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 3개월… 신한울 3·4호기 현장
지난달 27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에서 파낸 흙을 굴착기가 25톤 덤프트럭에 옮겨 담는 모습. 흙을 퍼내자 신한울 3호기의 원자로가 올라설 가로·세로 26m 크기의 흰 암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설 현장 뒤로 보이는 건물은 작년 4월 상업 운전을 시작한 신한울 2호기. /장련성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원전이 지진에도 버티려면 원자로를 올릴 단단한 암반층을 찾아야 합니다. 착공 후 석 달 내내 아파트 지하 6층 깊이까지 흙을 파낸 끝에 그 암반을 찾아냈죠.”
지난달 26일 찾은 경북 울진군 북면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 ‘신뢰의 K원전!’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아래에서 굴착기 4대와 공사 인력 10여 명이 25톤 덤프트럭 6대에 흙을 퍼내고 있었다. 3개월간 퍼낸 흙만 덤프트럭 3만대(약 76만톤) 분량. 굴착기가 아파트 지하 6층 깊이(약 16.5m)에서 흙더미를 걷어내자 가로·세로 26m, 높이 3m의 흰 암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전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인 원자로가 놓일 자리다. 원전은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암반 위에 지어야 하는데,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축구장 약 7개(4만8000㎡) 규모 부지에 아파트 27층 높이의 신한울 3호기 건물이 들어선다. 현장 관계자는 “암반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친 뒤, 올 6월부터 콘크리트를 붓고 본격적으로 건물을 올릴 것”이라며 “새해에도 공사를 차질 없이 이뤄내 ‘100년 가는 원전’을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신한울 3·4호기는 ‘탈(脫)탈원전’과 ‘원전 생태계 회복’의 상징이다. 2017년 발전 사업 허가를 받으며 순항하던 이 원전은 그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이며 ‘올스톱’ 됐다. 2023년 준공을 목표로 각종 설비가 발주됐지만,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되면서 수십억 규모 계약이 날아간 중소기업들은 경영난을 겪고, 인력을 줄였다. 한 협력사 대표는 “당시 계약이 전부 취소된 뒤 탈원전 5년 동안은 일감이 없어 공장에 파리만 날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국 |
하지만 전 세계적인 ‘원전 르네상스’ 바람 속에서 2022년부터 ‘탈원전 폐기’는 본격화됐고, 이듬해 1월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신한울 3·4호기는 되살아났다. 5년 넘게 멈췄던 시계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고, 지난해 9월 건설 허가를 받고 첫 삽을 떴다. 준공 시기는 2033년으로 미뤄졌지만, 지난달 찾아간 건설 현장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기한 내에 공사를 마무리짓겠다”는 각오를 들을 수 있었다.
◇국내 K원전 생태계 곳곳 ‘활력’
지난 세밑에도 분주하게 움직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이 보여주듯, 국내 K원전 생태계는 새해에도 활력을 되찾는 분위기다. 2016년 착공해 9년간 공사가 진행 중인 울산 울주군의 새울 3호기도 올해 안에 원안위에서 운영 허가를 받아 연료를 투입할 계획이다. 연료를 투입하면 통상 6개월에서 1년간 검증을 거쳐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앞서 정부가 작년 6월 발표한 ‘제11차 전기본 실무안’에서 대형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2038년까지 더 짓겠다고 밝히면서 원전 관련 대기업은 물론 협력 업체들도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추산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와 중소 협력 업체 등 민간에서 설비에 자체 투자한 규모는 2023년 4880억원, 원전 산업 전체 매출도 32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수원이 이 기업들과 맺은 계약도 2023년 3조3000억원에 달해, 2년 만에 9000억원 늘었다.
지난달 26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에서 공사 장비들이 흙을 파내고 있는 모습. 사진 중앙에 있는 가로·세로 26m 크기의 흰 암반 위에 신한울 3호기의 원자로가 올라선다. /한국수력원자력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글로벌 시장 노리는 K원전
K원전의 경쟁력은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가고 있다. 지난 한 해 K원전은 체코·루마니아·불가리아 등 세계 곳곳에 수출되며 야심 찬 ‘턴어라운드’를 시작했다. 작년 7월 한수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24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은 오는 3월 최종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현대건설이 작년 11월 설계 계약을 체결한 약 10조원 규모의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도 올해 말 EPC(설계·조달·시공)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원전 리모델링’ 사업으로도 외연을 넓힌 우리 원전은 지난달 루마니아에서 1조2000억원 규모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 개선 사업’의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전력은 오는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1400㎿ 규모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에 입찰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에미리트(UAE)가 2032년 가동을 목표로 원전 최대 4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협의도 진행 중이다.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SMR 파운드리 분야도 해외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테라파워의 첫 SMR 사업에서 주기기 공급사로 선정됐고, 뉴스케일파워와도 계약을 맺었다. 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센터장은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원전 시장은 기술력과 잠재력이 뛰어난 한국에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울진=조재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