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러당 원화 가치가 1460원대까지 떨어졌다(환율은 상승). 성탄절을 쉬고 개장한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는 1460원에 오전 9시 거래를 시작했다. 오후 늦게까지 1460원대를 맴돌았다. 지난 24일 야간 거래에서 기록한 올해 최저점(1460.3원)을 갈아치웠다. 2009년 3월 16일(1488.5원) 이후 1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동안 환율 ‘마지노선’으로 여긴 1400원을 넘긴 건 물론이고 1500원대에 성큼 다가섰다.
김영옥 기자 |
환율이 뛴 것 자체도 문제지만, 장기로 이어지는 추세란 점이 우려스럽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달러당 원화가치는 올해 1월부터 이달 26일까지 242거래일 연속 1300원을 밑돌았다. 환율 변동제를 도입한 1990년 이후 최장 기록이다. 기존에 환율이 1300원대에 머문 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1997~98년)를 겪은 144거래일,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당시 78거래일, 레고랜드 사태(2022년) 당시 78거래일 등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최근 고환율은 복합 위기에 가깝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강(强)달러 바람이 거센데다 한·미 기준금리 차(상단 기준 1.5%포인트)가 여전해 고환율 추세를 뒤집을 반전 요소가 마땅치 않다”며 “고금리·고물가에 이어 환율마저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약한 고리’인 중소기업부터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대기업은 해외 생산기지가 많고 고환율 대응 능력도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약 90%가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대기업이나 해외로 판매하는 구조다. 고환율로 중간재 수입 비용이 올라도 대기업 납품가나 수출품 가격에 100% 반영하기 어렵다. 산업연구원은 환율이 10% 오를 경우 대기업은 영업이익률이 0.29%포인트 하락하지만, 중소기업은 환율이 1%만 올라도 영업이익률이 0.36%포인트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0~13일 수출 중소기업 513곳을 설문한 결과 22%가 탄핵 정국의 피해로 ‘고환율’을 꼽았다.
가까스로 1%대까지 떨어뜨린 물가도 들썩인다. 에너지·곡물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고환율은 물가에 치명적이다. 수입업체 는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원화가치 하락으로 이를 더 높은 가격에 사들여야 한다.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11월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10월(123.47)보다 0.6% 오른 124.15(2020년=100)를 기록했다. 지난 4월(1.0%)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이문희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최근 공급물가지수 상승세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1430원대 환율을 지속할 경우 내년 물가 상승률이 0.05%포인트 정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오르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증시도 비상이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매도 행렬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탄핵 정국’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자본 유출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현재의 1400원은 과거의 1400원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최상목 부총리)”며 위기로까지 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유독 대외의존도가 높고 환율 위기에 취약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내년은 1%대로 경제성장률 하락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환율 불안 심리를 잠재우려면 대외신인도부터 끌어올려야 한다”며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하고, 탄핵 정국을 빨리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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