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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르포] AI로 전기요금 아껴주는 英 1위 전력회사 ‘옥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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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찾은 영국 런던에 있는 전력회사 옥토퍼스 본사. 2016년 설립된 옥토퍼스는 출범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영국 전력시장에서 1위로 올라섰다. 옥토퍼스의 강력한 무기는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 자회사 크라켄 테크놀로지다. 크라켄 사무실에는 각종 그래프와 수치가 표시된 화면이 곳곳에 있어 전력회사가 아니라 정보통신(IT) 회사 같았다.

에너지 요금이 비싼 것으로 악명 높은 영국에서는 각 가정이 전기요금이 싼 전력업체를 고를 수 있다. 과거 영국 전력시장은 브리티시가스, EDF에너지, E.ON, OVO에너지, 스코티시파워, SSE 등 ‘빅6′가 견고한 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옥토퍼스에너지(Octopus Energy·이하 옥토퍼스)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늘리면서 8년 만에 1위 전력회사(4월 기준 영국 가정용 전기 시장 점유율 22%)로 성장했다.

전력을 생산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옥토퍼스는 설립 초기 외부 발전사에서 전기를 구매해 소매시장에 판매하는 전력 도매업체 역할만 했다. 지금은 풍력·태양광 발전소를 직접 운영하며 기업가치는 90억달러(약 13조원)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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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림 셀랄 크라켄테크놀로지 최고 마케팅 책임자(CM&FO)./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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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수준인 배전망 사용률, AI로 확 늘려

옥토퍼스의 빠른 성장 비결은 인공지능(AI) 기반 에너지 플랫폼 자회사 ‘크라켄 테크놀로지’(Kraken Technologies)이다. 크라켄은 옥토퍼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그레그 잭슨(Greg Jackson)과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제임스 에디슨(James Eddison)이 사내 기술 플랫폼으로 만든 회사다. AI로 데이터를 분석해 에너지 소비를 예측하고 공급을 최적화한다.

과거엔 정부 주도로 도시 외곽에 건립된 거대한 석탄, 가스, 원자력 발전소가 수백만 가정과 사업체에 전기를 전송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은 소규모 태양광, 풍력 발전시설이 등장하면서 에너지 공급이 ‘중앙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바뀌었다. 에너지도 한 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흐르게 됐는데, 이런 변화로 전력망(그리드)의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해졌다.

옥토퍼스 내부 통계에 따르면 일반 전력회사가 구축한 배전망의 평상시 사용률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85%는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시간을 위해 넉넉하게 확보해 놓은 일종의 안전판이다. 전기차와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가 늘면 이 안전판의 용량도 증가해야 한다. 전력망을 늘리면 비용이 늘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 크라켄은 AI를 활용해 배전망을 늘리는 대신 전력 수요·공급을 최적화함으로써 비용을 줄였다.

데브림 셀랄(Devrim Celal)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태양과 바람으로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하는 지금 시스템에서 에너지 공급·수요 관리가 훨씬 복잡하다. 발전원이 분산돼 있고 전력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력 네트워크를 물리적으로 확대하기보다 평소 네트워크 용량을 30~50%로 늘리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여기서 AI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크라켄이 옥토퍼스의 비용을 절감해준 덕분에 옥토퍼스는 저렴한 전기요금을 앞세워 설립 8년만에 900만명이 넘는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크라켄은 현재 30만개 이상의 전력자원(DER)과 50GW(기가와트) 이상 규모의 전력을 감독하고 있다. 1GW는 통상 원전 1기의 발전 용량이다. 잭슨 CEO는 “크라켄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이라며 “유틸리티 산업(Utility·전기나 물처럼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에서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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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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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로 전기요금 낮춰… 경쟁사 전력 흐름도 관리

크라켄 AI는 전력 공급과 수요를 예측해 요금이 쌀 때 전력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하루 중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대와 날씨 같은 통상 수요 요인뿐 아니라 바람이 많이 불거나 일조량이 많아 풍력·태양광 발전량이 늘어나는 공급 요인도 고려한다. 크라켄은 집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이나 배터리(에너지 저장장치)에 남은 전력을 되팔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셀랄 CMO는 “크라켄 기술을 통해 소비자는 가장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전력을 소비할 수 있고 생산자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에너지규제기관(Ofgem)이 지난 10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옥토퍼스의 전기요금은 업계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옥토퍼스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가구가 부담하는 연간 평균 요금은 1553파운드(약 285만원)로, 영국 중대형 공급업체 중 가장 낮았다. 브리티시가스와 EDF에너지 등 경쟁사의 연간 에너지요금은 1563~1568파운드였다.

크라켄은 옥토퍼스와 경쟁 관계에 있는 EDF에너지, E.ON넥스트, 오리진, 도쿄가스도 고객사로 두고 있다. 한화에너지 호주법인의 전력 소매 사업 브랜드 넥타(Nectr) 역시 크라켄의 고객이다. 크라켄은 전력시장뿐 아니라 수도와 통신 분야로도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크라켄이 관리하는 고객의 계정은 6000만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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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에 개소한 크라켄 테크놀로지 기술허브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앤디 몰리뉴(왼쪽) 박사와 베키 브룩스 호와스 스마트플렉스 프로덕트 리더./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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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켄은 맨체스터에 에너지 기술허브(EnTech superhub)를 열었다. 지난 11월 기술허브에서 만난 크라켄 엔지니어링·통합 이사 앤디 몰리뉴(Andy Molineux) 박사는 “크라켄은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전력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제조업체와 협력한다. 테슬라와 포드 전기차, 미쓰비시 히트펌프(특정 장소의 열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 사용하는 기계)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토퍼스는 효율적인 에너지 시장을 구축하려면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활용하고 정부와 관련 기업이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셀랄 CMO는 정부 주도로 태양광 패널을 대거 공급했지만, 지역 정부의 규제로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호주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가장 큰 과제는 작은 사일로(silo)에서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라며 “전체적인 시스템 설루션을 생각하려면 각국 규제 당국은 기술회사, 유틸리티, 거래업체와 모두 함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맨체스터(영국)=연선옥 기자(acto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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