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고, 6.25 전쟁을 겪고, 보리고개를 넘기면서도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도 잘사는 국가의 국민이 되는 줄 알았다. 우리의 6~70년대의 삶은 영화 '국제시장'과 다를 바 없었다. 돈을 벌러, 외화획득을 위해 독일로,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나갔고, 고국에 남은 이들은 오직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로 뭉쳐 밤을 낮처럼 일했다. 이렇게 50여 년을 각고의 노력으로 보낸 결과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어려웠던 6~70년대가 더 행복했다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오늘의 한국인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원인은 무엇일까. 과도한 경쟁, 일과 삶의 불균형, 실제보다 더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원인이겠지만 그보다 거시적인 불행과 비극의 이유는 여전한 정치의 후진성과 문화적 결핍 때문이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불안정성과 패권적 진영논리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비토크라시즘(Vetocracism)으로 생장했고,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는 엊그제 우리나라를 전 세계 뉴스의 진원지를 격상시킨 계엄령으로 곪아 터졌다. 여기에 문화적 후진성은 더더욱 국민의 행복할 권리를 침해한다. 세계가 놀라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것은 경제적 성장과 비례해 발전해야 할 한국의 정치와 문화는 여전히 낙후된 6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잘살게 되면 모든 것이 절로 다 잘될 것이라 믿었던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원인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원인을 알면서도 그것을 제거 또는 극복하거나 고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정치적 현상에 편승해 문화를 진영의 도구로, 예술을 이권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뀌면 문화예술계의 자리 바뀜은 당연했고, 알량한 서푼짜리 지원금을 두고 ‘화이트’ 또는 ‘블랙’ 리스트 논쟁을 벌이는 일로 나타났다. 후진적 정치를 질타하고, 시정을 호령할 문화예술계가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입 다물고 꿀을 빨고, 사회적 불의와 차별을 지적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야 할 문화예술계가 돈과 자리에만 입을 여는 사이 문화예술계는 물론 정치와 사회도 병이 깊어만 가 오늘의 지경에 이른 것이다.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유교문화와 불교적 전통이 사회를 유지하는 가치였던 우리가 빠르게 산업사회로 옮겨가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강국 한국에 걸맞은 가치관과 세계관을 마련하는 데 소홀하다 결국 실패했다. 따라서 급격한 사회 변화와 세계화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세대 간, 계층 간의 가치관의 차이는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이를 해결할 포용적 접근방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배만 부르면 될 것이라 믿었지만, 경제적 성장은 우리를 모르는 사이에 ‘배부른 돼지’로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이제라도 경제적 성장에 걸맞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성장과 변화를 꾀해야 한다. 후진적 정치를 고치는 일은 정신을 다루는 문화와 예술의 몫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오늘에 이른 우리에게 지금의 혼란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이끌어갈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정치를 향해 호통치고, 풍자와 패러디를 통해 권력을 비판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정의를 추구하며, 불의를 고발하는 문화예술 본연의 수호자 역할을, 역사적 불의와 갈등을 다루는 예술로 국민을 서로 화해와 이해시키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런 대변환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정부, 관료 중심의 문화예술정책과 집행의 절대적이며 근본적인 변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 60~70년대 즉 근대화 초기에는 사회와 시장이 미성숙해서 국가 우위의 정부가 주도하는 발전국가모델이 한국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지속적인 산업화와 세계화로 시장확대를, 민주화로 사회적 성숙을 이루었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정책 주체로서 역할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부터 국가권력인 정부가 사회, 문화 분야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개입하는 일은 줄여야 한다. 정책은 담당하되 실행 즉 사업은 민간에 넘겨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국가와 공권력이 앞서고, 자율보다 권위를 앞세운 정부의 행정이 주도하는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 국가가 사회 통합과 조정이 아닌 갈등과 분열, 문제의 당사자가 되는 사회는 선진사회라 할 수 없다. 제아무리 경제적 풍요를 누릴지라도 미개한 저개발국가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작은 정부는 필수적이며 정부와 모든 공직자는 국민을 계몽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책임지고 자신의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주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전환된 인식을 바탕으로 돈 나눠 주는 것을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버리고, 성숙한 경제와 민주의식에 비례하는 문화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문화예술계도 자성을 통해 정치권과 결탁하거나 정치세력화해서 정부가 나누어 주는 몇 푼 안 되는 지원금이나 챙기면서 팔길이 원칙을 주창하는 좀비같은 문화예술인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창작자로, 예술가로 자존심을 지키며 창조자로서 품격있게 살아갈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
선진 민주국가, 경제 대국 대한민국과 균형이 맞는 정치의 선진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문화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은 망국의 정치를 수리할 유일한 도구이다. 문화예술기관은 자율과 독립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의 문화정책을 성숙한 시민사회에 맡기는 실질적인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기관 역시 좀비같은 신세였다. 소속기관 즉 정부라는 울타리 속에 안주하면서 궁색하지만 편안하게 연명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국립문화예술기관도 독립과 자율은 원한다면 자립해야 한다. 정부 소속기관으로 남아 신분을 유지하고 알량한 기득권을 누리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설혹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정부의 하부기관, 소속기관으로 남아 ‘부역’할 수는 없다.
