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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10월 2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 시상식에서 피아노 부문과 특별상 '젊은 예술가' 부문 상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런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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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님의 공연을 봤다. 그곳에서 나는 음악과 하나 된 한 정열적인 청년을 목도했다.
서양에서 예술은 수학과 더불어 ‘진리에 이르는 정당한 수단 중 하나’로 인식됐다. 해서 ‘악성’(베토벤) ‘음악의 아버지’(바흐) ‘음악의 어머니’(헨델)처럼 음악가에게는 최고의 존칭이 붙여졌다. 음악은 속됨을 털어내고 성스러움에 이르는 정화기제(淨化機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음악은 도덕적 엄숙주의에 갇혀 ‘딴따라’ 취급을 받았다. 음악은 즐거운 것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산란함이기 때문이다. 성리학적 도덕률에 갇힌 방정함 속에서 음악은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조선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세종 때의 난계(蘭溪) 박연(1378~1458)이 있다. 그는 궁중음악인 아악(雅樂)을 정리한 분이다. 음악에 미친 사람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정부의 필연성에 맞춘 국가 음악의 정비자였다. 이는 그가 1411년 문과에 장원 급제한 인물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박연은 오원(吾園) 장승업(1843~1897) 같은 예술적 천재가 아닌, 음악도 아우를 수 있는 학문적 천재였던 것이다.
성리학이 추구한 것은 인간 내면의 본성 탐구다. 이는 감정을 넘어선 이성의 균형 잡힌 완전성이다. 이런 점에서 감정을 격발하는 음악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 그림이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책의 기운, 문자의 향기)을 통해 문인화의 타당성을 주장한 것과 달리, 음악의 특수성은 문인악의 개념을 성립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유교에 주자처럼 ‘엄숙한 꼰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자는 제나라에서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를 배움에 심취해서 3개월간 고기 맛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공자는 배움에 분발하여 늙음이 장차 닥치는 줄 모르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논어에는 “음악으로 완성된다(成於樂)”는 말까지 있다. 실제로 공자는 음악이 충만한 세상이야말로 최고의 정치가 구현되는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공자는 음악에 의한 내면의 승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의 음악을 옥좼던 것은 공자가 아닌 주자의 엄숙주의였다.
음악에 대한 찬반 논란은 불교에도 있다. 소승불교는 감정을 부정하는 강력한 이성주의를 견지한다. 이로 인해 승려의 규율집 율장(律藏)에 음악은 용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감정에 대한 판단에 따라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에 변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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