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탑승객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2024.12.29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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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비행기) 날개에 껴서 착륙 못하는 중. 유언해야 하나.’
29일 오전 9시경 태국 방콕공항을 출발해 전남 무안국제공항으로 착륙하려던 제주항공 7C2216편 탑승객이 공항에 마중나온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다. 카톡을 받은 가족은 30여분 후 ‘왜 전화가 안돼’냐고 물었지만 더 이상 응답을 받지 못했다.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일 탑승객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받은 가족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인 전남 화순군청 직원의 남편은 “사고 직전에 비행기가 착륙 준비 중이라는 카톡을 받았는데 너무 황망하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를 목격한 무안국제공항 근무하는 한 여성 직원은 “착륙하던 비행기에 불꽃이 튀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었다”고 했다.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국토부와 소방서 관계자들이 여객기 추락 사고 유가족들에게 현장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12.29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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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도관광 보내드렸는데…” 절규로 가득 찬 무안공항
29일 오후 6시경 소방 관계자가 “현재 희생자 95명의 인적사항이 확인됐다”고 말하자 무안공항 2층 대합실은 절규와 눈물바다로 변했다. 전남 화순군 주민 최모 씨(46)는 “부모님을 효도관광으로 태국여행을 보내 드렸는데 이런 사고가 났다. 너무 죄송스러워 말을 못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위암 투병 치료가 겨우 끝나 친구들과 방콕으로 골프 여행을 갔던 어머니 김모 씨(50)의 사고 소식을 듣고 온 아들 김모 씨(22)도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 김 씨는 3년 전 사별한 남편과의 신혼여행 이후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 위암 수술을 받은 김 씨는 1년가량 투병하다가 최근에야 치료가 끝난 상태였다. 아들 김 씨는 “어머니가 이제 좀 건강해져서 마음이 놓였었다. 여행 가신다고 들뜨셔서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이렇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애띤 얼굴의 한 남매는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공항에서 사고 소식이 흘러나오는 TV를 줄곧 응시했다. 남매는 이날 둘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광주에서 무안 공항으로 달려왔다. 이 남매는 “평소 뉴스를 보지 않아 소식을 몰랐다가 낮 12시쯤 어머니 친구 분이 연락을 해줘서 알게 됐다. 친척 분의 차를 얻어 타고 공항에 오게 됐다”고 울먹였다.
한 70대 부부는 아들 가족 4명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아이고 우리 애들 불쌍해서 어떻게”라고 절규했다. 희생자의 아버지라고 밝힌 한 남성은 “비행기에 탄 아들 부부의 소식을 듣기 위해 병원에 연락했지만 확인이 안된다고 해 무작정 공항으로 달려 왔다”고 했다.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국토부와 소방서 관계자들이 여객기 추락 사고 유가족들에게 현장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12.29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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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들 “사망자 명단 왜 다르냐” 항의도…비통한 전남
이날 소방 당국이 호명한 사망자 명단이 앞서 알려진 것과 달라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부 가족은 “좀 전에 (사망자로) 호명한 분이 지금 공개한 명단에는 없다”며 “우리 가족은 살아있다는 것이냐”고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습 상황 등을 신속히 알려주지 않았다며 정부 당국을 비판하는 유족들도 있었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 대부분이 전남·광주 지역민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사회도 슬픔에 잠겼다. 실제로 전남 영광군 군남면에 거주하는 일가족 9명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실종됐다. 전남도 출연기관에서도 함께 여행을 떠난 젊은 연구원들이 실종됐다. 전남도교육청에서는 2019년경 사무관으로 승진한 후 동기 모임을 가졌던 여성 간부 5명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다.
전남 지역에서 여객기 추락 참사가 발생한 건 1993년 7월 26일 이후 31년여 만이다. 당시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목포공항으로 향하던 아시아나 항공기가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뒷산에 추락해 68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우가 쏟아진 덕에 기체가 폭발하거나 화재가 발생하지 않아 탑승객 116명 가운데 48명은 구조돼 사고 규모에 비해 희생자가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7일간을 항공 여객기 참사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5·18 민주광장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한다. 전남도는 무안스포츠센터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분향소를 설치하고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무안군은 무안국제공항 옆에 가족들을 위한 텐트 200개를 설치하기로 했다.
● ‘버드 스트라이크’ 주의보에 지방공항 비상태세
이번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원인으로 ‘버드 스크라이크’(조류 충돌)이 거론되면서 국내 지방공항들도 비상태세에 들어갔다. 이날 제주국제공항은 조류 퇴치 인원을 확대하는 등 비상대기태세를 발령해 유지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비상대기태세 발령에 따라 제주국제공항은 항공기 조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활주로와 보조 활주로에 배치된 조류 퇴치 인원을 기존 4명에서 6명으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제주국제공항 인근에서 엽총과 경보기 등을 활용해 조류의 공항 유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또 제주국제공항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소방 인력 62명이 4교대로 3분 이내에 사고 현장으로 도착할 수 있도록 24시간 출동 태세를 갖추고 공항 내 순찰도 기존 2시간에서 1시간으로 강화했다.
김해국제공항도 조류 퇴치를 위한 안전대책 강화에 신경을 쓰고 있다. 김해공항은 활주로와 계류장 등 공항 주요시설에 대한 현장을 점검했다. 남창희 김해공항장은 “무안공항 사고와 관련해 30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고 예방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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