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우두머리인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24년 12월1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탄핵 가결을 기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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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그날. 정치만 무너진 게 아니라 일상도 무너졌다. 아침마다 눈뜨면 뉴스를 켰고 눈 비비며 가족과 나눈 첫인사말은 “새로운 소식 있어?”였다. 그렇게 온종일 뉴스를 통해 국민의힘 의원들 입만 쳐다보다가 문득 ‘이러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저들의 정치가 나에게 묻는 것은 저들이 어떤 자들인가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나는 그저 방관자일 뿐 아닌가. 과연 나는 주권자인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방에 물통을 넣고 내의를 챙겨 입고 서울 가는 열차를 탔다.
그날. 여의도 집회에서 본 것은 참담했다. 투표 한번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꿀 힘을 가진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침묵하거나 자리를 떠났다. 다만 한 사람. 김예지 의원이 돌아왔다. 그는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을 걱정했다. “청각장애인은 계엄 선포 하는 것조차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조차 알 수 없는 분들을 대리하기 위해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BBC 방송 인터뷰) 아차 싶었다. 그의 말처럼 윤석열이 ‘계엄’을 알리던 방송에 수어통역사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계엄 방송을 들을 수 없을 청각장애인은 어떻게 이 사태에 대비할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 광장에서 수많은 ‘김예지’를 만났다. 영하의 아스팔트에 밤이 찾아올 때 챙겨 온 먹을거리를 나에게 나누어준 이도 있었고, 추울 거라며 핫팩을 꺼내준 이도 있었다. 계엄령이 포고된 날. 방 안에서 뭘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밤을 새우던 때에 여의도로 나와 군인들을 멈춰 세웠던 사람들이 있었듯이. 타인의 결핍과 빈자리를 함께 나누고 채우는 이들을 보며 깨달았다. 공화국 시민으로서 가장 필요한 일은,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감각이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가 한 일로도 연결될 뿐 아니라 우리가 하지 않은 일로도 수없이 연결된다. 윤석열은 우리를 소멸시키려 함으로써 우리를 부활시켰다. 자신 안에 이런 거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던 우리에게 우리의 힘을 깨닫게 했다.
“화나고, 슬프고, 안타깝고 분통 터지는 건 이해되는데 (진심으로) 신나 보이는 건 이해도 안 되고 참아주기 힘들다.” 김별아 작가가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한 말이다. 처음엔 이상했다. 탄핵 집회에 참여해 춤추고 노래 부르는 사람 중에 정말 ‘진심으로’ 신나서 그러는 이가 누가 있다고 이런 얘기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집회에 거듭 참여하면서 내가 진심으로 신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신나면 왜 안 되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우리의 힘을 느낀다는 건 신나는 일 아닌가.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실은 탄핵 여부나 민주당의 재집권이 아니라 우리가 신나 하는 거 아닌가. 시민들이 신나게 자신의 힘을 각성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근원적으로 두려워하는 일이다.
윤석열의 탄핵으로 우리의 삶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싸움이 끝나간다. 이제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는 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를 바꾸기 위해 일상을 반납한 시민들은, 시민의 일상을 바꾸기 위한 정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돌아갈 일상이 없는 사람들, 일상 자체가 이미 전쟁인 사람들의 싸움이 끝나야 한다. 살인적인 야간노동으로 쓰러져가는 택배 노동자의 호소가, 아는 남자에게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여성의 고통이 광장의 환호 속에 묻혀선 안 된다. 그들 일상의 평화가 곧 우리의 평화이다.
광장으로 향하는 시민의 발걸음과 함성은, 아스팔트 밑에 잠들어 있던 거인을 깨웠다. 동화 속 거인은 램프 속으로 돌아갔지만 한번 각성된 거인은 돌아갈 곳이 없다. 윤석열이 용산에만 있지 않듯이 거인은 우리의 삶 속에 있기 때문이다. 광장의 환호 속에 묻혀 우리가 놓쳤던 목소리, 그 고통의 함성이 마침내 우리를 흔들어 깨울 때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전에는 들으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실은 그 거인의 정체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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