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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중국은 ‘윤석열의 전쟁’을 우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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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이후 한국의 집회나 국회 상황에 중국어 자막을 넣은 영상을 대단히 많은 중국인들이 인터넷에서 공유하며 함께 보았다. 이번 내란사태와 그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저항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라는 공통분모로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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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령이 선포된 뒤 4일 새벽 국회 앞에서 군용차량을 시민들이 둘러싼 채 막아서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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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지난 11월 말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갔을 때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곧 전쟁이 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놀랐다.



중국의 한반도 연구자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첫째는 우발적 충돌, 둘째는 윤석열 정부의 고의적인 도발일 것이고 북한 김정은의 도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일반인들도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유학이나 여행도 위험하다’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는 윤석열의 문제가 심각하지만, 고의로 전쟁까지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지 며칠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올봄부터 윤석열과 측근들이 전단과 무인기 등을 동원해 계속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려 했고, 북한 오물풍선에 대응해 ‘원점 타격’을 지시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더욱 충격적이다. 온 나라가 전쟁 문앞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중국의 지인들에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해명의 메시지를 보냈다. 12·3 내란사태 뒤 서울에서 만난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은 올해 초부터 계속 윤석열이 한반도에서 충돌을 일으키려 한다고 우려해왔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부터, 수십년 만에 한국 역사책에서 뛰쳐나온 듯한 내란사태와 21세기 한국 시민들의 저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뜨거웠다. 관영언론은 물론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관련 소식이 주요 뉴스와 검색어가 되었다.



‘중국 간첩’과 ‘중국 태양광’을 쿠데타의 이유로 거론한 지난 12일 윤석열 담화는 혐중 성향이 강한 극우 지지자들을 결집하려는 폭탄 선언이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표하고,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 경제·무역 협력을 먹칠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때를 제외하면 중국 정부는 ‘내정 불간섭’을 강조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친중’ ‘반중’ ‘혐중’ 등 중국을 둘러싼 입장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 정치에 개입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내란사태가 일어나기 전, 중국 정부는 한국을 향한 ‘미소 외교’로 궤도를 전환했다. 한국인에 대한 ‘일방적’ 무비자 정책을 실시한 데 이어 각계각층 한중 교류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복합적인 전략적 고려가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을 앞두고 중국은 올해 봄부터 미국의 주요 동맹인 한국, 일본,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특히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려면 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어지는 2026년 아펙 정상회의는 중국에서 개최되는데 시진핑 주석의 3연임에도, 중국의 전략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집권해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동맹을 비롯해 세계 각국과 갈등을 빚는 동안, 중국은 자유무역의 수호자이자 포용적인 대안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할 기회다. 아펙 정상회의에 참석할 각국 정상들이 트럼프의 미국보다는 중국이 훨씬 신뢰할 만하다고 여기면서 중국에 다가서려는 모습은 시진핑 주석의 2027년 4연임으로 향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중국’에 앞장서며 한-일 밀착과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온 윤석열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다가 자멸했다. 누가 차기 한국 지도자가 되더라도 윤석열에 비해서는 중국에 우호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주시할 수밖에 없다. 자오밍하오 푸단대 교수는 지난 14일 서울에서 성균중국연구소 주최로 열린 ‘전환시대의 중국과 미래’ 학술회의에서 “윤석열 탄핵은 한중관계 재조정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자오 교수는 “트럼프가 집권하면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강해질 것이다. 중국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를 바라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을 중시하는 중국은 북한·러시아와 처지가 다르며, 한국, 일본과의 협력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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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력 인터넷 매체인 펑파이가 `서울 겨울밤 역전의 362분-한국 계엄령 위기\'라는 제목으로 12·3 내란사태와 관련한 뉴스들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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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의 전략과는 별개로, 이번 사태를 보는 중국인들의 여론은 복잡미묘하다. 대다수 중국인들에게 윤석열이 벌인 ‘12·3 내란사태’는 동아시아 민주화의 우등생임을 자부해온 한국 정치가 ‘혼란스럽다’는 인식을 강화했다. 인터넷에서는 “한국 대통령들은 왜 매번 끝이 좋지 않으냐” “군대가 왜 시위대에 발포도 못 하느냐”는 조롱도 퍼졌다. 2021년 1월6일 선거부정론을 주장하며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도록 지지자들을 선동했던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게 된 데 이어, 윤석열이 선거부정론을 주장하면서 군을 동원해 국회를 공격한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의 실패와 중국식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강조해온 중국공산당의 서사에 힘을 보탰다.



