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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고점에 물렸다" 2021년 서울 영끌족 79%, 지금도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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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급등의 그늘

중앙일보

서울의 아파트 단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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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말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아파트를 매수한 강모씨는 그동안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한다. 강씨의 남편은 “고점(高點)에 가깝다”며 아파트 매수에 부정적이었지만, 강씨의 주장대로 계약을 진행해서다. 강씨는 “이사 몇달 후부터 집값이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한때 3억원 넘게 하락했다”면서 “대출 이자가 두배 가까이 뛰어 살림살이에 부담이 커진 데다 부부 사이도 나빠지면서 심적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올해 집값이 반등하면서 부담을 한결 덜었지만, 여전히 아파트 시세는 매수 당시보다 5000만원가량 낮다.

중앙일보가 25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22일 기준)한 결과,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 아파트값 급등기였던 2021년 아파트 매수자 10명 중 8명은 현 시세로 집을 팔면 손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번 하락한 집값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패닉바잉(공황매수)‘이 나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을 놓고 봐도 매수자 40%가량이 여전히 집값 하락으로 고통받고 있다.

고금리 등의 여파로 2022년 말부터 급락한 서울 아파트값은 올해 초부터 반등해 4월부터 이달까지 8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한국부동산원 주간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적으로 이전 고점의 90% 이상을 회복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가격 급등기에 빚을 내는 등 무리하게 집을 산 ‘영끌족(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매수)’이 여전히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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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는 13만4909건인데, 올해 6월 이후(6~12월) 동일 단지·전용면적이 2건 이상 거래돼 최근 시세 확인이 가능한 9만2380건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 시세는 올해 6월 이후 거래 금액의 평균값으로 추정했다. 이 중 39.7%(3만6637건)는 매수 이후 집값이 하락해 아직 매수 가격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고점에 물린 비율이 2021년 79.2%(2만8226건 중 2만2363건), 2022년 67.5%(7055건 중 4762건), 2020년 16.7%(5만7099건 중 9512건) 순이었다. 시세 확인이 안 된 4만2000여건 가운데는 2~4년 전 매수 금액이 최근 시세보다 높은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처럼 매수세가 회복된 시기에 거래가 없다는 건 비선호 아파트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런 사례는 서울 외곽지역에서 두드러진다. 2021년의 경우 노원·성북·강북·관악·은평·도봉·중랑·금천구 등 매수자의 90% 이상은 집값 이 하락했다. 노원구의 경우 2021년 매수자 96.8%(3120건 중 3020건)가 집값 고점에 물린 상태다. 상급지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2021년 마포구 아파트 매수자 63.1%(1071건 중 676건), 송파구 62.0%(1523건 중 944건), 성동구 60.9%(1238건 중 754건) 등도 하락한 집값 회복이 안 된 비율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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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전용 196㎡는 2022년 8월 35억원에 거래됐지만, 올해 해당 면적의 거래(2건) 평균값은 27억4000만원에 불과하다. 매수 금액과 최근 시세는 7억6000만원 차이가 나는 데다 취득세 3%(1억500만원) 포함하면 추정 손실은 8억6500만원에 달한다. 관악구 봉천동 현대관악 전용 123㎡를 2021년 7월 12억6500만원에 매수한 사람도 최근 시세(7억4000만원)과 비교해 6억원 손해를 보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손해를 감수하고 ‘손절매’에 나서기도 했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초반까지만 해도 고금리에 대출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손해를 무릅쓰고 집을 서둘러 정리한 ‘영끌족’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아예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간 사례도 크게 늘었다.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빌라 등) 임의경매는 5만185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5149건)보다 48% 증가했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이자를 갚지 못했을 때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이주현 지지옥션 연구위원은 “2021년 집값 급등기에 대출 규제를 피해 대부업체 등 고금리 대출을 끌어다 쓴 이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급등기 ‘무리한 영끌’ 후폭풍이 서민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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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문제는 빚에 허덕이는 ‘영끌 매수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내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청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집을 샀는데 시세가 오르면 집을 팔지 않은 상태에서도 소비를 늘리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손해를 보고 있으면 소비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동일한 금액의 돈이라도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가치를 다르게 둬 지출의 행태가 달라지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는 집값 급등기에 무리한 추격매수는 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대출을 최대한도까지 채운 ‘영끌’ 매수는 위험하다는 설명이다. 대출규제와 내수침체, 대통령 탄핵 등 여파로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이 최근 들어 둔화하고 있지만, 상급지의 신축·재건축 아파트를 위주로 최고가 거래가 이어지는 등 여전히 추격매수세가 나타나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대출규제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가격이 다소 조정될 여지가 있다”며 “빚을 끌어모아 추격매수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2006~2008년 아파트값 단기 급등이 나타난 ‘버블세븐(서울 강남·서초·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안양시 평촌신도시·용인시 등)’의 사례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버블세븐’에 속했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2006년 11월 14억원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침체가 길어지면서 2012년 7억원대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결국 2006년 당시 가격(14억원)을 회복한 건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6년 9월이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고금리가 이어질수록 고점에 집을 산 매수자의 고통은 커지고 내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내린 만큼 기존 대출자의 금리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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