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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남태령 대첩과 줄탁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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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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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탐사대 송년 산행, 사당역에서 관음사 지나 관악산 오르는 길. 날씨가 칼칼하게 추웠다. 629m 정상에 올라 멀리 여의도 쪽을 바라봤다. 오늘은 탄핵소추안이 결판나는 날. 사람들의 근심을 연결하며 바람은 불고, 세상 부조리를 씻는 듯 한강은 흐르고 있었다.

과천향교 쪽으로 내려와 추어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과천에 오면 두 분의 옛어른이 생각난다. 추사 김정희와 동학의 최제우. 개벽의 기치를 내세웠으나 혹세무민의 난적으로 몰린 최제우는 경주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다. 거의 초주검의 상태로 과천에 이르러 대기하다가 남태령을 넘으려는데, 갑자기 철종이 죽어 국장 기간이라 다시 경상감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대구의 관덕정에서 처형당한다. 기록에 따르면 최제우가 과천을 떠난 날은 1863년 12월26일경이다. 겨우 몸이나 가렸을 홑옷의 허술한 행색에 날씨마저 그 얼마나 혹독했으랴.

남태령은 한양과 삼남(충청, 전라, 경상)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이젠 지하철이 뚫려 고개인 줄도 모르고 고개를 넘는다. 집으로 와서 마침내 탄핵안 가결의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며칠 후 이런 뉴스. “전남과 경남에서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공주 우금치에서 합류한 전봉준 투쟁단은 트랙터를 몰고 ‘윤석열 체포·구속’을 내걸고 서울로 출발했다. 이들은 평화롭게 전진하다가 과천 지나 남태령에서 경찰에 막혔다.” 다음날 듣게 된 더 놀라운 소식.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길이자 내일의 문화였다. “이 소식에 시민들이 달려와 혹한의 밤을 꼬박 길에서 새웠다. 22일 오후 4시께 차벽이 열렸다. 대치가 시작된 지 28시간여 만이었다.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한양을 탈환하려 했던 전봉준의 꿈이 130년 만에 이뤄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줄탁동기(啐啄同機)’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고 새끼와 어미가 안팎에서 서로 쫀다는 말이다. 서로의 노력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성공한다는 뜻이다. 농민이 올라오고 시민이 마중 나간 ‘남태령 대첩’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줄탁동기!

동작대교를 건너는 트랙터들의 상냥한 굉음. 내 늙은 마음에서 오랜 둑 하나가 툭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야흐로 거대한 개벽이 박두하고 있었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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