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이 뽑은 2024 신인감독 데뷔작
상영관 적어 놓쳤지만…제2 봉준호 탄생할까
영화 '핸섬가이즈'는 전원 생활을 꿈꾸던 목수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가 뜻밖에 악령이 들린 집으로 이사 오며 벌어지는 슬래셔 코미디다. 신인 남동협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사진 N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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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영화가 없다’던 지난 한해 극장가. 이렇게 호평 받은 작품들도 있었다. “극장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답해준다”(백재호 영화감독)고 칭찬 받는 ‘장손’. 또 오컬트 코미디 ‘핸섬 가이즈’는 “영화 정서는 B급, 감독 역량은 A급”(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으로 평가받는다. 서울 무대의 로맨스 ‘미망’은 해외에서도 “‘비포’ 시리즈에 대한 한국의 답장”(토론토국제영화제)으로 인정한 수작. 모두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다.
개봉관 수는 적었지만, “이미 완성형”(김혜선 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이란 감탄을 자아낸 숨은 데뷔작 5편을 꼽았다. 영화감독, 평론가, 제작자, 프로그래머 등 영화인 15인이 2024년(개봉 기준) 놓치기 아까운 데뷔작 3편씩을 투표해 득표순으로 정리했다. 봉준호‧박찬욱 등 기성 거장들을 잇는 한국영화 ‘넥스트’가 안 보인다는 국내외 우려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신인다운 패기를 밀어붙인 연출로, 한국영화 새 바람을 일으킬 빛나는 재능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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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3대 비밀과 거짓말 '장손' 1위
압도적 1위는 지난 추석 연휴 “우리 집 얘기 같다”며 화제에 오른 오정민 감독의 ‘장손’이다. 대구 시골에서 두부공장을 하는 김씨 3대의 얽히고설킨 70년 가족사를 수려한 한옥 풍광에 담았다. 조부 세대와 작별하는 7분가량 롱테이크 엔딩신, 제사‧장례식 등 전통제례 장면은 요즘 상업영화에선 보기 드문 미학을 성취한다.
이상용 영화 평론가는 “(세대 차이로) 더 이상 통합되지 않는 대가족의 사연을 하나의 프레임과 풍경으로 담으려는 야심”에서 시대정신을 읽어냈다. 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 주희 이사는 “가족 내 숨겨진 비밀과 갈등을 스릴러처럼 긴장감 넘치게 풀어낸다”고,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안소현 국장은 “한국현대사와 사라져가는 것들을 유려하게 담아냈다”고 추천했다.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KBS독립영화상‧CGK촬영상‧오로라미디어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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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넓힌 상상 '핸섬가이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인생 권태기 11살 동춘이(박나은)와 말하는 막걸리의 기막힌 우정과 모험을 담은 성장 드라마다. 사진 판씨네마, 홈초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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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올여름 177만 컬트 관객을 사로잡은 ‘핸섬가이즈’가 2위에 올랐다. 험악한 외모 탓에 원치 않게 사망 사건에 휘말리는 두 목수(이성민‧이희준)의 소동극에 악령 씐 집이라는 오컬트 요소를 가미했다. 캐나다 영화가 원작이지만, “한국적 요소를 기막히게 리믹스”(김혜선)해 “토착화에 성공적”(강성률 영화 평론가)이란 평가. 영화 ‘부산행’을 제작한 이동하 영화사 레드피터 대표는 “오랜만에 만나는 B급 정서의 도전적 영화”라고, 정윤철 감독(‘말아톤’ ‘대립군’)은 “한국 영화 지평을 넓혔다”고 짚었다.
영화 '미망'은 서울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그려낸 로맨스로, 거리에서 우연히 과거의 연인이었던 ‘남자’를 재회한 ‘여자’의 시간을 따라간다. 사진 영화사 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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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는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차지했다. 조기 입시교육에 지친 11살 동춘(박나은)에게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막걸리가 페르시아어 모스부호로 말을 걸어온다. “엇비슷한 한국영화 틈바구니에서 눈에 띄게 엇나가는 상상력”(김세윤 MBC 라디오 작가)과 “교육 현실에 대한 예리한 시선”(주희)이 돋보인다.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는 “창의력으로 전진하는 영화”라며 “신인감독에게 바라는 건 이런 종류의 일탈”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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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미망', 리얼리즘 수작 '딸에 대하여'
영화 '딸에 대하여'(감독 이미랑)는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행위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 작품이다. 사진 찬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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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미망’(감독 김태양)은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과거 연인을 재회한 남녀의 낮과 밤을 수년에 걸쳐 좇는 로드무비다. “시간과 공간, 감정과 기억을 다루는 사려 깊은 솜씨”(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에 매료돼, “아직도 (영화) 마지막 장면의 버스에 타고 있는 듯하다”(김세윤)는 감상평이 잇따른다. “삶과 이별에 관한 묵직한 메시지가 깊이를 더하는 영화”(허남웅 영화 평론가)다. 토론토국제영화제 넷팩 심사위원 특별언급, 우디네 극동영화제 신인감독상 등을 석권했다.
영화 '벗어날 탈 脫'은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영목’과 작품을 위해 영감을 기다리는 ‘지우’ 앞에 드러난 미스테리한 번뇌의 순간을 그렸다. 사진 씨네소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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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는 동명 소설을 토대로 이미랑 감독이 각본‧연출한 ‘딸에 대하여’다. 혼자 사는 요양보호사 엄마, 동성애자 딸 커플, 존경받는 자선업가였던 치매 노파를 통해 “묵직하고 뚝심 있게 소수자‧노인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리얼리즘 수작”(정민아 영화 평론가)이다. “예민한 테마와 이야기를 적절한 톤으로”(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담아내, “방 한 칸 내주는 것보다 마음 한 칸 내어주기가 더 쉽지 않은 세상에서 각별한 연민과 연대”(김세윤)를 보여준 연출이 호평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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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좁힌 등용문, 제2 봉준호 탄생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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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 순위권에 벗어났지만 2표 이상 받은 작품들도 있다. “불교 철학을 심도 있게 다룬”(백재호) 것으로 평가받는 ‘벗어날 탈 脫’(감독 서보형)과 “유튜브 생태를 잘 활용한 스릴러”(정민아)인 ‘그녀가 죽었다’(감독 김세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정형적이지 않게”(강성률) 그린 ‘정순’(감독 정지혜) 등이다. 수능 만점을 노리는 고3들과 귀신의 재기발랄한 술래잡기를 그린 B급 코미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은 김민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지만, 김 감독의 첫 상업영화로서 언급됐다.
■ 2024년 데뷔작 추천 영화인(가나다 순)
강성률(영화 평론가) 김세윤(MBC 라디오 'FM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 작가)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모은영(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백재호(영화감독,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안소현(인디스페이스 국장) 이동하(영화사레드피터 대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이상용(영화 평론가)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영화 저널리스트) 정민아(영화 평론가)정윤철(영화감독) 주희(엣나인필름 이사) 허남웅(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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