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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36.5˚C] 족쇄를 푼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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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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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 저서 '리바이어던' 표지 발췌. 한국일보 자료사진


절대 권력을 가진 국가, '리바이어던(Leviathan)'.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구약성서 속 바다괴물에게서 이름을 딴 개념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국가의 힘을 결집된 사회가 통제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두고 '족쇄 찬 리바이어던'이라 명명했다.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권력이 분점하는 정치제도를 기반으로 포용적 경제제도를 갖춘 국가만이 진정 번영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2·3 불법계엄 사태로 탄핵심판대에 선 윤석열 대통령은 '족쇄 푼 리바이어던'의 말로를 걷고 있다.

0.73%포인트. 무효표보다 적은 역대 최소 득표 차로 당선이 확정된 후, 윤 대통령은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며 정권교체를 선언했다. 첫 일성부터 갸우뚱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를 보며 '2번을 찍지 않은(다른 대선 후보를 지지한) 절반은 위대한 국민에 포함되나' 따위의 생각을 할 무렵, 당시 검찰 간부조차 "정녕 정권교체가 맞다 보느냐"고 물어왔다. 거대 야당이 현현한데 행정부 수반만 바뀐 정권이 제대로 굴러가겠느냐. 복잡한 셈이 필요 없는, 지당한 의문이었다.

국정운영에 사사건건 대립할 것도,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할 것도 예견된 일이었다. 정치 신인 대통령이 어떤 묘수를 고안하고 있을까. 과한 기대였다. 이제 와 보면 그때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심을 하고 있었다. 기다렸단 듯한 야당의 숱한 탄핵과 단독 의결. 답답한 마음이야 국민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그렇다 해도 야당의 국정방해는 어디까지나 법 테두리 내에서 이뤄졌다. 의회주의자를 자처하던 윤 대통령은 점차 소통을 거부하고 권위주의적 면모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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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2차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이 이뤄진 14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퇴진 구호를 외치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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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회 개원식에 이어, 2025년 예산안 시정연설마저도 불참했다. 정부가 왜 내년 나라살림을 이렇게 편성했는지 설명하고 통과시켜달라 국회 협조를 청하는 자리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시정연설을 하지 않은 건 11년 만이다. "국회를 무시했다" 빈정 상한 야당은 사상 초유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로 응수했고, 대통령은 이를 손꼽아 세어온 비상계엄 사유에 넣었다. '그래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인데' 되뇌었다. 담화문을 읽고 또 읽어봐도, 지극히 자의적인 헌법 오독은 참담하다.

딴에 내린 구국의 결단은 역설적으로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코스피는 한때 2,400선이 무너지고, 원달러 환율은 1,450원대로 치솟았다. 바야흐로 비상사태다. 시장이 계엄 선포에 즉각 반응한 건, 거창한 경제학까지 논하지 않아도 이미 그간 역사의 흐름에서 정치제도의 위력을 체득해왔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몰고 오는 파고에 대비할 시간도 잃고 있다. 기껏 했다는 골프 연습조차 소용없어진 건 물론이다.

아제모을루, 로빈슨 교수는 국가의 독재와 부재 사이 족쇄를 찬 리바이어던으로 향하는 길을 '좁은 회랑'에 비유했다. 회랑에 빗댄 건 한 번 진입하면 닫히는 문과 달리 이탈이 쉽다는 의미다. 이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건 상당히 어렵다"고 지적한다. 최소 45년 전으로 역행하려던 지도자의 일탈을 막아낸 것은 결국 '위대한 국민'이다. 과거의 피에 빚진 우리 자유민주주의는 아직 좁은 회랑에 있고, 언제든 괴물의 망령에 끌려갈 수 있다. 잊기 쉬운 이 사실이 늦기 전에 환기됐다.

다시 일어나 족쇄를 채우는 국민이 있는 한, 한국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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