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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출신의 미술가인 와엘 샤키(Wael Shawky, 1971~)는 아랍권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영상, 설치 미술, 조각 등 다양한 조형 방식을 통해 지난 천 년 동안 지속돼온 아랍과 서구 간의 깊은 갈등과 그 속에 내재된 민감한 사회 정치적 이슈(역사, 종교, 문화 정체성) 등의 주제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유목민 사회에서 근대화된 사회로의 전환을 관찰하며 성장한 그에게 중요한 건 '역사가 어떻게 도큐먼트화 되는가'이다. 여기엔 유럽이 모든 역사의 중심이자 주체로서 근대적인 것의 탄생이라고 보는 시각을 당연시하는 데 대한 그만의 미적 태도가 녹아 있다.
샤키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타지역에 대한 주변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사화하며 혼성화한다. 서구와의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항 대립에서 벗어나 불확정적이고 모호한 시대의 난제들에 도전하며, 시각 조형을 거푸집으로 어떻게 새로운 사회 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샤키는 1996년 참여한 '카이로 비엔날레'에서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해 많은 마을이 수몰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대형 설치 작업 <얼어붙은 누비아>로 큰 주목을 받았고, 2003 베니스비엔날레에선 국경과 공간이 허물어지는 현상과 자본의 소유자이자 세계화의 배후에 의해 촉발된 거주민들의 갈등을 다룬 <아스팔트 쿼터>(2003)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0년대 들어서며 샤키는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종교와 영토,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 <텔레마치 시리즈>(2007~2009)를 비롯해 종교적 탄압을 피해 300년간 에페소스 외곽의 동굴 안에서 잠을 잔(숨어 살던) 사람들 이야기를 주제로 한 <동굴>(2005), 십자군 전쟁을 아랍의 시각에서 조명함으로써 서구 중심적 역사 서술의 편향성에 문제를 제기한 <십자군 카바레>(2010~2015) 시리즈 등을 연이어 선보인다.
이 중 <더 호로쇼 파일>(2010), <카이로로 가는 길>(2012), <카르발라의 비밀>(2015) 등 모두 3부로 제작된 <십자군 카바레> 연작은 서구와 비서구 간의 문화적 충돌, 종교적 갈등,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오늘날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후에도 샤키는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문제, 자본주의의 욕망을 신화와 전설로 연결한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2012~2016) 연작을 비롯해 2024 베니스비엔날레 이집트 국가관 작가로 참여해 선보인 <드라마 1882>(2023) 등으로 이집트와 중동 지역의 역사적 오해와 편견을 해체하고, 전통과 신화를 버무려 보편적 '사실'이 하나의 관점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지난 9월 10일 개막해 2025년 2월 23일까지 이어지는 대구미술관에서의 전시도 그 연장이다. 이정민 학예사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 샤키는 폼페이를 배경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고대 이집트 종교 간의 연관성을 탐구한 <나는 새로운 신전의 찬가>(2023)를 포함해 한국의 구전 설화와 전래 동화인 '금도끼 은도끼', '누에 공주', '토끼의 재판'을 판소리로 재해석해 구전 전통이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 역할을 새롭게 조명한 신작 <러브 스토리>(2024) 등의 영상 및 70여점의 설치 작업을 출품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다시 조명하고 고대 설화와 전통적 스토리를 통해 오늘의 '이야기'를 새롭게 창조해낸 이번 전시는 현대 사회의 정체성과 이데올로기 문제, 역사적 사건의 복잡성을 보다 세밀하게 살피게 할 뿐만 아니라, 허구와 현실을 관통하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특히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상상력은 전시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놓치면 아쉬울 전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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