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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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2.26) 아침신문 1면의 가장 큰 뉴스는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하는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 예고(5곳)였습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 소환 불응(3곳) △한은, 내년에도 금리인하 예고(3곳) △지난 10월 백령도에서 북한 ‘오물풍선’ 수차례 격추(2곳) 등이 주요하게 보도됐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하고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권태호 논설실장이 6개 종합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비교하며, 오늘의 뉴스와 뷰스(관점·views)를 전합니다. 월~금요일 평일 아침 9시30분, 한겨레 홈페이지(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① 차이의 발견 : 한 대행,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이유
② Now and Then : Happy Christmas(War is over)(존 레넌 & 오노 요코, 1971)
① 차이의 발견
#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 거부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를 통과한 헌법 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임명에 거부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대행은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법리 해석과 정치적 견해가 충돌한다”며 이런 뜻을 밝혔습니다.
-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26일 헌재 재판관에 대한 국회 인준이 끝나도 한 대행이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면, 28일 탄핵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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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덕수 권한대행의 논리
1) “검사가 판사 임명하는 셈”
-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은 국회가 ‘판사’에 해당되는 헌법재판관 임명에 개입하는 건 문제”
- 헌재 재판관 9명 중 공석인 3명은 국회 몫입니다.
- 한 대행의 이 논리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 헌법에 국회가 3명의 헌재 재판관을 뽑도록 돼 있습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 해석을 자의적으로 할 권한이 없습니다.
- 또 ‘검사-판사 논리’는 헌재 재판관의 임무를 ‘탄핵 심판’에만 국한한 것입니다.
-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회가 추천한 3명의 헌재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대통령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2) “여야 합의해달라”
- “법리 해석과 정치적 견해가 충돌하는 현안을 현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 ‘법리 해석’은 대체로 권한대행이 헌재 재판관 임명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게 지배적 논리입니다. ‘안 된다’는 주장은 극소수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법리 해석이 충돌하고 있지 않습니다.
- 정치적 견해는 국민의힘 ‘친윤계’가 임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란을 일으켜 탄핵심판을 받아야 하는 윤 대통령 쪽을 지지하는 ‘친윤계’의 ‘정치적 견해’를 이견이라며 ‘합의를 하라’는 게 합당한 주장입니까.
- 매사에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하지만, 국회에서 만장일치는 극히 드뭅니다. 국민의 대표가 모인 곳이 국회인데, 국민들이 늘 만장일치가 될 수 없습니다. 다수결을 통해 국회를 ‘통과’한 것이 일종의 ‘협의’인데, 이를 무시하고, 소수파인 국민의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으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2. 민주당, “28일 탄핵”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인 박범계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가) 한 권한대행이 이미 ‘날 샜다’는 정무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헌법재판관을 국회가 동의했음에도 임명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고, 내란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26일 본회의에서 헌법재판관 후보 3명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처리됩니다.
- 그럼에도 한 대행이 이들 3명을 임명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27일 본회의에 한 대행 탄핵안을 보고하겠다는 방침입니다.
- 그렇게 되면, 우원식 국회의장이 28일 또는 30일 본회의를 열어 탄핵안을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성탄예배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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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민의힘, “헌법소원 심판 청구”
- 반대로 국민의힘은 오늘(26일) 헌법재판관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한덕수 대행이 이들을 임명할 수 있는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겠다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밝혔습니다. 또 이와 함께 임명동의안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 시간을 끌고, 또 한 대행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입니다.
- 이미 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지난 17일 국회 법사위 현안질의에서 “(권한대행의) 국회 몫 헌재 재판관 3명 임명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했고, 대법원도 어제(25일) 백혜련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를 놓고 ‘적극적’으로 해야 되느냐, ‘소극적’으로 해야 되느냐를 놓고 초기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적극적’을 택하면, 거부권도 행사하고, 임명도 하는 게 맞고, ‘소극적’으로 하면 둘 다 않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권한대행더러 ‘거부권’은 행사하라고 하고, ‘임명’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스스로도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엊그저께부터는 새로운 논리를 내놓았습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는 국가원수의 지위와 행정부 수반의 지위가 있는데, 법률안 거부권과 장관 임명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권한대행이 할 수 있지만,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임명은 국가원수 권한이기에 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25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성탄예배를 드리고 있다. 순복음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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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 대행은 왜 이럴까?
- 한덕수 권한대행이 권한대행이 됐을 때, 그의 앞에 연말 안에 처리할 3가지 숙제가 있었습니다. △양곡법 등 6개 정책법안 △헌재 재판관 임명 △내란·김건희 특검법 등이었습니다.
- 처음에는 ‘양곡법 등 정책 법안’에 대해서는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지만, 나머지 두 사안에 대해선 그대로 통과시킬 것으로 봤습니다. 특히 ‘특검법’에 비해서도 ‘헌재 재판관 임명’을 우려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 헌재 재판관을 6명 불완전 체제로 ‘대통령 탄핵 여부’를 심판하자는 게 이치에도 맞지 않고, ‘국회 추천 몫을 권한대행이 임명을 거부한다’는 게 논리에도 맞지 않고, ‘탄핵 심판을 흔들자’는 게 대다수 국민 뜻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 더욱이 한 대행이 정치적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합리적이고 온건하다는 평을 들어온 터라 이렇게 철저하게 국민의힘 논리를 따를 것이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탓입니다.
