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10월 강원 철원군 근남면 적근산 일대에서 한 유해를 발굴했다. 넙다리뼈(골반과 무릎 사이의 뼈)가 발굴된 지점에서는 인식표도 함께 발견됐다.
이 인식표는 신원 확인 속도를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해 발굴 이후 유가족 시료 채취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데 불과 4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보통은 적어도 3~4개월가량 걸린다. 현재까지 6·25 전사자 유해 발굴에서 인식표가 함께 발견된 경우는 전체 245명 중 42명(약 17%)에 그친다.
오 하사는 1931년 경남 고성군에서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1950년 11월 작은형과 함께 부산 제2훈련소로 입대했고, 이후 국군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됐다. 오 하사는 이듬해 1월부터 4월까지 진행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 5월에 진행된 ‘청계산·백운산 진격전’에 투입됐다.
오 하사는 그해 8월3일 ‘734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해당 전투는 철원군 일대 주요 지역인 734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벌인 공방전을 말한다. 오 하사와 함께 입대한 작은형 오재용씨는 전투 중 부상을 입고 귀향했고, 상이군인으로 지내다 33세에 숨졌다.
국유단은 이날 오 하사의 고향인 경남 고성군의 유족을 방문해 유품 등을 전달했다.
오 하사의 막내 여동생 오점순씨(89)는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빠가 고향 집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오빠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유 없는 눈물과 통곡이 절로 나오더라. 자기 유해가 돌아왔다고 꿈에 나온 게 아닌가 싶다”며 “오빠를 국립묘지에 묻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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