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법 vs 거부권 반복되다 어리석은 계엄
경제-국방-외교-교육까지 정치에 발목잡혀
권력 싸움 몰두하는 정당이 바뀌어야 희망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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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은 비교적 짧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서른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무려 서른다섯 번이었다! 실제로 자유는 가장 소중한 인권이며 포괄적 가치를 지니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21조 1항이다. 그리고 12월 3일,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포고령을 발했다. 윤 대통령에게 자유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폭력으로 본인의 뜻을 이루고자 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우리의 비상계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즉, “관용(寬容)은 어려운 일이고, 비교적 동질적인 국가에서도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처럼 여러 인종, 많은 민족, 그리고 다종교인 국가에서는 관용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잘못까지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관용은 민주주의 실현에 불가결한 요소다. 물론 그는 무너지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우려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언급한 대로 비교적 동질성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민주정치는 왜 이렇게도 난장판이 되었을까?
민주정치의 핵심은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가의 미래와 민생을 토론하는 의회에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는 개별 헌법기관이라는 양화(良貨)가 패거리의 일원(一員)인 악화(惡貨)에 의해 이미 많은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는 절대적으로 정당의 책임이다. 지역에 따라 공천이 곧 당선인 경우도 허다한 현실에서 정당이 수신(修身)도 안 된 부적격자들을 많이 공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시 공천받는 것이 의정 활동의 목표이며, 이를 위해 정당을 일사불란한 패거리로 만들고 있다. 다른 의견을 배신이라고 비난하는 여당이나 어떤 의안(議案)에도 배신자 한 명 나오지 못하는 야당은 모두가 정치적 패거리일 뿐이다.
정부가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세우면 야당이 이를 제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필요하고 유익한 정책일수록 야당은 오히려 반대하는데, 이는 정부와 여당의 업적이 되어 국민 삶이 좋아지면 다음 정권을 잡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은 아무 일도 못 하는 정부를 만드는 것이 야당의 절대적 목표가 되고 말았다. 이는 국민의힘이 야당이던 지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대표 방탄까지 겹쳐 이런 일에 그야말로 매진하고 있다. 비명횡사로 일컫던 지난 공천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민주정치의 기본인 합리성, 설득 그리고 배려 등은 사라졌고 정치판에는 사악(邪惡)함과 어리석음만 남았다. 몰카로 면담을 찍어 이를 선거 직전에 공개한 자는 목사이기에 더욱 사악하다. 명품백이란 미끼를 덥석 문 사람은 대통령 부인이기에 더욱 어리석다. 이런 허접한 일을 놓고, 야당은 사악함에 편승해 특검법을 의결했고 대통령은 어리석음을 옹호하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특검 의결과 거부권이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되었나?
독일의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사악함보다 더 위험한 것은 어리석음이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대명천지에 비상계엄은 참으로 어리석고 큰 위험이었다. 그 결과로, 사악함은 이제 큰 위험 속에 모두 숨어 버렸고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무엇보다도 예측 불가능한 정치 환경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 트럼프 2기를 맞으며 글로벌 정세도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 정치는 아랑곳않고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고 있다. 말도 안 되지만, 차라리 선거를 없애고 여당과 야당이 5년 혹은 10년씩 대통령을 번갈아 맡으면 어떨까? 다음 권력이 당연히 자기 차례라면 진흙탕 싸움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일도 없어질지 모르겠다.
‘경제는 정치인들이 잠든 밤에 성장한다’는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강조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은 경제만이 아니라 국방, 외교, 교육 등 모든 것이 정치에 발목 잡혀 있다. 2024년을 보내며 이제는 섣달을 맞는다. 기나긴 밤에 우리 정치인 모두는 나라 사랑이나 나라 걱정 내려놓고 깊은 잠이나 길게 주무시면 좋겠다. 그런 밤이라면 대한민국은 크게 발전할 것이 틀림없다. 갑갑한 정치 현실에 푸념이 되었지만, 여하튼 우리의 미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올곧고 능력 있는 인재만을 공천하는 제대로 된 정당이다. 정당이 바뀌어야 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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