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창사 70주년 특별기획: '지역을 살피다, 미래를 살리다'⑨]
학교 끝나면 집에 홀로 있어야 했던 아이들, 곧장 돌봄터로
각종 교육 프로그램, 요일별 특별활동…요리 실습도
교육은 물론 간식·저녁 식사까지 무료로 제공, 학부모 부담 덜어
24시간 돌봄도 곳곳에…지자체 확산
학교 밖 돌봄 환영, 부모와 교감 문제는 생각해봐야
마을돌봄터, 소멸 위기 작은 지자체에도 필요
저출생 인구위기는 지역의 소멸을 뜻합니다. 이대로라면 2047년 전국 229개 시·군·구 모두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됩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침몰하는 가운데, 눈앞의 불균형은 지역소멸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소멸의 시계를 멈춰 세울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창사 70주년을 맞은 CBS노컷뉴스는 이를 위해 <지역을 살피다, 미래를 살리다> 연속 기획을 마련합니다. CBS 기자들이 전국 각지를 돌며 진단한 현실과, 모색해 본 해법들을 10편에 걸쳐 연재합니다.
▶ 글 싣는 순서 |
①가장 가까운 2차 병원 '4시간 48분'…지역의료 붕괴 '골든타임' ②사라지는 마을, 학교…대한민국 '소멸 쇼크' 현장 보고서 ③"지역에 돈이 안 돈다"…기업·청년 실종보고서[영상] ④어르신 돌보고, 음악가 꿈 키우고…내 고향 지키는 '기부금' ⑤한은이 띄운 '대입 지역비례선발제', 지방소멸 해법인가? ⑥'유치가 아닌 기획' 지역활성화 투자펀드로 일으키는 지역 경제 ⑦"생활인구 확보해야 소멸 막는다" 팔 걷어붙인 위기 지역들 ⑧이주노동자 없인 지역도 없다…'노동력' 아닌 '구성원'으로 ⑨'돌봄터' 된 교회와 폐원 어린이집…지역 살리는 공동체의 힘 (계속) |
초등학교 4학년인 여진이(가명)는 학원이 끝나면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이면 혼자 저녁을 챙겨 먹어야 했지만, 마을돌봄터가 생기면서부터 학원이 끝난 뒤 곧장 돌봄터로 향한다.
여진이는 "학원을 갔다가 집에 가면 심심했는데 여기 오면 간식도 주고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좋다"면서 "요리 실습하면서 먹기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면서 논다"고 말했다.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이 퇴근할 때까지 텅 빈 집에 혼자 있어야 했던 아이들. 온 마을이 아이를 돌본다는 취지 아래 마을돌봄터가 만들어진 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충남 천안에 들어선 돌봄터. 이곳은 원래 어린이집이었다. 하지만 원아 모집에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문을 닫았고 지금의 마을돌봄터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돌봄터에 모인 아이들이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다. 온누리아동돌봄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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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1시부터 부모들이 퇴근하는 시간을 넘긴 오후 10시까지 강사가 직접 각종 체험과 만들기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중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직접 체험하는 요리 실습 시간. 친구들과 샌드위치, 어묵탕 등 다양한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고 먹어보는 시간이다.
금요일에 가끔 삼겹살로 파티를 열기도 한다.
저녁 식사까지 무료로 챙겨주다 보니 학부모들도 부담을 덜었다.
김순기 센터장은 "맞벌이와 교대 근무 등으로 바쁜 부모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곳을 알뜰히 살피면서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며 "아이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돌봄터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평안하고 든든한 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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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마을돌봄터인 내포신도시 '평안하고 든든한 교회'. 종교시설 안에 마을돌봄터를 만들었다.
이곳을 찾았을 때 주말이 아닌 주중임에도 복도 한쪽에서 유독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7~8명이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었다. 교실에서는 도구를 이용한 창의과학 수업이 한창이었다.
"서로 힘을 합쳐야만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선생님 설명에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도구를 밀고 당기며 그림을 완성해 갔다.
이곳에서는 20명에 가까운 초등학생이 방과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후 1시부터 부모들이 퇴근하는 오후 7시까지 돌봄 외에 체육활동과 공예체험 등 요일별로 다양한 특별활동이 이뤄진다. 야외 텃밭을 가꾸고 동물농장을 체험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맞벌이 부모가 봐주지 못하는 학교 숙제를 도와주기도 한다. 간식과 저녁 식사도 무료로 제공한다.
