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다사다난'이란 표현만으로 부족한 한 해였다. 연말 이슈를 집어삼킨 12·3 비상계엄 사태는 물론이고,
의대 증원에 따른 의료계 반발로 의료대란 위기감도 커지는 등 국민들이 체감하는 피로도가 유독 높았다.
하지만 이 같은 피로감을 날릴 '사이다' 같은 소식도 많았다. 국내 첫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룬 소설가 한강과 더불어 마성의 단어 '아파트'로 전 세계를 홀린 가수 로제까지 앞장서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일 뿐만 아니라 문화 강국임을 널리 알렸다.
의정갈등 속에 묵묵히 응급실을 지킨 의사들은 물론 파리올림픽에서 '금빛 투혼'을 보여준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를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 선수들 뒤에서 말 없이 후원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까지 대한민국 영웅은 늘 그자리에 있었다.
최연소 '30-30'을 기록하며 기아 타이거즈의 프로야구 우승을 이끈 괴물타자 김도영, 롤드컵 통산 5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이상혁 선수(페이커) 등 스포츠계 슈퍼스타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1 한강 소설가
韓 첫 노벨문학상, 세계를 치유하다
"디어(Dear) 한강,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10월 초까지만 해도 한국인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선택'을 받을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1901년 시작된 노벨문학상 역사에서 한국인, 그리고 아시아 여성의 이름이 호명된 건 한강 작가가 처음이었다. 한강 작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세계인의 박수를 받았다.
노벨상 시상식 전에 열린 '노벨 강연'에서 한강 작가는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란 것을 실감하는 순간에 놀라고 감동한다.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한국인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출판계도 '한강 특수'를 누리는 중이다.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책 판매량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430만부(지난 24일 기준, 전자책 제외)를 넘어섰다.
2 응급실 지킨 의사들
의료대란 막아낸 숨은 영웅
지난 2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의료계는 1년 내내 몸살을 앓았다. 전공의 1만여 명이 이탈한 뒤 수개월째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대한민국 의료가 마비되지 않은 것은 '응급실을 지킨 의사들' 덕분이었다. 일부 몰지각한 강경파들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며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돌렸지만, 묵묵히 현장을 지킨 500여 명의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있었기에 의료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들은 추석 연휴에도 응급실을 지키며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봤고, 장기화된 의정 갈등으로 피로가 누적된 지금도 환자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기준 전국 414개 응급실 중 410개가 24시간 운영 중이며 응급실 기준 병상은 5948개로, 평시(6069개)의 9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응급실이 곧 생명줄인 이들을 위해 '숨은 영웅'들은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3 로제 가수
아파트 신드롬…빌보드 신기록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게임~ 스타트!' 세계적 K팝 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27·본명 박채영)는 올해 솔로곡 'Apt.(아파트)'로 성공적인 홀로서기를 해냈다. 지난 10월 발표된 이 곡은 우리나라 술게임에서 따온 중독적 선율, 세계적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의 협업 등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전 세계를 강타했다. 국내 대입 수험생들에게 '수능 금지곡'으로 꼽혔고, 1980년대 가수 윤수일이 부른 동명의 유행가가 음원 차트를 역주행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열풍에 힘입어 로제는 세계 대중음악계 주요 지표인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첫 주 8위, 9주 연속 진입 등 한국 여성 가수 사상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아파트를 포함해 자작곡으로 채운 정규 솔로 1집 '로지'도 발매 직후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3위에 올라 막강한 영향력을 입증했다. 새해엔 블랙핑크 완전체로 복귀해 새 음반 발매, 월드 투어 콘서트 등에 나설 계획이다.
4 안세영 선수
올림픽 金…체육계 민낯 폭로
2024년 스포츠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인물은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22)이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정점에 있던 안세영은 지난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허빙자오(중국)를 2대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방수현 이후 28년 만에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은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토록 꿈꿔왔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서 환호했다.
안세영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배드민턴 대표팀과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운영, 규정 등 부조리에 대해 작심 발언을 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안세영의 지적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등이 나서 배드민턴협회의 불합리한 행정과 대표팀의 운영 난맥상을 파헤쳤고, 김택규 현 협회장의 후원 물품 횡령과 배임 의혹 등도 밝혀졌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을 마음껏 기뻐하지는 못했지만 안세영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배드민턴계를 넘어 한국 스포츠계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두루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5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무적 양궁 조력자…印진출 성공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파리올림픽이 열린 지난여름 무려 3주 가까이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며 한국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 같은 지원에 힘입어 양궁 대표팀은 5개 종목을 모두 석권하며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거머쥐는 성과를 거뒀다. 정 회장은 지난 20일 제14대 대한양궁협회 회장으로 다시 당선돼 양궁협회장직을 6연임하게 됐다.
정 회장은 본업인 자동차 산업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글로벌 판매 3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3분기까지의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전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서 2023년 대비 30% 이상 판매량을 늘리며 테슬라의 뒤를 이어 미국 전기차 시장 2위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10월에는 현대차 인도 법인을 인도 증시에 상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시 현대차 인도 법인은 공모금 총 4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인도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6 김도영 선수
월간 10-10, KBO스타의 탄생
올해 프로야구 KBO리그는 사상 첫 1000만 관중 시대를 열면서 흥행 가도를 달렸다. 그 중심에는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팀 KIA 타이거즈에서 핵심 역할을 한 내야수 김도영(21)이 있었다. 올해 프로 3년 차를 맞이한 김도영은 KBO리그를 들썩이게 했다. 4월에 리그 사상 처음 월간 10홈런-10도루를 기록했고, 8월에 역대 최연소 단일 시즌 30홈런-30도루를 달성했다. 올 시즌 타율 0.347, 38홈런, 109타점, 40도루를 기록한 그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수상 등 주요 상을 휩쓸며 자신의 가치를 한껏 높였다.
