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美대통령 별세
땅콩농부 출신, 39대 대통령 당선
석유 파동·미국인 이란 억류 위기
이스라엘-이집트 '중동협정' 체결
미중 공식 수교로 관계 정상화도
백악관 떠나 阿·중동서 인권 신장
40년간 봉사···2002년 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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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40여 년간 세계 평화, 민주주의, 인권 신장에 기여해 ‘최고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간) 호스피스 돌봄 중 별세했다. 향년 100세.
이날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카터재단은 “카터 전 대통령이 조지아주 고향 마을 플레인스 자택에서 가족들이 있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앞서 2022년 10월 카터 전 대통령은 98번째 생일을 맞으며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장수한 인물이 됐다. 과거 암 투병을 한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가정에서 호스피스 돌봄 치료를 받아왔다.
부친의 땅콩 재배 사업을 물려받은 ‘땅콩 농부’ 출신의 카터 전 대통령은 1962년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경쟁자의 부정선거로 당선되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71년 조지아주 주지사로 당선됐고 1976년 공화당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과 대선에서 맞붙어 접전 끝에 승리, 1977년부터 1981년까지 39대 대통령을 지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외교는 물론 국내 문제에서도 많은 위기를 겪었다. 1979년 이란혁명으로 세계 원유 공급이 중단되는 ‘2차 석유파동’이 발생했고 고물가와 높은 실업률이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이란혁명 후 강경파 대학생들이 미국 대사관을 점거, 대사관 직원 등 52명을 444일간 억류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특수부대를 투입한 구출 작전을 벌였지만 미군 8명만 숨진 채 실패로 끝나면서 지지율이 추락했다. 1979년 3월에는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2호기 노심(원자로 내부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미국 원전 사상 최악의 사고도 발생했다. 결국 1980년 대선에서 ‘위대한 미국’ 건설을 내건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가 무려 44개 주에서 승리하며 카터 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하지만 업적도 있었다. 1978년 9월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중동 협정 체결을 주선했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듬해 양국이 적대 행위를 끝낸다는 조약으로 이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재임 중 가장 큰 유산”이라고 짚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79년 1월 미중 국교를 수립하기도 했다. 이때 덩샤오핑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는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백악관에 초대받기도 했다. 1972년 이른바 ‘핑퐁 외교’로 미중 관계 정상화의 물꼬가 트였다면 카터 전 대통령이 이를 공식 수교로서 완성한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의 업적 중 많은 부분은 대통령직 퇴임 후 이뤄졌다”며 “현대 미국 역사상 가장 활동적인 전직 대통령으로, 전 세계 부정선거를 감시하고 빈곤층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등 인권을 옹호하는 40년 이상의 업적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짚었다.
실제 57세의 나이에 백악관에서 나온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이듬해 세운 카터센터를 바탕으로 평화·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신장, 질병 퇴치를 위한 활동에 나섰다. 외교 측면에서는 관례상 전면에 나설 수 없는 현직 대통령, 미국 정부를 대신해 ‘특사’ 역할을 했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평화사절단을 이끌고 분쟁 지역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수단을 방문했다. 199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라울 세드라스 장군의 자진 사퇴를 설득하기 위해 아이티를 찾기도 했고 같은 해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전쟁 중단 협상을 위해 현장을 찾는 등 평화 중재를 했다. 2002년 5월에는 외교 단절 후 미 최고위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났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돕는 봉사 단체 해비타트 프로젝트(사랑의 집짓기) 활동에 부인과 함께 30년 넘게 참여해 봉사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기업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고 높은 강연료를 주는 연단에도 서지 않았다. 2018년 WP 인터뷰에서 “백악관에 있었던 것으로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며 “부자가 되는 것은 내 야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 특파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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