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건은 ‘속도’다. 각자 의안을 내세워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주명부 폐쇄 기준일 이후 주식을 판 주주들의 경우 양측의 의안과 청사진을 살펴보기보다는 먼저 찾아온 쪽에 위임장을 써줄 공산이 크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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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영풍과 기존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 측은 28일부터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나선다.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는 주주에게 의결권의 행사를 위임해줄 것을 권유하는 행위다. 위임장 용지와 참고 서류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공시하고 2영업일이 지나서부터 권유가 가능해진다. MBK파트너스와 최 회장 측은 24일에 공시했기 때문에 2영업일(26, 27일)이 지나고 28일부터 권유할 수 있다. 영풍의 경우 공시를 26일에 했기 때문에 31일부터 권유가 가능하다.
MBK파트너스와 최 회장은 28일부터 위임장 확보를 위해 서둘러 움직일 전망이다. 대리행사를 권유하려면 주주의 주소지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 주주를 만나 의안에 대해 설명하고 위임장을 써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가 주소지에 없는 경우도 있고 실 거주지가 다른 경우도 많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 설득하는 일도 잦다”고 전했다.
위임장 쟁탈전의 타깃은 지분 10%를 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수주주들이다. 현재 발행 주식 수 기준 지분율은 MBK-영풍이 40.97%, 최씨 일가 및 우호주주가 30%대 초중반, 기타 소액주주가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의 경우 이번 경영권 분쟁 시작 전 7.8%를 갖고 있었는데 절반 가량 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절반으로 추정되는 위탁 물량이 거의 다 매도돼 시장에 나온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이 직접 운용하는 고유계정 물량은 팔지 않고 그대로 보유 중이라고 한다.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영풍-MBK가 46.7%, 최씨 일가 및 우호 주주 40% 미만, 국민연금 4%대 초반, 기타 소수주주 10% 수준으로 추산된다. 다만 10%가 모두 위임장 대결의 대상이 될 지는 의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양측이 차명으로 우회 보유 중인 지분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소수주주 가운데 20일 이후 주식을 팔고 나간 주주들의 경우, 둘 중 먼저 찾아온 쪽에 위임장을 써줄 가능성이 크다. 의결권 대행 업체 관계자는 “지분을 계속 들고 있는 주주들은 양측의 의안이나 향후 계획 등을 중요하게 보겠지만, 이미 팔고 나간 주주는 단순히 먼저 방문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쉽다”며 “나중에 찾아간 쪽은 상대편에 위임해준 걸 철회해달라고 설득까지 해야 하니,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몇 배나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주주명부 폐쇄 기준일인 20일 이후 이날(27일)까지 고려아연 주식의 손바뀜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인은 23~26일 사흘 간 5773주를 순매도하고 27일 1만7684주를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총 8만4974주를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 연기금이 1만6472주를 순매도했으며 국내 기관은 7만4425주를 순매수했다.
최 회장 측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MBK가 갖게 되면 국가 기간산업이 사모펀드(PE)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표심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최 회장 측은 MBK에서 운용 중인 펀드 출자자가 대부분 외국계 기관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MBK의 ‘국적 문제’를 집중 공격해왔다. 이에 대해 MBK 측은 “우리는 엄연히 한국 법인이며 토종 사모펀드”라고 맞서왔다.
최 회장 측은 그 외에도 MBK가 향후 고려아연을 중국에 되팔 수 있다는 논리, MBK가 이사회를 장악할 시 고려아연 임직원들이 파업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 등을 내세워 위임장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최 회장 측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에 “MBK파트너스는 제련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투자 수익 확보를 위해 당사 주요 사업·자산을 매각하는 등 단기 수익만을 위한 경영을 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썼으며, 동시에 영풍이 제련업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최 회장 측은 이번에 제1-1호 의안으로 내세운 집중투표제를 중점적으로 홍보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단순투표제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한 MBK-영풍이 유리했지만,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소수주주들의 권리가 보호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전망이다.
반면 MBK-영풍은 집중투표제에 대해선 가처분을 신청하는 쪽으로 법적 대응을 하는 한편(☞MBK-영풍, 최윤범에 주총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 검토 중), 이그니오와 원아시아파트너스 등 그동안 최 회장 체제에서 고려아연이 해온 투자 건을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MBK 측은 고려아연이 최 회장 체제에서 잘못된 투자를 계속해 기업가치 2조5000억원이 증발했다고 주장해왔다. 김광일 부회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장기적으로 이런 것(잘못된 투자)들을 없앤다면 회사의 본질적인 기업가치는 14조원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기 전 고려아연 시가총액은 10조원대에 불과했다.
MBK는 고려아연이 이그니오홀딩스, 원아시아파트너스, 정석그룹 등에 투자한 것을 문제 삼아왔다. 고려아연이 설립된 지 4개월 도 안 됐던 원아시아파트너스에 900억원을 약정해준 걸 시작으로 3~4년 간 8개 펀드에 5000억원 이상을 출자한 게 지창배 원아시아 대표와 최윤범 회장의 친분 관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아시아 펀드는 SM엔터테인먼트의 시세 조종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으며, 한진그룹 계열사 정석기업에 투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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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운 기자(j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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