잘 치고 잘 달린 김도영의 활약에 야구팬들도 반응했다. KIA의 한 팬이 경기장에서 '도영아 니 땀시 살어야(너 때문에 산다)'라는 문구를 스케치북에 붙인 응원이 각종 야구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아 각종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이어졌고, 올해 프로야구 최고의 유행어가 됐다. 김도영의 이름이 새겨진 KIA 구단 유니폼은 매출액만 약 110억원을 올려 상당한 마케팅 효과도 냈다.
7 이상혁(페이커) 선수
롤드컵 사상 최초 5회 우승
e스포츠의 '고트(GOAT·역대 최고 선수)'로 불리는 T1의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올해도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사상 최초 5회 우승이라는 역사를 썼다.
지난 6월 라이엇게임즈가 선정하는 '전설의 전당' 초대 헌액자로 선정된 페이커는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에서 중국의 '빌리빌리 게이밍'을 꺾으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롤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5세트 동안 진행된 결승전에서 페이커는 팀이 어려운 순간마다 극적인 반전을 이끌며 롤드컵 통산 500킬을 달성했으며, 결승전 MVP 또한 거머쥐었다. 2013년에 데뷔한 페이커는 선수 생명이 짧은 e스포츠계에서 12년째 현역으로 활동하며 본인이 세운 기록을 해마다 넘어서고 있다. 중국에서는 페이커를 두고 산처럼 높이 솟고 강물처럼 길다는 뜻의 '산고수장'이라는 경외감의 표현을 사용한다.
실력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선행으로도 유명한 페이커는 지난해 말 사랑의열매에 3000만원을 기부했으며 올해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8 백종원 요리연구가
흑백요리사 흥행에 상장 대박
외식 프랜차이즈 더본코리아의 백종원 대표는 올해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이에 내년에 공개될 예정인 '흑백요리사' 시즌2에도 출연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백 대표가 1994년 설립한 더본코리아는 빽다방, 홍콩반점, 새마을식당 등 25개의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다. 국내 점포 수는 약 2900개다. 이 밖에 가공식품, 소스 등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유통사업과 제주도 더본호텔을 통한 호텔사업도 하고 있다. 더본코리아는 지난 11월 6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5000억원이었다.
또 지난해 예산시장에 이어 올해는 경북 예천 상설시장, 충남 홍성 축제 등에 기획자로 참여해 '동네 전통 시장' 살리기 작업도 이어나가고 있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음식 상품을 개발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사업 계획도 갖고 있다.
9 변우석 배우
'선재 업고 튀어'로 전세계 홀려
2024년 탄생한 최고의 남자 스타는 단연 변우석이다. 4~5월 방영된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주인공 류선재 역을 맡은 그는 신드롬급 인기를 얻으며 대세 배우로 거듭났다. 190㎝에 달하는 훤칠한 체격과 웹툰을 찢고 나온 듯한 외모로 여주인공을 일편단심 사랑하는 인물을 로맨틱하게 그려냈다. '선재 업고 튀어'는 두꺼운 마니아층이 형성되며 화제를 모았다. 잘 짜인 스토리와 배우의 캐릭터가 절묘하게 조합됐기 때문이다.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아 큰 기대를 받지 않았는데도 스타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선재 업고 튀어'의 열풍은 해외에서도 거셌다.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에서 6주 연속 109개국 1위를 기록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선재 업고 튀어'를 올해 최고의 K드라마로 선정했고, 영국 대중문화 전문지 NME 또한 "클리셰의 균형을 맞췄다"는 호평과 함께 2024년 최고의 K드라마 2위로 꼽았다.
10 강철원 사육사
전국민 울린 푸바오 할아버지
강철원 사육사는 에버랜드에서 자이언트 판다를 돌보며 '푸바오 할아버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2020년 7월 20일 국내 최초로 자연 번식으로 태어난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를 처음부터 세심하게 돌보며 특별한 유대감을 쌓아 화제를 모았다. 푸바오는 에버랜드에서 성장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한중 협정에 따라 지난 4월 3일 중국으로 이송됐다.
강 사육사는 푸바오가 떠나는 날까지 함께하며 이별을 준비했다. 그는 이별의 순간 "태어나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던 우리 푸바오가 먼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구나"라며 아쉬움과 그리움을 담은 말을 남겼다.
강 사육사는 3개월 후인 7월 4일 중국을 방문하여 푸바오와 재회했다. 그가 푸바오의 이름을 부르자 푸바오는 그의 목소리에 즉각 반응하며 가까이 다가왔고, 둘이 서로를 알아보며 교감을 나눈 장면은 크게 화제를 모았다.
둘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할부지'를 통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영화는 푸바오의 출생부터 성장, 이별 그리고 재회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며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그는 푸바오를 '행복을 나누는 특별한 존재'로 기억하며 동물을 돌보는 일이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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