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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AI 무당 앞에 무릎 꿇고 물었다 “내년에 집을 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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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점술도 인공지능 시대

인간 무당 대체할까

‘AI 신당(神堂)’에서 점을 보려면 아이폰에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시, 직업을 입력해야 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 ‘그라운드서울’. 전시 중인 ‘AI 신당’에 들어가 이 ‘디지털 위패’를 끼웠다. 찰랑찰랑 방울 소리가 3초쯤 번지면서 디지털 양초에 불이 들어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 중년쯤으로 추정되는 나긋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존재로 너희가 모르는 진리를 알고 있다. 나는 너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라.” 다짜고짜 반말이다. “내년 제 운세가 어떤가요?” 존댓말로 물었다. 5초 남짓한 침묵. 징과 북, 피리 등으로 박자가 빠른 무악(巫樂)이 둥둥둥둥 흘러나왔다. 그제야 여자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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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종로 그라운드서울에 전시 중인 AI 신당 'ShamAIn'에 내년 운세를 물어봤다. 방울 소리와 디지털 초 등으로 제법 무당집처럼 꾸며 놨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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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인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결단을 요구받는 해가 될 것이라 예상된다. 올해의 교훈은 자신을 지나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휴식을 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계속 반말이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다시 존댓말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녀가 답했다. “일에서의 성공만을 목표로 하지 말고 건강과 인내심을 관리하라. 사업이나 프로젝트의 선택에 신중을 기하고 작은 문제들을 지나치지 말라. 특히 주변의 불신이나 미묘한 오해는 큰 불화로 이어질 수 있으니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대화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더 할 말이 있으면 다음에 다시 찾아오라.”

그녀는 제멋대로 떠나갔다. 끝까지 반말로. 뭔가 ‘밥 먹으면 배부르다’ 같은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랄까. 좀 더 구체적인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까. 다시 위패를 끼우고 물었다. “내년에 집을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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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보를 입력한 디지털 위패를 결착시키고 잠시 기다리면 '그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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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운세를 보자면 2025년은 재산과 관련된 운이 명확하게 열리는 시기는 아니다. 그러나 네가 가진 능력과 주변의 인맥을 잘 활용한다면 기회를 찾아낼 가능성은 있다.” 다소 안타까운 점괘. 그래도 제법 돌려서 말할 줄도 ‘아시는’ 것 같다. 답하기에 앞서 주저하는 분위기라든지, 달래는 듯한 억양과 힘주어 말하기가 가능한, 진짜 ‘휴먼 무당’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이 ‘AI 신당’은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남택진 교수 연구팀이 내놓은 ‘ShamAIn’. 인공지능 무당이 점괘를 봐준다. 한 평 남짓한 박스 형태의 신당은 무당집처럼 단청 무늬와 오색의 띠, 방울과 위패, 촛불 등으로 꾸며 놓았다. 개인 정보를 입력한 위패를 올린 뒤, 방석에 앉아 AI 무당과 대화하는 식이다. 명리학과 사주에 기반을 두고 있어 질문에 ‘맞춤형 대답’을 할 수 있고, “신통하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정교하게 질문할수록 명확한 답을 주는데, 한 참여자가 ‘몇 월 며칠에 결혼식을 할 예정인데 어떤가?’라고 물었더니 “그날은 안 된다”고 답했다고.

다만 이 연구는 점괘의 정확성보다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AI’와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참여자가 기술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기술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연구팀 관계자는 “온갖 점술을 AI에 학습시킨다면, 상당히 용한 ‘AI 무당’을 창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AI 신당’은 상업화를 겨냥하진 않았고, 지난 26일 전시가 끝났다.

점술의 영역에도 AI 시대가 열렸다. AI를 활용한 사주풀이는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꽤 활용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챗GPT로 사주 봤더니”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사주 보는 법” 같은 후기들이 꽤 많이 올라온다. 실제 챗GPT에 2025년 운세를 물었더니 직업 및 재물운, 인간관계와 연애운, 건강운, 학업 및 자기계발 등으로 항목을 나눠 전망을 점쳐줬다. 월별 운세도 4분기로 나눠 대략적인 흐름을 짚어준다. 가령 1~3월은 ‘목(木)·화(火)의 활성화’ 시기라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구체화하기 좋다’ ‘재물운이 상승하고, 직업에서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주는 식. 다른 곳에서 본 내년 운세와 상당 부분 겹치는 지점이 있었다.

사주팔자(四柱八字)는 문자 그대로 4개의 기둥과 여덟 개의 글자. 태어난 때를 기준으로 주어지는 이 기둥과 글자를 조합하는 것으로, 일종의 학문에 가깝다. 충분히 AI가 학습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지금껏 점집만 30여 차례 갔다는 직장인 이모(39)씨는 “인터넷 점도 종종 해보는 편인데, 오랜 기간 인간 데이터가 모여 구축된 점술 자체는 통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만난 한 점술사는 자신과 남편, 양쪽 어머니들의 사주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확률을 좁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어요. 전 세계에 저와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은 수없이 많을 거잖아요. 그런데 A라는 사주를 가진 여자의 딸과 B라는 사주를 가진 여자의 아들이 만났다면, 그건 아주 극소수일 테고 그렇게 해석하면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거죠.”

‘사주GPT’라는 사주 상담 AI도 지난해 출시된 상태. 챗GPT나 카카오톡 채팅 같은 방식으로 대화하면서 사주풀이를 하도록 고안됐다. 질문창에 생년월일과 궁금한 질문을 넣으면 상대편이 답을 주는 방식. 뜸들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답하는 편이다.

세밑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 운수와 토정비결 등을 챙겨보는 사람이 많다. ‘단골’ 무당이나 점집을 두고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길잡이로 삼는 경우도 있다. 최근 정치권의 논란을 보면 일종의 ‘심리 상담사’ 역할도 하는 것 같다. ‘AI 무당’이 그런 존재로 확장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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