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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김상회의 사계] 추리피해(趨利避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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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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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게 사는 사람들은 우선은 세상을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머리는 항상 이익을 취함에 순발력이 좋으니 잡을 수 있는 이익을 잘도 찾고 그러니 동작도 빠르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이익이라 생각되면 신의보다는 이익을 우선으로 삼기에 표리부동할 때가 많다. 이익을 감지하는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 왜? 이익을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 상으로 보기 때문에 관상학적으로 배신의 상이라고 본다. 그 사람의 눈빛만 봐도 음흉한지, 약삭빠른지를 물리적으로 간파할 수 있다고 관상학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하고 작은 부자는 근면 성실함에서 나온다고 하는 명심보감 한 구절이 아니더라도 작은 이익에 목숨 걸 일이 아니다. 작은 이익을 구함에 매몰되면 사람이 추해지기에 십상이다. 주변을 보더라도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큰 부자를 보지 못했다. 공짜를 좋아할 일이 아닌 까닭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로 보자면 공짜는 없다. 그럼에도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하려고 하는 추리피해(趨利避害)의 마음은 모든 사람의 본능이다. 그런데 뭐가 손해이고 뭐가 이익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좋아서, 이익이 되리라 판단돼서 행동하고 결정을 내리지만 결과는 그 반대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익일 것으로 생각해도 상처받고 손해가 되는 경우는 집착할 때 생기는 게 대부분이다. 그 집착은 어디에서 올까? 어리석음에서 온다. 어리석다는 것은 지혜 없음의 반대다. 그래서 살아가는 일에 지혜가 필요한 이유이고, 이러한 지혜는 마음의 속성을 알면서 서로에게 이익되는 방향을 찾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지혜의 빛을 찾아 출가도 하고 이런저런 수행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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