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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이름에 담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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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성중 소설가


어수선한 한 해의 마지막 독서로 도스토옙스키(사진)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펼쳤다. 오래전에 읽은 책을 새 번역으로 만나니 처음 보는 책처럼 신선하다.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무책임한 난봉꾼에 추한 인간의 전형이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의 격분을 물려받은 장남 드미트리, 차갑고 이성적인 이반, 선한 알료샤가 그들이다.

도입부 모퉁이에서 지금껏 몰랐던 사실을 발견했다. 대사제 조시마에게 마을 아낙들이 찾아온다. 연달아 아이를 잃은 엄마, 자신을 학대하는 남편의 죽음을 바랐던 아내 등 고통 속에 길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무 용건 없이 신부님이 건강한지 보러 왔다며 쌈짓돈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달라는 아낙이 있다. 신부는 안고 있는 아이는 딸이냐고 묻는다. “제 딸이에요. 제 기쁨이지요. 리자베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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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베타! 이 이름이 나를 강타했다. 리자베타는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에 등장한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직후 찾아온 노파의 동생 리자베타를 얼떨결에 죽여 버린다. 주인공은 첫 번째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지만, 두 번째 살인에는 명분이 없다. 착하고 순박한 리자베타는 일평생 학대만 당해온 죄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희생자가 작가의 마지막 작품에서 다른 존재로 환생한 것이다. 사랑 많은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가 되어. 작은 발견이 내 마음을 환히 밝혀주었다.

이 이름은 한 번 더 나온다. 표도르의 사생아, 스메르쟈코프의 백치 엄마의 이름도 똑같다. 작가와 똑같은 뇌전증을 앓고 있는 친부 살인자 스메르쟈코프를 낳은 사람이 리자베타였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악에 관하여, 그리고 이 비천하고 혐오스러운 인간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다뤄온 대작가다. 그런 그가 이 이름에 계속 다른 존재를 담은 것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아마도 세상의 무수한 ‘리자베타’형 인간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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