고은재 양은 "이곳에 오면 수업도 재밌고 놀 공간이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유은경 교사는 "무엇보다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아이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간식과 식사까지 무료로 제공하다 보니 부모들이 만족한다"고 말했다.
당진동일교회는 각종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을 20년 넘게 운영하며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사례로 일찌감치 주목받아 온 곳이다.
한때 당진에서 태어난 아이의 12.4%가 이 교회 성도의 자녀라는 통계가 나올 만큼 출산율을 올리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되면 교회의 노란 셔틀버스가 일대 초등학교를 돌며 아이들을 태우고 방과후 돌봄이 어려운 부모를 위해 오후 7시 50분까지 아이들을 보살핀다.
현재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이 교회 이수훈 목사는 최근 열린 '교회가 앞장서는 저출산 극복 전략' 강연회에서 "규모가 작은 교회라도 함께 연합한다면 지역사회를 위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포신도시 평안하고 든든한 교회에 들어선 마을돌봄터 시간표. 고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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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돌봄터 전국서 '속속', 24시간 돌봄도
저출산에 따른 지역 소멸에 맞서기 위해 만든 마을돌봄터는 이제 전국 곳곳에서 지자체의 관심 대상이 됐다.
단지 부모들이 퇴근하는 시간대를 넘어 24시간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맞벌이는 물론 교대근무 같은 양육자의 다양한 근로 방식에 따른 보육 부담을 덜기 위해 충남도는 이미 지난 9월 '365×24'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신정과 설·추석 연휴, 근로자의 날을 제외하고 연중무휴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긴급한 경우 전화 혹은 방문을 통해 야간 돌봄 이용도 가능하다.
충남도는 연말까지 총 3곳을 시범 운영할 예정으로 운영 성과 등을 분석해 사업을 보완한 후 내년부터 전 시군에 총 25곳을 설치·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경북 구미시도 24시간 돌봄센터인 '새마을24시 마을돌봄터' 운영을 시작했다. 경산시의 한 아파트 1층에도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무료로 아이를 보살펴주는 시설이 들어섰다.
경북에서 올해 포항, 안동, 구미, 경산, 예천, 김천, 성주 등 7개 시군 53곳에 관련 시설이 문을 열 예정으로 경북도는 내년에 전 시군으로 이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울산에서는 이웃 간 초등생 돌봄을 품앗이하는 관련 사업이 첫발을 떼기도 했다.
마을돌봄터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 평안하고 든든한 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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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정 '환영'하지만…부모와의 교감 문제는?
온 마을이 아이들을 돌본다는 취지는 사회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충분히 반길 일이지만, 일부 보완의 목소리도 공존한다.
우선 학교 현장에서는 돌봄이 학교 밖으로 나온 것 자체만으로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돌봄 업무에 치인 교사들이 수업 준비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교육의 질과 연결된다는 뜻이다.
이준권 충청남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애초에 돌봄이 들어올 때부터 학교 밖으로 나가서 학교와 협력하는 구조로 이뤄져야 했는데 장소가 마땅치 않다 보니 학교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라며 "돌봄이 학교 밖으로 나가면서 교사들은 수업 준비에 집중할 수 있고 아이들도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에서도 저출산에 대응하고 가정에서도 바쁜 부모들의 탈출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환영받지만, 부모와의 교감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생각해 볼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이준권 회장은 "돌봄이 학교 밖으로 나갔다는 점은 환영하지만, 학교에 있는 시간을 포함해 늦은 시간까지 돌봄에 맡겨진 아이들이 과연 무조건 즐겁고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삶의 질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48분으로 나타났다. 아빠의 교감 시간은 하루 6분에 불과했다.
올해 7월에 나온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저출산 원인으로 일과 가정의 병행을 어렵게 만드는 근무 환경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직장 문화를 꼬집었다.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종종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부모들을 직장에서 일찍 돌아오게 해줘야 한다는 뜻인데 이를 각종 돌봄 정책과 연동해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마을돌봄터가 소멸 위기에 있는 작은 지자체에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준권 회장은 "수요로 따지자면 당연히 큰 도시에 많이 생기는 것이 맞지만, 필요로 따지자면 그렇지 않다"며 "영어나 음악 같은 교육에서 소외된 읍면동이나 농어촌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동일한 혜택을 받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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