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정 문화부 기자 |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인물 이카로스는 태양에 다가가려고 욕심내다 그만, 밀납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 추락사한다. 디즈니의 ‘라이온 킹’ 시리즈 프리퀄 영화 ‘무파사’(사진)에 쏟아진 혹평을 종합하면 딱 이카로스가 떠오른다.
기술력은 눈부시다. 납작한 2D 애니메이션이었던 원작과 비교하면, 컴퓨터그래픽(CG)으로 그려낸 사자며, 아프리카 동물들, 자연 풍광이 감쪽같다. 그러나, 불쾌감의 골짜기도 그만큼 커졌다. 암만 ‘실사 영화’로 주장해봐야, 사자가 말하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가짜란 게 들통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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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무파사’는 원작의 주인공 심바의 아버지이자, 모든 종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이상주의적 왕. 악당 맹수들과 싸울 땐 자연 다큐멘터리 속 사자처럼 맹렬하지만, 절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영장류 일종인 맨드릴, 멧돼지와 미어캣과는 둘도 없는 친구다. 자연 다큐멘터리 못지않은 기술력을 자랑하고픈 제작진의 욕심과 어린이 영화란 본분이 매 장면 충돌한다. 동물들의 인위적 모습이 어린이 관객에게 실제처럼 각인된다면 더 무서운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토피아’ ‘달마시안’ 등 디즈니 동물 애니메이션이 흥행할 때마다 관련 동물이 불법 거래, 대거 유기되는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반화한 요즘은 SNS상에서도 귀여운 동물이 인간 아기를 돌보는 AI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달성한다. 얼핏 잘 훈련된 동물로 헷갈릴 만큼 감쪽같다. 온라인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에겐 아무런 여파가 없을까, 걱정도 앞선다. 기술로 인한 변화를 막을 순 없지만, 글로벌 영향력이 큰 디즈니 같은 회사는 좀 더 영민한 해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기술 일변도에 취한 영상업계에 전하는 노파심이다.
나원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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