- 양곡법 등에 대해서는 시장주의자인 한 대행이 이전부터 반대 뜻을 강하게 밝혀왔기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이들이 많았습니다만.
- 그래서 지금 한 대행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짚고 있는데, 모두 근거는 전혀 없이 미뤄 짐작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1) 여당 ‘친윤계’에 의존하려는건가?
- 한 대행은 내란죄 피의자로 앞으로 수사를 받아야 하고,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여당과 보수층만 보고 가는 게 더 낫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추정입니다.
- “(한 대행이) 지금의 정치 지형에 대한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내란과 관련해 추후 수사로 밝혀질 부분까지 고민을 했을 것”(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MBC 라디오)
2) ‘내란에 더 깊이 관여된 건 아닌가?’
- 지금까지는 ‘계엄을 막으려 했으나, 못 막았다’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 그런데 헌재 재판관 임명까지 막고 나서자, ‘왜 이러지’라는 생각에 이런 의구심이 커지는 것입니다.
- “한 대행이 내란에 너무 많이 개입된 것 같다. 계엄을 사전에 통보받았거나 하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게 더 있을 수 있다”(민주당 지도부 관계자)
- 윤석열 대통령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도 계엄 당시 부처 행동지침을 전달했는데, 국정을 총괄하는 한 대행에게는 더 크고 포괄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겠냐는 의심입니다.
- 심지어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한 권한대행 배우자가 무속에 심취한 사람으로, 김건희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한민수 대변인은 “한 권한대행이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본인이 뭘 해보겠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망상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이런 주장까지 나오는 것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박지원 의원의 주장에 뚜렷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고, 또 한 대행이 `뭘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는 건 상식적으로 힘듭니다. 다만, 애초에 한덕수 권한대행이 경험이 많고, 합리적이어서 현재의 내란·탄핵 국면을 큰 무리없이 조정해 나갈 것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윤 대통령 정부 인사이지만, 내란으로 인해 탄핵 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윤석열 정부 쪽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윤 대통령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했을 법한 행동과 똑같습니다.
5. 법조계 의견
1) 헌법재판소, ‘임명 가능’(17일)
“헌법재판관이 공석이 됐을 때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2)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합당’(23~24일)
“임명하는 것이 적절”, “권한대행의 임명이 헌법 규정에 합당”(마은혁 정계선 조한창 후보자)
여당이 추천한 조한창 후보자를 포함해 헌재 재판관 후보자 3명이 모두 공통된 의견을 보였습니다.
3) 대법원, ‘임명 가능’(25일)
- 대법원 관련 입장
“탄핵 소추안 의결 이후 (국회) 임명동의 절차도 거쳤다면, 삼권분립 등 헌법 원칙에 위배되지 않을 것”
4) 헌법학자, ‘임명 가능’(25일, 동아일보)
- ‘탄핵안이 헌재에서 인용되기 전까지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은 불가능하다’는 국민의힘 주장에 대해 “대통령의 파면 여부는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와는 관계가 없다”(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6. 국민의힘 안에서도 ‘임명해야’ 목소리
- 물론 ‘친윤계’가 아니거나, 원외 등 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윤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말이라는 한계는 있습니다.
- 박상수 국민의힘 대변인(친한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내년 4월18일이 지나가면 지금 2명의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된다. 그 사태가 되면 헌법재판관 수가 4명이 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완전히 마비된다”(25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 김영우 전 의원은 “지금 국민의힘은 골로 가고 있다. 헌재의 탄핵 불인용 가능성과 이재명의 2심 유죄 판결에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있는 모양새인데 정말 답이 없어 보인다”(24일, SNS)
7. 한 대행, ‘결국은 처리할 것’(?)
- 한 대행이 헌재 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한 근거가 뚜렷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처리할 것이라는 근거도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헌재 재판관 임명 거부’가 워낙 비상식적이라, ‘결국은 처리하겠지’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분히 희망 섞인 상식적 기대라고 봅니다. 막판 극적 효과를 연출할런지는 모르겠으나, 현재까진 한 대행의 입장이 완강한 편입니다.
-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어제 저녁 MBC 라디오에서 한 대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를 임명해준 사람에 대한 약간의 부채 의식이 있을 것이고 역사적인 판단에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이나 여야의 구체적인 압박들이 중첩이 돼서 본인이 상당히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분이 이런 식으로 미적지근하게 나오는 거는 아마도 관료 출신이고 자기가 책임을 지기 싫은 것이다. 아마 국민의힘에서 굉장히 압박을 가하고 있을테니 역사적으로 내가 욕을 덜 먹을 방법만 생각할 것으로 약간의 시간만 주면 26일 통과시킬 거라고 본다”
-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어제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는 아직까지는 여야 간 해결이 먼저”라면서도 “여야 합의가 없으면 한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는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동아일보)
- 그런데 이 문제를 갖고 이렇게 시간을 끌고, 온국민이 조마조마해야 할 사안으로 만드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요.
