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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2024 반도체 화두는 'HBM'…삼성이 두 번 고개 숙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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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열풍과 HBM의 부상…반도체 업계선 '초격차' 화두

HBM 8단: 삼성전자의 '근원적 경쟁력'과 첫 번째 사과

HBM 12단: 홀로 맞이한 '반도체 겨울'과 두 번째 사과

HBM 16단: SK하이닉스의 자신감과 삼성전자의 위기

아주경제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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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데일리] 올해 반도체 업계의 핵심 키워드는 ‘인공지능(AI) 반도체’였다. 특히 생성형 AI 열풍으로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이 올해 메모리 반도체 업계 핵심 제품으로 부상했다.

HBM의 핵심 기술은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올려 데이터 이동 거리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데 있다. 자연스럽게 올해 반도체 업계의 이목은 누가 더 높이 쌓느냐로 집중됐다. 일명 ‘적층 경쟁’이다. 결과적으로 세 번의 ‘상승’과 세 번의 ‘하강’로 점철된 한해가 됐다.

SK하이닉스가 지난 2월 업계 최초로 HBM3E 12단 개발 성공을 발표하며 한 발짝 올라설 때 삼성전자는 반도체(DS) 부문 성과급 0%를 지급했다. 이후 SK하이닉스가 HBM 8단과 12단 양산을 시작할 때 삼성전자는 연이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삼성전자도 변화에 나섰다. 지난달 정기인사를 단행하며 인적 쇄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젊은 기술 인재를 등용한 것과 대비된 인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의 화두도 삼성전자였다.

23일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1등 기술 싸움이 아니라 최대 주력 제품의 매출 추이에 중점을 맞춰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기술개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도 “초격차를 주장하는 사람은 많은데 기술경영을 이끌고 실현할 기술진이 부족하다”며 “엔지니어 중심의 인사가 이뤄졌다면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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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제55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한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DS부문장)[사진=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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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8단과 첫 번째 사과

지난 2월 21일 김기태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자사 뉴스룸을 통해 “올해 HBM은 이미 ‘완판’”이라며 “우리는 시장 선점을 위해 벌써 2025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달 뒤인 3월 19일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인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3월 말부터 제품 공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2023년 8월 HBM3E 개발을 알린지 7개월 만에 이룬 성과였다.

이어 4월 20일 삼성전자 주주총회가 열렸다.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 600여명의 주주들이 모인 가운데 나온 첫 질문은 주가와 HBM에 관한 이야기였다.

첫 번째로 마이크를 쥔 주주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계속해서 오르는데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원인이 HBM에 있는 것 같은데 삼성전자에서 HBM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한종희 부회장은 답변하는 대신 사과했다.

한 부회장은 “주가가 주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경영진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 말씀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경계현 사장은 반도체 사업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 사장은 "업황 다운턴 영향뿐 아니라 저희가 준비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근원적 경쟁력이 있었더라면 시황과 무관하게 사업을 잘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각오를 다졌다. 경 사장은 HBM 초기 시장 선점에는 실패했지만 5세대 HBM 12단 제품을 SK하이닉스보다 3개월 더 빠르게 양산해 역전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5월 21일 삼성전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사를 내놨다.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부문장에 전영현 부회장을 위촉했다. 반도체 ‘기술통’이 오면서 기존의 경계현 사장은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 사이 외국인 투자자는 삼성전자 주식을 1조원 넘게 순매도했고, SK하이닉스 주식은 1조원 넘게 사들였다. 지난 5월 24일 미국으로부터 삼성전자의 HBM3E 제품이 엔비디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후였다.

◆HBM 12단과 두 번째 사과

메모리 반도체는 AI 붐 열풍을 타고 전에 없던 호황을 겪고 있었다. D램 가격 상승세를 이끈 주역은 단연 HBM이었다. 삼성전자(8조2029억원)와 SK하이닉스(4조6870억원)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각각 24.2%, 62.4% 늘었다.

SK하이닉스는 ‘다지기’에 나섰다. 지난 6월 24일 곽노정 최고경영자(CEO)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기 위한 ‘코퍼레이트 센터’를 새로 만들었다.

삼성전자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나섰다. DS부문 안에 HBM 개발팀을 신설했다. 이 팀을 통해 HBM3E를 비롯한 차세대 HBM4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 영향으로 7월 11일 삼성전자 주가는 8만8000원 최고점을 기록했다.

‘겨울이 돌아온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는 9월 19일 이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반도체 주가가 들썩였다. 보고서는 반도체 시장이 공급 과잉으로 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희비는 3분기 실적에서 엇갈렸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겨울론’을 피해갔다.

지난 9월 24일 역대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갈아치운 것으로 밝혀졌다. 영업이익 7조300억원. 삼성전자 뒤를 바짝 쫓는 모양새가 됐다.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AI 메모리 수요 강세가 지속된 덕분이라고 SK하이닉스는 설명했다.

며칠 뒤인 26일에는 HBM3E 12단 신제품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엔비디아 측에 가장 먼저 공급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2주 뒤인 10월 8일 삼성전자는 홀로 겨울을 맞이했다. 3분기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 10조원을 넘길 것이라던 시장의 전망을 피해갔다.

같은 날 전영현 부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고객·투자자·임직원을 대상으로 내놓은 사과 성명과 함께였다. 삼성전자가 실책을 인정한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란 평가가 나왔다.

전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 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달 SK하이닉스 노사는 격려금 450만원 지급에 합의하며 상반된 행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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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삼성 부당 합병 혐의 관련 2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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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16단과 ‘삼성의 위기’

지난달 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 AI 서밋 2024’에서 자신감을 내비췄다.

그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공급을 6개월 앞당겨줄 수 있냐고 묻는 말에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한 번 해보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했다.

같은 자리에서 곽 사장은 16단 HBM3E 개발을 세계 최초로 공식화했다. 그는 SK하이닉스가 HBM3E 16단을 개발하고 있으며 오는 2025년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약 3주 뒤인 25일 이재용 회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진행됐다. 검찰은 이날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상황이 녹록치 않다.”

이 회장이 최후진술에서 말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처음 삼성의 위기를 인정한 것이었다.

그는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드시 극복하고 한번 더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호소했다.

같은 달 27일 DS 부문 주요 사업부 경영진에 변주를 줬다. 기존 한종희 부회장 1인 대표 체제에서 반도체 수장 전영현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함께 맡는 2인 체제로 복귀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이번달 발표한 정기인사에서 차세대 반도체 등 기술 분야 신규 임원을 대거 선임했다.

올해의 마지막 인사로 향후 반도체 업계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과 함께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기술개발도 경영도 고객 중심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삼성은 따라잡힌 기술 격차에 대한 마음만 급한 상태”라며 “인사는 물론 HBM이나 무리한 파운드리 3나노 공정 투자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임효진·김인규·이지환 기자 ihj1217@economi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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