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6 (목)

'산타 샘' 1000명이 보육원에 보내는 특별한 선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홍정윤 교사, 양말 희망 마음 아파
커뮤니티 알리며 교사들 동참
'희망 선물'에 카드, 쿠키도 구워
10년간 1만명 넘는 아동에 선물
한국일보

교사 1,064명이 올 연말 산타로 변신해 전국 38개 보육원 아이들이 받고 싶은 선물을 보냈다. 교사들이 보낸 선물이 쌓여 있는 한 보육원의 모습. 산타교사 모임 '산타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빨간 리본이 둘러진 선물 상자가 차곡차곡 쌓였다. '산타샘'이라고 적힌 라벨이 선물마다 붙었다. 원하던 선물을 품에 안은 아이들 얼굴마다 미소가 번졌다. 아동의 다양한 연령만큼 선물도 다채로웠다. 초콜릿과 젤리, 마카롱 선물을 아이들이 뜯자 달콤한 향이 보육원에 퍼졌다. 먹어보고 싶었던 샤인머스캣, 반건조 오징어를 받아 든 아이도 있었다. 중학생은 선물로 받은 책을 읽고, 고등학생은 포장을 뜯은 피크(세모 모양의 연주용 조각)를 손에 쥐고 기타줄을 튕겼다.

산타클로스로 변신한 1,064명의 교사가 보낸 선물을 받은 전국 38개 보육원(소규모 공동생활시설 '그룹홈' 포함)의 연말 풍경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학생생활기록부 작성 등으로 교사들이 가장 바쁜 시기다. 그러나 '산타샘' 소속 교사들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11월 초부터 아이들에게 온정을 전하는 선물 준비로 분주했다. 보육원 복지사들과 소통하며 아이들의 '희망 선물' 목록을 일일이 정리했고, 정성스러운 손글씨로 빼곡히 카드를 썼다.

산타샘은 2015년 지역 후원 모임에 참여한 홍정윤 교사가 보육원 아이들이 받고 싶은 선물로 '양말' '속옷'을 써낸 걸 보고 마음이 아파 교사 커뮤니티에 알린 걸 계기로 결성됐다. 교사들이 아이 한 명씩 맡아 선물을 준비한다. 참가 교사 규모는 첫해 600여 명에서 이듬해부터 1,000여 명으로 늘었다. 10년간 산타 교사들의 선물을 품에 안은 아동은 모두 1만62명이다. 홍 교사는 "인기가 워낙 많아 선물을 줄 아이들과 매칭이 되길 기다리는 '대기 산타' 교사들도 수두룩하다"며 미소 지었다.
한국일보

산타 교사가 보육원 어린이에게 보낸 손편지. 산타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한 교사는 '국어·수학 문제집'이 꼭 갖고 싶다는 여중생에게 여러 문제집을 선물했다. 이 교사는 "받고 싶은 선물이 문제집이라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학생이) 기특하다"고 했다. 보육원을 퇴소할 나이가 되어 독립하게 된 아동들은 '1인용 전기장판'과 '에어프라이어'를 하나씩 받았다. 교사들은 "아직 어린데 (사회 나가면) 얼마나 힘들까. 끼니 거르지 말고 따뜻하게 잤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장애 영유아 보육원의 시각장애 아동은 난방 텐트를 받았다. 가만히 누워 있을 때가 많은 아이가 텐트 안에서 아늑하게 지내길 바라는 보육원 수녀들의 마음이 산타 교사들에게 전달됐다.

산타 교사들이 '진짜' 산타와 다른 건 절대 아이들 앞에 나타나진 않는다는 점이다. 선물은 택배로 보낸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자칫 아동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혹 배달사고 소식이 전해지면 산타샘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산타 마을'엔 초비상이 걸린다. 선물을 못 받은 아이가 느낄 서러움을 떠올리면 교사들은 아찔하다. 한 교사는 "배송이 안 되면 크리스마스이브라도, 아무리 먼 거리라도 직접 선물을 들고 갔다"고 말했다. 마지막 선물이 도착할 때까지 배송 현황을 체크하는 일은 산타 교사 8명이 전담한다. '아이 상처 방지' 요원들이다.

산타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줄 쿠키도 직접 만들었다. '베이킹 밴드' 교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삼삼오오 모여 쿠키를 구워 정성스레 포장해 보육원에 전했다. 쿠키의 경우 택배로 보내면 운송 중 부서질까 봐 가까운 거리는 도보로, 먼 거리는 차량을 이용해 직접 배달한다.
한국일보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 교사들이 보낸 선물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전달되는 장면. 산타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산타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라는 걸 상상하면 뿌듯하기만 하다. 초등생과 인연을 맺은 한 교사는 "처음엔 조그마한 장난감 드론을 희망하던 학생이 몇 년 지나니 면도기를 적었다"며 "이제 면도할 나이까지 됐다니, 신기하다"고 흐뭇해했다. 10년간 옷 선물을 한 교사는 "여섯 살 아이에게 아동 사이즈 옷을 보냈는데 이제는 성인 사이즈 옷을 보낸다"며 "아이의 성장 과정을 그려볼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꾸준한 산타 활동에 선물을 받은 학생이 성인이 돼 깜짝 조우할 때도 있다. 한 교사는 편의점에 들러 '산타샘' 라벨을 붙인 선물을 보내려 택배 송장을 출력했는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수줍게 "저도 예전에 받았어요. 이제 자립했어요"라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곁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복지사들은 '산타샘 효과'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그룹홈(선린다온)의 김영랑 복지사는 "반신반의하며 써낸 희망 선물을 받은 아이들이 크게 기뻐한다"며 "행동 변화에 보상이 주어진 셈이라 훨씬 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산타 교사들의 연말 선물에 감사 인사를 전한 한 보육원 아이들의 손글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