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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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젠더팀은 딥페이크 성범죄의 구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의2(허위영상물 반포 등)가 시행된 2020년 6월25일부터 올해 6월까지 해당 법 위반 혐의가 포함된 105건의 1·2심 판결문을 살폈다. 사진을 훔쳐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한 가해 행위보다는, 그렇게 만들어진 합성 성범죄물에 신체 주요 부위나 성적인 행위가 보이느냐 마느냐를 따져 처벌하는 방식은 피해자들이 겪는 실제 고통을 구제하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가 아는 여성의 사진을 훔쳐 이른바 ‘아헤가오’(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얼굴 표현)로 불리는, 눈동자가 위로 치켜 올라간 모습으로 합성·편집해 인터넷에 퍼뜨린 행위는 범죄인가 아닌가.
광주지법 형사12부는 2021년 7월 대학 동기와 선후배 여성 10여명의 사진을 도용해 성적인 장면 등과 합성한 성범죄물을 만들고 이를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ㄱ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눈동자가 위로 올라간 것처럼’ 합성·유포한 행위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일상 사진에서 눈동자만 과하게 위로 치켜뜨는 모습일 뿐”이라는 이유였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하기 위해선 성범죄물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재판부는 “피해자 입장에선 당혹, 불쾌감, 모욕이 될 여지는 있지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성범죄물 속) 등장인물의 옷 입은 상태나 행동에서 성적인 맥락으로 받아들일 만한 정보가 없다면 그걸 본 일반인이 (아헤가오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아헤가오라는 말 자체가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보급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광주고법 형사1부)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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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슷한 시기 재판에 넘겨진 합성 성범죄물 제작자들은 ‘아헤가오’를 ‘지인’ 등과 함께 주요 홍보 문구에 활용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2021년 1월 한 남성이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단을 뒤집으며 피해자가 느낄 ‘수치심’은 “분노, 공포, 무기력, 모욕감 등 다양한 감정을 포함한다”고 의미를 확장하기도 했다.
성범죄물 조잡하다고 감형
한겨레가 성폭력처벌법 14조의2(허위영상물 반포 등)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105건의 1·2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유발한 가해 행위에 대한 충분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들이 나타났다. 온·오프라인 연결망에서 알게 된 여성의 사진과 신상을 훔쳐 성범죄물을 제작·유포하는 행위보다, 그 결과물에 신체나 성적인 행위가 보이느냐 마느냐를 중심으로 피해 정도를 가늠해 처벌하기 때문이다. 법원이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범죄 ‘맥락’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스럽지 않아 합성임을 눈치챌 수 있다”, “조잡해 합성임을 알 수 있다”처럼 ‘진짜’ 같지 않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를 낮춰주는 태도 역시 문제적이다. 약 10건의 판결문에서 피고인에 대한 유리한 정황으로 이런 문구가 반복됐다.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을 보면, 감경요소 중 하나로 ‘편집물·합성물 등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없거나 이에 준하는 경우’가 제시돼 있다. 조윤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이채)는 “이런 감경요소는 실제 몸을 불법촬영한 성범죄보다 허위영상물 피해가 덜하다고 보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며 “합성이라고 해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가 덜한 것은 아님에도 이런 기준은 범죄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범행하다 들키지 않았다면 초범?
성폭력처벌법(14조의2 제5항)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범죄물 제작·유포를 ‘상습적으로’ 한 경우 형량은 1.5배까지 가중될 수 있다. 그러나 1년 이상 적게는 수백개, 많게는 수천개의 합성 성범죄물을 만들어 유포한 가해자 가운데 상습 혐의로 기소된 사례는 없었다. 외려 장기간 범행을 한 정황에도, 형사처벌을 받은 적 없다는 이유로 감형된 경우가 있다.
가해자 ㄴ은 2021년 지인 여성 등의 사진으로 약 200개의 성범죄물을 만들어 텔레그램 대화방 등을 통해 퍼뜨리다 꼬리가 밟혔다. 수사기관이 특정한 범행 기간은 약 4개월이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는 판결문에서 “상당 기간 수차례 학교 친구 등 여러 피해자 얼굴에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이나 남성의 성기 사진 등을 합성하고, 이를 유포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일부 허위영상물엔 노골적인 문구를 기재하고 피해자 이름, 에스엔에스 계정 등 신상정보를 게시했다”면서도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들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ㄴ은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으나 대전고법 형사1부는 올해 3월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2014년 내지 2015년께부터 허위영상물을 만들었다고 진술했으므로 제작 기간은 7~8년에 이르는 장기간으로 판단된다”며 “휴대전화 등에서 압수된 성명불상 피해자들에 대한 허위영상물은 이 사건 범행에 나타난 범죄물을 크게 상회하는 막대한 양”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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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1·2심 판결문을 검토한 송지은·조윤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이채)는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1심에서 주범 징역 10년, 공범 4년)과 심각성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형량이 매우 낮게 선고됐다”며 “상습성을 인정할 수 있어 보임에도 수사기관이 이를 적극 적용하지 않아 가중 처벌되지 않았고 초범임을 이유로 감형된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는 올해 10월 대학 동문들의 사진 등을 도용해 합성 성범죄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주범 박아무개(40)씨에 대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재판이 진행되던 중 피고인의 ‘상습’ 혐의가 공소장에 추가됐다. 합성 성범죄뿐 아니라 불법촬영 제작·유포 성범죄에서도 상습성이 인정된 판례는 극히 드물다. 재판부는 “밝혀진 범행 기간만 약 3년6개월이며 유포한 허위영상물은 총 2034건으로 많고 피해자도 다수였다”며 “3년6개월 기간동안 잠시의 공백기 외에는 대부분 1~3일 간격으로 꾸준히 허위영상물을 유포하고, 체포되지 않았다면 범행은 더욱 지속되었을 것”이라며 상습 범행임을 인정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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