물론, 국회 앞에서 장갑차와 총을 막아선 한국 시민들의 모습은 중국인들에게 1989년 천안문(톈안먼) 시위 유혈진압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독일에 망명 중인 창핑 전 ‘남방주말’ 편집장은 ‘도이체벨레’(DW) 중국어판에 쓴 칼럼에서 “중국인들은 이번 한국 뉴스를 빌려 1989년 천안문 진압의 역사를 잠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뒤 나온 계엄사령부 통고를 보면 언론·출판에 대한 통제와 집회와 파업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것을 본 중국 네티즌은 ‘계엄이 이런 내용이라면 어떤 국가는 계속해서 계엄 상태에 있다’고 썼다”면서 검열과 통제 속의 중국 사회를 ‘지속적 계엄 상황’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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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SNS에는 한국 비상계엄과 관련된 뉴스에 중국어 자막을 더한 동영상들이 많은 관심 속에 공유되었다. 웨이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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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머물고 있는 중국 언론인이자 작가인 자자(賈葭)에게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중국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최근 몇년 동안 ‘택시운전사’를 비롯해 한국의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영화가 중국의 소규모 그룹들 사이에서 유행했지만 공개적으로 상영되지는 못했다. 보통의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민주를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 흘린 피와 노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관영언론이 유도하는 대로 이번 사태가 서구식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혼란이라고 여길 것이다”라는 답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른 측면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문제를 사고할 줄 아는 많은 중국인들은 민주 체제를 지키려고 행동에 나선 한국 국회의원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힘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관점은 주류 언론에는 등장할 수 없고 개인적으로 쓰는 글에만 등장한다. 그렇지만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 시민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부러워하고 자신들의 현실에 투사해 보기도 한다.”



한국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순간 중국 친구들의 환호와 응원이 인터넷을 타고 이곳까지 전해져왔다. “한국의 민주를 지지한다” “윤석열이 마침내 물러났다. 민주 만세!” 지난 3일 이후 한국의 집회나 국회 상황에 중국어 자막을 넣은 영상을 대단히 많은 중국인들이 인터넷에서 공유하며 함께 보았다. 이번 내란사태와 그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저항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라는 공통분모로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열기도 했다.



저우샤오레이 베이징외국어대학 교수는 7일 ‘중국신문주간’에 쓴 글에서 윤석열의 계엄을 ‘냉전의 유령’으로 해석하며 이번 사태로 드러난 ‘한국의 상처’에 주목했다. “윤석열은 ‘부인을 지키려고 비이성적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냉전의 유산’을 따랐다. … 한국의 계엄 역사를 보면 군사독재정부는 분단 현실을 이용해 국가비상사태를 만들어내고 국내 반대자들에 대한 진압을 정당화해왔다. 한국은 민주화 시대로 들어서기는 했으나 분단체제하에서 계엄이 상징하는 합법적 국가폭력과 그것이 일상에 침투하는 상황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것이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는 문학의 방식으로 역사의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 아래서 언제라도 곪을 수 있는 상처를 암시했다.”



윤석열 탄핵과 내란 가담자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만큼 우리 정치와 사회의 문제는 깊이 곪아있다. 그동안 많은 한국인들이 민주주의 우등생이라는 자부심과 오만함이 혼재된 시선으로 중국을 보아왔다. 이번 비상계엄은 그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한국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한다. 극도로 분열되고 서로를 증오하면서 정작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이 깊은 위기의 근원을 찾아내고 반성하고 고칠 수 없다면, 우리의 앞에는 무엇이 있을까.





박민희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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