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입니다.”
비상계엄이 주는 충격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이 1600자 안팎에 불과한 담화문에서 자유대한민국이란 단어만 5번이나 등장한다.
이 자유대한민국이란 단어는 잠시 후 등장한 포고령에도 나온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분명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있음에도, 굳이 포고령에까지 자유대한민국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볼 때 자유대한민국이야말로, 윤 대통령이 얘기하고 싶은 국가관의 결정체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통치철학과 비전을 밝히는 취임사에서 자유란 단어를 33번, 자유민주주의까지 포함하면 35번이나 말할 정도다.
자유대한민국이란 단어를 단순히 보수정당의 용어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은 자유대한민국에 ‘진심’이었다. 자유, 인권, 공정, 연대 등 그가 외쳐온 가치를 바탕으로 시장주의, 양극화 극복, 한미일 공조 같은 것들이 그의 자유대한민국에 모두 담겨있다.
그의 ‘통치행위의 일환’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정말로 비상계엄을 해야만 했던 절박한 상황이었는지, 그 통치행위에 대해 국민과 세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느 정도 가려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적어도 비상계엄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그동안 굳건할 거라 믿었던 민주주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큰 공을 세웠다. 케케묵은 음모론을 가져와 민주주의 핵심이자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스스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상상은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비상계엄 과정에서 평소 입맛에 맞지 않던 요인들을 납치해 구금한 뒤 이를 북한의 소요 사태로 위장하거나 드론 등으로 북한을 먼저 도발해 국지전을 빌미로 비상계엄을 일으키려 했다는 의혹은 아연실색이란 단어로 모자랄 정도다.
무엇보다 국회에 군인을 실탄 장착한 총기와 함께 진입시킨 일은 향후 수사와 헌재 심판 과정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쉽지 않다. 세계 어느 특수부대와 겨뤄도 모자라지 않는다던 707특임단이나 1공수여단 같은 특수부대들이 시민들에게 총구를 향한 일은 그가 가장 중요시하던 안보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일이다.
지난 2년 반 이뤄진 정책에 대한 방향성도 상실해 버렸다. 비상계엄 당일 타국 정상을 초청해놓고 그날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거나,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악수하며 소상공인 지원을 약속하더니 그 다음날부터 비상계엄 정국에 몰아넣는 일들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대 증원, 4대 개혁, 저출산, 양극화 해소 대책 같은 시급한 정책 결정도 표류됐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아무리 시대적으로 시급하다고 현장에서 외쳐도 내년 상반기까진 커다란 결정이 이뤄지기 쉽지 않다.
그가 그렇게 외치던 시장경제도 위기에 직면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현실화되자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가며 코스피는 2400선이 붕괴되고, 환율은 1450원대까지 올라섰다. 해외 관광객 2000만 목표 달성이 물 건너가면서 내수 경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미일 공조도 망가진 상태다. 가장 중요한 우방이라는 미국은 비상계엄 과정에서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모습에 신뢰를 상실해버린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거론조차 하지 않을 정도다.
그는 정치를 시작하며 자유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을 얘기했다. 이제 자유대한민국은 그의 손에 의해 깨졌다. 비상계엄으로 실망하고 힘들어하는 국민들과, 수사, 그리고 탄핵심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주경제=박용준 기자 yjunsay@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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