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반도체 비중 너무 높아
다양한 나라에 다양한 품목 수출해야
가계빚 구조조정 필요하지만 쉽지않아
부동산 '연착륙'시키는 것이 관건
트럼프 보호무역에 협상력 갖추려면
한국도 CPTPP 가입해 공동대응해야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고령화·에너지 문제 해결 등 협력 필요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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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는 한국이 걸어온 길을 폄훼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날카롭게 질문의 핵심을 파고들기도 했고, 때로는 부드럽게 역으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의 대답은 거침없었고, 막힘없었다.
인터뷰 주제는 향후 한국 경제의 방향성부터 국제 통상, 한일 관계 등 다양했는데 질문이 끝나자마자 답변을 쏟아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를 '기초 연구 부족'이라고 진단했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그는 "한국은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하지 않는다"며 "누군가 개척한 길을 빠르게 따라가면, 지금까지는 성공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초연구 확대가 필수다. 기초연구 없이는 혁신도 없다"고 강조했다. 30년 넘게 한국을 연구한 내공이 엿보였다.
예민할 수 있는 역사관 질문도 피해가지 않았다. "한국이 '우리는 지난 60주년 동안 압도적으로 경제성장하면서 일본보다 훨씬 더 높은 소득이 됐다' 식의 싸움은 소모적이고 의미도 없다"고 했을 때는 '틀림없는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금은 (싸움보다) 스타트업 육성, 고령화, 에너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는 '합리적인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국은 지금 모든 것을 혼자서 하려고 한다. 유럽의 경우 개개인의 힘은 약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일단 세력이 크기 때문이다"며 인터뷰 전반에서 한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맞춘 관계성 변화와 관련해서는 "시장, 경제 등에서 자유로운 통합이 되고 있다. 내년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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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이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한국은 현재 몇 가지 품목에 시장이 집중돼 있다. 지금까지 미국, 중국 공급망이 잘돼 있어서 한국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 상황이 (자국 우선주의 등으로) 충돌되면서 어려움이 지속될 듯하다.
―지난해와 올해가 비슷할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비중이 너무 높다. 메모리 반도체가 그렇지 않아도 굉장히 좀 가격이 왔다 갔다 하는데, (반도체에) 시장이 너무 편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도 굉장히 다양한 반도체가 있는데,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가격에 (시장 분위기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수출 다변화를 시키면서 내수 유지를 하는 정도가 되면 좀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내수 유지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가계부채는 어느 정도 구조조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부동산 가격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스스로 쉽게는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충분히 시간을 두고, 그 가치가 없는 부동산이 계속 내려가고 어느 정도 유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프트 랜딩'(연착륙)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지난해 초 '한국이 과거처럼 수출 주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은 낙관적인 생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니까 한국의 모든 문제는 '집중'에 있다. 여태까지는 굉장히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갈수록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고, 사람들이 예전처럼 미친 듯이 일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나라에, 다양한 수출품을 수출하는 게 안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다음 스텝이 안 보인다는 것인가.
▲글쎄 한국은 연구개발을 집중적으로 하는 산업은 그래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우주산업은 참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은 지금 우주산업에 대한 규모가 없다. 우주산업은 미국, 중국만이 갈 수 있는 방향이라고 본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기초 연구가 없다. 즉 위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군가 개척한 길을 빠르게 따라가면, 지금까지는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다 끝났다. 이제 스스로 기초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기초 연구 없이 완전한 이노베이션은 마련하기 어렵다. 선진국 중 기초 연구가 없는 나라는 없다.
―CPTPP 가입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이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는데, 가입 장점은.
▲그 집단 전부에 똑같은 규칙으로 무역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일본이 CPTPP 멤버인 베트남에서 원료를 가져다가 또 다른 멤버인 호주,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하려고 하면 원산지가 그냥 '메이드 인 CPTPP'로 찍힌다. 즉 베트남에서 일본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호주 등에서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이다. 원산지 규제에서 어느 정도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도 인건비 저렴한 베트남에 공장 등이 집중돼 있다. 다른 해외 생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CPTPP에 가입하는 게 장점이 더 많다는 뜻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시장이 상당 부분 합쳐지고 있다. 자연스러운 통합이 진행되고 있어서, 제 생각에는 긍정적으로 갈 거 같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고는 있지만, 한국과는 관계가 없는 문제라 크게 상관이 없을 것으로 본다.
―향후 한국, 미국, 일본이 협력할 수 있는 부문은.
▲콘텐츠다. 한국은 과거 '겨울연가'를 수출한 때부터 콘텐츠 수출의 노하우가 생겼다. 일본 시장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반대로 협력이 안되는 부분은.
▲역사. 많은 사람들이 유럽과 일본을 많이 비교한다. 독일은 열심히 과거를 반성했고, 일본은 제대로 안되고. 그게 콘텍스트가 완전히 다르다. 한국 사람들이 '기분이 나쁘고 상처를 입게 된 이유가 뭐냐' 그거를 일본에 전달하기 위한 대화가 필요한 것 같다. 한국이 '우리는 지난 60년 동안 압도적으로 경제성장하면서 일본보다 훨씬 더 높은 소득이 되고, 한류가 세계에 확산하면서 일본을 완전히 이겼다' 등의 싸움이 가장 소모적이고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싸움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산업계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조차 전혀 없다. 문제는 양쪽 다 정치인이다. 지금은 스타트업 육성, 고령화, 에너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디지털의 경우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 있으니까 거기에서 협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와 도요타가 최근에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 대대적으로 구조조정, 구조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현대차와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가솔린차로 상당한 성공을 했다. 그런데 지금 전기차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양국 모두) 산업 에너지가 없다. 따라서 전환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부분이 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실패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래서 협력하는 거다. 자원도 없고 내수도 없는 나라로서 협력하는 거다. 양국 협력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국제 통상 전문가로서 세계무역기구(WTO)가 사실상 붕괴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한국은 지금 모든 일을 혼자서 하려고 한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CPTPP를 예로 들면 서로 통상정책도 교환하고, 대화도 한다. 한국이 플레이메이커로서 혼자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이 왜 아직까지 CPTPP 가입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으로 자국 보호주의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래서 단체로 협상해야 한다. 유럽이 힘이 없는데, 룰메이커로 할 수 있는 게 그래도 일단 세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CPTPP는 유럽보다 규모가 크다. 그래서 집단으로서 협상할 수 있다.
―내년 경제 전망을 할 때 긍정적인 요인과 부정적 요인은.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는 게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 국가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인도는 고립돼 있고, 함께 협력하는 공통의 체제가 없어서 그게 좀 아쉽다.
―올해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키워드를 3개만 뽑아준다면.
▲이노베이션, 인공지능(AI), 환경.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는
'지한파' 정치경제학 교수… 한국 등 동아시아 무역에 관심
'지한파'로 꼽히는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와 장기신용은행연구소(LTCBR),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방문교수 등을 지냈다. 지난 2013년 '새로운 시대를 위한 일본-한국 공동연구' 프로젝트에서 경제 부문 위원장을 지냈다. 일본 재무성 외환 위원회, 경제산업성 산업구조위원회 등 정부에 컨설팅 및 자문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주요 관심사는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무역과 경제발전이다. 한 국내 강연에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유럽의 환경 규제로 자유무역체제가 붕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일 협력이 가능한 분야로 스타트업 육성, 고령화 대응, 에너지, 지방도시 활성화 등을 꼽았다. 한국이 수출 주도형 성장에서 내수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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