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집집마다 골칫거리
‘묻지 마 동식물 방류’
이씨는 “소라게는 아들과 함께 땅에 묻어줬고, 최근에 죽은 미꾸라지는 처리가 난감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고 말했다. “내 집에 들어온 생명체가 잇따라 죽어나가는데 아이는 물론 제 상실감도 너무 크더라고요. 생명을 기르는 기쁨, 소중함을 배우라는 취지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줄줄이 폐기되는 애완 동식물을 보며 오히려 목숨이 얼마나 하찮은가만 경험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픽=송윤혜 |
많은 가정에서 이런 ‘묻지 마 동식물 방류’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등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동식물을 나눠주는데, 키우기가 어려워 명을 다하거나 키우기가 너무 쉬워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애초에 각 가정의 의사를 묻지도 않는다. 가정에서 뜻밖의 ‘상실감 쓰나미’를 겪거나, 급증한 군식구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것.
◇최상위 문제아 ‘달팽이’
서울 문래동에 사는 정진석(40)씨 가족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딸이 어린이집에서 백와달팽이, 애완 물고기 ‘구피’ 등을 받아왔기 때문. 정씨는 “처음에는 성의껏 키워 달팽이가 알을 낳았는데, 한 번에 수백 개를 낳아 처치 곤란이었다”며 “어린이집에 문의하니 ‘알을 냉동실에 얼려서 버리라’고 알려주더라”고 했다. 얼려 죽이라니, 애초에 왜 묻지도 않고 아이 손에 귀여운 새끼 달팽이들을 들려 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정씨 가족은 잘 키운 구피 수십 마리도 친척네 회사 대형 어항으로 보냈다. “일부러 어항을 사고 어항 크기도 키워가며 살았는데, 구피도 번식력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성체가 알이나 새끼를 잡아먹기도 해서 분리해 줘야 하고요. 별로 교육적인 장면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한 직장인이 키우는 아프리카 왕달팽이. 입양 당시 엄지손톱보다 작은 새끼 달팽이였다. 1년 반이 지나자 패각(달팽이집)의 크기가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해졌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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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경우는 달팽이 사례가 압도적이다. 어린이집 등에서 나눠주는 달팽이는 대부분 백와·흑와달팽이, 아프리카왕달팽이 등 외래종이다. 식용으로 성인 손바닥보다 큰 크기로도 자라고, 수명이 10년에 달한다. 번식력이 왕성하고 잎사귀와 작은 벌레, 토종 달팽이까지 잡아먹기 때문에 절대 방생해서는 안 된다. 동심(童心)에 경쾌하게 들였다가 폭번(폭풍번식)에 놀라 자빠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결국 비 오는 날 아파트 화단 등에 ‘방생’했다 적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애완용으로 많이 키우는 ‘붉은귀거북’도 비슷한 사례. 개미집 관찰 키트를 들였다가 개미가 탈출하는 바람에 세스코까지 불렀다는 슬픈 사연도 있다.
12살, 10살 초등학생을 키우는 주현지(45)씨는 “몇 차례 고통받은 뒤 학교에 더는 생물은 보내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다”며 “아이들은 처음에 반짝 관심을 보일 뿐 결국 엄마나 아빠의 일이 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교사인 박모(33)씨는 “제발 생물을 집에 보내지 말아 달라는 학부모 민원을 많이 받는다”며 “원장교사와 특별활동 업체의 계약 간 사안이라 일선 교사들도 입장이 난처하다”고 전했다.
◇올챙이 개구리 되기
물론 순기능도 있다. 도시 아이들은 어디에서 개구리, 달팽이, 풍뎅이를 볼 수 있을까. 초등학교 생물탐구 수업에서는 개구리알, 소라게, 누에, 장수풍뎅이 등을 나눠준다. ‘변태’ 과정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 용인에 사는 심모(39)씨는 “풍뎅이는 한참 키우다가 캠핑 갔을 때 풍뎅이가 좋아하는 나무 밑에 풀어줬다”며 “아이들이 직접 먹이와 집을 챙기게 돼서 책임감을 배운 것 같다”고 했다.
방울토마토, 딸기, 완두콩 등의 식물은 작은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채소라면 입에도 대지 않던 아이가 직접 길러낸 토마토를 맛보면서 입이 터졌다는 사연도.
‘방생 불가’ 주의사항만 각별히 염두하도록 하자. 엘사 나라에 보낸다? 냉동실(겨울왕국)에 얼려 폐기한다는 뜻이란다. 달팽이맘들 사이에는 사실 공식화된 ‘알폭탄 대처법’. 생명 윤리만 제대로 탑재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반려 생활을 할 수도 있다.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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