한국의 국립 문화예술기관은 정부조직의 하나로 문화예술기관으로 작동하기보다는 공공기관, 산하기관으로 정부의 정책과 방침에 따라, 각종 법령과 규칙에 따라 움직였다. 의사 결정이나 자금조달과 승인을 위해 국가재정법을 준수하며, 기부금 모금은 물론 기관의 입장료 등 수익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복잡한 관료적 절차와 과정은 물론 문화예술기관의 특성과 역할보다 우선했다. 예산을 정부에 의존하면서 정치적 변화, 경기 침체 및 우선순위 변경에 따라 제한된 자원의 확보 경쟁은 필수였고, 정부 또는 정책의 변경에 따라 조직의 목표, 프로그램 및 자금조달이 휘둘리기도 했다. 때로는 국가적 이익이나 외교적 목표를 이유로 전시 등 프로그램의 변동도 요구받았고, 미술관의 경우 본분을 떠나 미술시장 진흥을 위한 사업에 동원되었지만, 한 마디 불평도 할 수 없었다. 다양한 모든 시민의 문화적, 예술적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야 했고, 공공기관으로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준수하며 많은 보고와 감독으로 시간과 역량을 허비해왔다. 여기에 국가조직으로서의 문화예술기관은 내부의 이해관계자로부터 변화와 혁신에 대한 저항도 컸다. 빠르게 진화하는 문화적 흐름이나 기술발전을 선도는커녕 따라가는 일도 경직된 관료 구조 내에서 어려웠다. 특히 숙련된 전문가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것은 정부 정책과 급여와 고용 안정성에 대한 제한으로 인해 필수인력 하나도 자율적으로 채울 수 없었다. 기관의 장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이가 낙점되고, 복잡한 문화예술기관의 조직상 효과적인 리더십과 관리를 보장하려면 강력한 시스템과 관행이 필요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사소하지만 이렇듯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한 정부조직법상 국립문화예술기관은 독립적일 수 없다. 계엄령이 발령되면 국립병원이나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자동으로 폐쇄되는 것도 이런 정부에 종속된 관계 때문이다. 국립미술관, 박물관도 포고령에 포함되었다면 당연히 문을 걸어야 했다. 국가기관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임에도 ‘폐쇄’가 자동으로 하달되는 시스템에 속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할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회피하려면 독립하면 될 일이다. 영국의 왕립미술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도 대학교육을 담당하지만 비부처공공기관이란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법령에 4년제 국립각종학교인 예술종합학교 ‘교장’의 ‘총장’ 직함은 이런 불합리한 종속관계의 상징이자 규제는 싫고 ‘폼’은 잡는 처사에 다름아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편한 종살이를 하면서 독립과 자율을 원한다면 이는 “우산은 쓰기 싫지만, 비는 피하겠다”는 심보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정부의 일원으로서 문화예술기관이나 교육기관이 그 한계와 상황을 극복하고자 경제, 정치, 문화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의 도입을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국가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문화예술기관에 영국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가 비부처공공기관(NDPB, Non Departmental Public Bodies)이다. 이 제도는 그간 우리가 문화예술기관의 거버넌스로 고민해왔던 국가나 공기업의 재산 등을 민간 자본에 매각하고 그 운영을 민간에 맡기는 민영화(Privatization)나 단체나 재산이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법인화(Incorporation)나 지금의 책임운영기관(Executive Agency)과는 국가가 예산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다르다.
한마디로 비부처공공기관은 국회로부터 직접 예산을 배정받는 국가기관으로 정부의 역할을 하지만, 정부 부처는 아니다. 특히 장관은 비부처 공공기관에 대해 독립성과 효율성에 대해 의회에 책임을 지지만, 비부처공공기관은 해당 부처 장관과 거리를 두고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이 제도는 문화예술기관을 비롯해 독립성과 자율성이 필요한 연구 등을 수행하는 중립적인 기관을 자금 지원을 무기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부 또는 정권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의도에서 고안된 제도다. 사실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은 스탈린의 러시아에서 우리가 체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고안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실현하고자 탄생한 제도로 영국의 경우 박물관과 미술관을 포함해 현재 465개소의 비부처공공기관을 두고 있으며 호주나 캐나다의 모든 문화예술기관과 연구소가 비부처공공기관이다. 독일의 공법재단(öffentlich rechtlichen Stiftung)이나 프랑스의 ‘행정적 성격의 공공기관’(EPA, établissement public national à caractère administratif)이나 루브르박물관의 거버넌스인 공공기관 루브르(EPML, Établissement public du musée du Louvre)는 비부처공공기관과 비슷하지만, 더 자율적이며 독립적이란 점에서 더욱 적극적인 제도다.
사실 이런 제도와 유사한 제도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도입 시행되고 있다. 2011년 대학의 자율성 확대를 위해 서울대학교에 도입된 ‘국립대학법인’이나 2015년 이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지방의 국립과학관, 해양수산부의 국립해양박물관은 ‘국립법인’으로 이미 독립과 자율을 바탕으로 운영하되 경영실패도 스스로 책임을 지는 제도로 정착했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으로 정부로부터 출연금과 예산을 지원받는 동시에 수익사업을 통해 대학의 운영과 발전을 위한 자체 예산도 확보할 수 있는 법인격이기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제 소속기관과 학교를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국립법인화’하여 ‘K-오락’을 ‘K-컬처’로 승화시키는 창조적 파괴를 선택할 시점이다. 이런 변화가 두렵다면 먼저 현재 설립을 검토 중인 국립 20C(근대)미술관부터 법인화를 전제로 실험을 해 볼 것을 제안한다.
아주경제=정준모 박물관학, 독립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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