진을 재현한 그림 옆에 서 있다. 작가는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이건 내가 그리게 되겠구나 직감했다”며 “시대와 인물 이야기가 풍부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전기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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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빛바랜 100년 전 가족 사진이 초대형 극세밀화로 완성돼 전시장에 걸렸다. 배경은 1920~30년대 개성. 2대8 가르마로 정갈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젊은 아빠,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의 다부진 눈빛까지 형형해서 관람객들은 “진짜 사진 아니냐”며 한참을 들여다본다. 바로 옆에 재현된 결혼식 단체 사진은 마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한 장면 같다. 동그란 안경을 쓴 연미복 차림의 신사들과 꽃바구니를 손에 든 화동, 면사포를 쓴 신부까지 당대 개성 부호의 결혼식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덕현 작가가 전시장에 걸린 초대형 그림 앞에 앉았다. 일제강점기 개성의 고미술 수집가이자 신진 엘리트였던 욱천 진호섭과 아내 김영희의 1920년대 결혼식 흑백 사진을 극사실주의 회화로 담아냈다. /전기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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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과 콩테로 되살린 개성 최고 수집가
경기도 화성시 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덕현 개인전 ‘므네모시네-기억의 강’이다. 서양화가 조덕현(67·이화여대 명예교수)이 흑백사진을 복사기로 복사한 것처럼 극사실적 회화로 재현했다. 그림 속 주인공은 개성의 고미술 수장가이자 신진 엘리트였던 욱천 진호섭(1905~1951).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찾아내고 수집했던 수장가로서 당시 고유섭, 황수영 등 미술사학자들과 교류하며 우리 문화를 보존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조덕현 작가는 “작년에 인사차 미술관에 들렀는데 진희숙 관장님이 옛 가족 사진을 보여주셨다. 1920~1940년대 흑백사진을 보는 순간, 이건 내가 그리게 되겠구나 직감했다”고 했다. “지금껏 본 옛 사진 중에 가장 아름다웠어요. 시대와 인물 이야기가 풍부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아서 ‘제가 한번 그려보고 싶다’고 그 자리에서 말씀을 드렸어요.” 진희숙 관장은 진호섭의 8남매 중 막내딸이다.
경기도 화성시 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덕현 개인전 '므네모시네-기억의 강' 1층 전시장 전경. /전기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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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현은 손바닥만 한 흑백인물 사진을 대형 캔버스에 옮긴다. 전시명 므네모시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강물을 마신 이들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작가는 연필과 콩테만으로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잊혔던 인물을 과거에서 건져올린다. 이번 전시에선 진호섭과 그의 아내, 가족과 주변 인물들 사진을 재현한 극사실주의 회화 7점과 거울을 이용한 영상 설치 3점, 골동품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 작업 등 신작 10점을 선보인다. 관객들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듯 20세기 초반 개성이란 공간의 일상으로 빠져들어간다.
◇이건희 컬렉션 1호, 한때 이 남자의 수집품이었다
진호섭은 개성 부호였던 진병집의 차남으로 태어나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조선중앙일보 개성 지국장에 취임하면서 고향에 돌아왔고, 개성 지역 신문인 고려시보 전무를 지냈다. 당시 개성박물관장이었던 우현 고유섭(1905~1944)과 교류하면서 문화재 수집에 눈을 떴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사재를 털어 전국 각지의 고미술품을 수집했다. 진희숙 관장은 “서울에 간송 전형필이 있다면, 개성엔 욱천 진호섭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욱천 진호섭(뒷줄 오른쪽)이 개성박물관 앞에서 우현 고유섭(뒷줄 왼쪽)과 나란히 서 있는 사진. /엄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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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박물관 불상 봉안식 사진. 합장하고 있는 스님 왼쪽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가 욱천 진호섭이다. /엄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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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수집품은 모두 유실됐다. 해방 직후 혼란기인 1945년 11월 1일 수장고에서 본가로 유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소련군에게 수집품을 빼앗겼다.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소련군 대위가 “문화재가 유실될 우려가 있으니 기차로 모스크바로 운송해 보관해야 한다”며 강탈했다고 한다. 이후 여기저기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충격과 고통으로 건강이 악화된 진호섭은 1951년 피란길에 세상을 떠났다. 유복자로 태어난 진 관장은 “다행히 선친은 서화와 서예 컬렉션을 일일이 사진 찍어 목록으로 정리해두셨다. 급박한 피란길에도 수집품 목록을 보따리에 지니고 있다가 눈을 감으셨다”며 “큰 오빠가 평생을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컬렉션의 행방은 여전히 모른다”고 했다. 진호섭 컬렉션의 대표 소장품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다.
욱천 진호섭의 서화 컬렉션 일부를 찍은 사진. 진호섭의 수집품은 1945년 소련군에 강탈돼 모두 유실됐지만, 서화와 서예 작품 사진과 목록이 남아있다. 엄미술관은 2017년 진호섭 추모전을 열면서 이 사진과 목록을 전시한 후 도록을 만들었다. /엄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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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 욱천 진호섭이 소장하던 시기의 ‘인왕제색도’를 보여주는 사진. 엄미술관 소장. 진호섭이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설명이 그림 양옆에 적혀 있다. 현재 '인왕제색도'는 족자로 돼있으나 이 사진 속 인왕제색도는 낱장이다. 이수경 국립춘천박물관장은 "언제 족자로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57년 최초의 한국 문화재 국외 특별전인 '한국미술명품전'에 출품된 '인왕제색도'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며 "당시 이 작품의 소장자는 소전 손재형(1903~1981)이었다"고 했다. 이후 '인왕제색도'는 이건희·홍라희 부부의 첫 번째 수집품이 되었고, 2021년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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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현 작가는 “특히 이분들의 결혼식 사진에서 감동받았다”며 “우리는 막연히 1920년대를 암울한 시대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도 주어진 삶의 여건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누리려 애썼던 이들의 소중한 일상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했다. 거실의 카펫, 테이블보, 화분과 소파까지 디테일한 묘사는 당대 미시사로도 가치가 있다. 김주현 큐레이터는 “굴곡진 역사에 희생된 수장가의 아픔과 동시에 식민지 상황이라는 수난 속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았던 한 가족의 모습에서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관람료 5000원.
진호섭의 누나 진오십 여사의 사진이 조덕현 작가의 손을 거쳐 극사실적 회화로 재탄생했다.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여인의 모습뿐 아니라 바닥의 카펫과 테이블보, 소파, 화분까지 디테일이 생생하다.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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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섭 아내 김영희 여사(왼쪽)와 동생, 친척 사진을 조덕현 작가가 극세밀화로 되살렸다. 등장인물 모두가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는 사진 구도도 인상적이다. /허윤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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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조덕현(67)
[화성=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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