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진법사 '정치브로커 의혹' 검찰 수사도
35년 차 무녀 "여당·야당 아닌 무당인데"
무속인 협회 "경제적 타격도" 성명 고민
23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일한 점집 앞에 제사 용품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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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무속이 정치 한복판에 서서… 대체 얼마나 더 망가져야 되나. 욕이 절로 나와.
35년 차 무속인 김혜숙씨
26일 서울 마포에서 만난 김혜숙(64)씨는 시종일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김씨는 국가무형문화재 90호인 황해도평산소놀음굿 이수자로, 반평생 굿판과 기도터만 오가며 뉴스는 멀리하고 살았다. 그러나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줄곧 기사를 찾아보며 밤잠을 설쳤다. '계엄 막후 설계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경기 안산의 '아기보살' 점집에서 일했고, 전북 군산까지 가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사주풀이를 봤다는 보도를 보며 기가 찼다고 한다. 그는 "예로부터 '여당도 야당도 아닌 무당'이라는 말이 있다"며 "정치는 멀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는데, 한순간에 무속인 전체를 욕보였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군복을 벗었는데도 계엄 모의 기획자로 지목된 노 전 사령관과 지역 정치인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위기까지 몰렸던 '건진법사' 전성배씨는 모두 무속과 연관됐다. 앞서 대통령 관저 이전 개입 의혹이 제기됐던 천공까지 거론되면서 윤석열 정권에는 '무속인 비선'이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들을 바라보는 '진짜' 무속인들은 "이런 망신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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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숭례문 화재 때 49제 굿을 맡았던 김씨는 "제대로 된 무당이라면 나라 걱정, 서민 걱정을 해야지 절대 그런 짓(정치 개입 등) 안 한다"고 일갈했다. 노 전 사령관과 전씨를 향해선 "'네가 진정 하늘과 신의 대변자냐'고 따져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하남시에서 10년째 신당을 운영하는 김연옥(53)씨도 "권력을 등에 업고 욕심을 부린 것"이라고 질타했다.
노 전 사령관 일터였던 '아기보살' 점집 인근 무당들도 단단히 화가 났다. 근처에서 20년간 점집을 운영했다는 한 무속인은 "그 점집은 종교적 신앙심보다 신도(손님) 끌어모으기에만 여념이 없었다"며 "투스타(2성 장군) 예비역이 '권력을 다시 휘둘러 볼 수 있을까' 욕심 부린 일에 괜한 무속인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혀를 찼다.
노 전 사령관과 전씨는 제대로 된 무속인으로 분류할 수도 없다는 얘기도 많았다. 신내림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개인적 욕심' '정치적 이익'에 무속을 이용한 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무속인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 이성재 이사장은 "무속은 기본적으로 호국 종교라서 수행할 때도 첫 번째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며 "개인의 안위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무속을 이용하는 건 불경스럽다"고 지적했다.
노 전 사령관의 경우 현역 때 사주풀이에 관심이 많았고 2018년 불명예 전역 뒤 명리학을 공부해 지난해 충남 서천에서 역학(역술) 강의까지 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역술인들도 그의 행보를 인정하진 않고 있다. 서천의 한 역술원 대표는 "노상원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나랏일을 역학이나 사주에 의지하는 건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판석 한국역학사협회 수석부회장도 "(노 전 사령관을 보며) '선무당이 헛소리했구나' 생각했다"며 "엉뚱한 사람들 때문에 역술인들이 욕을 듣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통 무당들'에 불똥... 손님 발길도 주춤
35년 차 무속인 김혜숙씨가 26일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그가 굿을 하는 모습. 강지수 기자·김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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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는 수십 년 경력 무속인과 역술인에게도 악영향을 줬다. 최근 들어 주변에서 "장사는 잘 되느냐"는 안부전화를 많이 받는다는 김혜숙씨는 "나라에 희망이 있어야 굿을 하는데, 지금은 피해가 너무 크다"고 푸념했다. 대한경신연합회 역시 '노상원이나 건진은 정통 무교인이 아니다'는 취지의 입장 발표를 고민 중이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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