8. 사설 제목
한겨레 = 한덕수 대행, 헌재 '9인 체제' 완성이 역사적 소임이다
경향 = 윤석열의 내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동아 = 韓 대행,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 즉시 임명하는 것이 옳다
한국 = 민주당, '탄핵을 위한 탄핵'은 안 된다
중앙 = 헌법재판관 임명은 정국 혼란 줄이는 최소 조치
조선 = 잇따르는 위헌·위법 논란, 여야·법조계가 함께 혼선 막아야
- 언론보도를 보면, 조선일보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헌재 재판관 임명해야 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습니다. 여론의 지형이 어떠한지, 지배적 여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 보수 매체로 분류되는 동아 중앙일보도 ‘재판관 임명을 더는 미룰 명분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제목만 보면, 다소 오해 소지가 있지만, 이는 ‘국무위원 탄핵’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고, 헌재 재판관 임명에 대해선 “거부권 대상도 아니고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며 ‘즉시 임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다만 조선일보만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분명하게 ‘임명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한 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면 국방·행안부 장관이나 주중국 대사처럼 공석으로 놔둬선 안 될 인사를 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법조계와 전문가들 그리고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 최선의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조선일보는 이날 1면 기사 제목을 ‘韓대행, 거야의 데드라인 거부 방침’이라고 뽑아, 현 상황을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 거부’가 아니라, ‘민주당의 한 대행 탄핵 압박’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보고 있습니다. 3면에는 ‘여권 인사들, 일제히 野에 포문...“무정부 상태 만들어 정권 잡겠다는 거냐”’, 4면에는 ‘美 등 우방국 지지로 韓대행 체제 안정화...탄핵 땐 ‘2차 경제 충격’’ 등의 제목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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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Now and Then
크리스마스 다음날의 캐롤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어색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가오는 새해를 앞두고 53년 전 존 레넌의 평화 메시지를 반복해 봅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12월,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뉴욕 타임스퀘어를 비롯해 런던, 파리, 로마, 몬트리올 등 전세계 11개 도시 중심가에 커다란 옥외 광고판을 설치했습니다. 흰 바탕에 검은 색으로 ‘War Is Over If You Want It, Happy Christmas from John & Yoko'라는 글자만 새긴, 평화 캠페인이었습니다.
앞서 그해 11월15일, 워싱턴에 50만명이 집결한 베트남전 반대 평화 시위가 열렸습니다. 20대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노동자, 노인, 어린 학생들도 참여했습니다. 피터 폴 앤 메리, 피트 시거 등 유명 포크 가수들이 앞에서 군중들의 노래를 이끌었습니다. 이때 존 레넌의 ‘Give peace a chance’(1969)는 광장의 대표적인 반전가였습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정부는 대규모 반전 시위와 이를 북돋우는 존 레논을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했습니다. FBI는 존 레논을 도청하고, 미행하고, 위협했습니다. 미국에서 추방시키려 했습니다. 비틀즈 시절, 별다른 사회적 메시지를 낸 적이 없었던 존 레논이 반전운동을 벌일 때 일부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가수가) 노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한 기자는 회견에서 “당신의 행위가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느냐”고 비꼬듯 묻기도 했습니다. 존 레넌은 “(비틀즈 시절의 나에 비해) 지금 나는 성장했다”며 자신이 갖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밝힙니다. 요즘 말하는 ‘선한 영향력’을 활용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평화 캠페인’을 바탕으로 흑인 어린이 30명으로 구성된 ‘할렘 커뮤니티 합창단’과 함께 ‘Happy Xmas(Was Is Over)’라는 곡을 만들어 1971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발매합니다. 반전 운동은 계속됐고, 닉슨은 1973년 베트남전을 끝냅니다. 그리고 이듬해 존 레넌을 미국에서 추방시키려 했던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려 대통령직에서 물러납니다.
크리스마스 날, 경북 구미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가수 이승환 콘서트가 구미시에 의해 일방적으로 취소됐습니다. 이승환씨가 탄핵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13개 보수단체가 구미시청 앞에서 이승환 공연 반대 집회를 열자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며 안전상 이유로 콘서트를 취소한다고 일방 통보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구미시 쪽이 이승환 쪽에 ‘정치적 선동과 오해 등의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요청했으나, 이승환 쪽이 이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승환씨에게 ‘정치적 언행을 하지 말라’는 건, 53년 전 존 레넌에게 ‘가수가 왜 전쟁 반대를 외치느냐’고 한 말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만큼 시대착오적입니다. 구미시가 콘서트를 취소하자, 강기정 광주시장이 24일 ‘광주 콘서트’를 제안하고, 이승환씨가 이를 곧바로 흔쾌히 수락합니다.
탄핵 절차도 하루 속히 정리되고, 세상의 모든 전쟁들도 끝나기를 얼마 남지 않은 새해를 앞두고 다시 한 번 빌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N4Uu0OlmTg
(*일부 포털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려면, 한겨레 홈페이지로 오시기를 권합니다. 기사 제목 아래 ‘기사 원문’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끝)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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