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길어진 불황의 그림자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내수가 위축된 가운데 12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폭으로 하락해 내년 한국 경제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24일 연중 최대 성수기를 맞은 서울 명동 거리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이충우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정치 격변 탓에 소비심리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연말 대목을 맞은 유통가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다음달 출범을 앞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중국발 덤핑 공세, 요동치는 환율에 따른 물가 불안으로 대내외 충격이 작지 않은 상황에서 내수가 악화 일로를 걷자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은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전월 대비 12.3포인트 급락한 88.4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타격에 외출과 대면 만남을 자제했던 2020년 3월(-18.3포인트) 이후 최대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지수 역시 2022년 11월(86.6) 이후 2년1개월 만에 최저치다.
소비자심리지수는 현재생활형편·생활형편전망·가계수입전망·소비지출전망·현재경기판단·향후경기전망 6개 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지표다.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소비자의 기대 심리가 낙관적이라는 의미이고 100 아래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이번 조사는 이달 10~17일 전국 2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 등으로 11월 소비자심리지수가 낮아졌는데, 이달 초 비상계엄 사태가 지수 하락 요인으로 추가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불확실성이 얼마나 빨리 해소되고 안정을 찾아가느냐에 따라 소비심리 회복 속도도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심리지수를 구성하는 6개 지표 중 하나인 소비지출전망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응답자들은 여행비(-8포인트) 외식비(-6포인트) 의류비(-6포인트) 교양·오락·문화비(-6포인트) 등 생활 전반에서 지갑을 닫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 연말 특수를 노렸던 유통업계는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직격타를 맞고 있다. 전통적 성수기인 12월에 되레 매출 하락을 걱정하는 처지다. 대형마트 A사에 따르면 계엄 사태 이후 소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 이상 줄어들었고 맥주 매출도 늘지 않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식당에서 연말 모임을 취소하는 인원이 많아져 연말인데도 특수를 못 누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형마트 B사는 이달 주방용품과 퍼스널 케어(헤어케어·뷰티상품 등)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10%, 5% 감소했다. 그나마 식품군이 실적을 견인하고 있지만 비식품군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이달 매출 신장률은 '0'인 상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난 3일 계엄 사태 이후 15%가량 손님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한 상품을 사러 왔다가 여러 제품을 같이 구입해 가는 패턴이 급감하고 원래 계획했던 것만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최대 성수기인 12월에 영업적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전체 고객이 10% 이상 감소하고 매일매일 목표치를 채우기가 버거운 상태"라고 말했다.
면세점 업계는 3일 밤 계엄 이후 전례 없는 위기를 맞는 모습이다. 계엄과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국가마다 한국에 체류 중인 자국민에게 여행주의보를 발령한 것이 직격탄이다. 실제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의 이달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2% 줄어들었고 신세계면세점의 하루 평균 매출도 이달 들어 20%가량 감소했다.
백화점 업계는 서울과 수도권 핵심 매장을 제외하고는 실적이 부진하다. 경기 고양시 '그랜드백화점 일산점'은 매출 부진을 이유로 내년 2월 영업을 중단할 예정이고 서울 구로구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도 내년 6월 폐점을 앞두고 있다. 롯데백화점 역시 올해 6월 마산점을 폐점한 데 이어 센텀시티점과 호텔 브랜드 L7 등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에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다이소는 오히려 매출 상승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2년 6000억~7000억대였던 매출이 지난해 3조4000억원을 찍은 데 이어 올해는 4조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다이소 관계자는 "제품 경쟁력 확대, 매장 확장에 힘입어 현업에서는 예년보다 잘 되고 있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오수현 기자 / 김시균 기자 / 박홍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