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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노트북을 열며] 입법 취지로 살펴본 내란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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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현준 국제부 기자


역사는 소모적 논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과거에 제기되고 해결된 사안을 현재의 쟁점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12·3 계엄 사태로 제기된 쟁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내란죄 주체로 볼지, 동기를 참작할만한 내란이란 게 있는지, 탄핵과 수사 중 어느 쪽을 먼저 할지 등은 내란죄의 역사를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다.

현대적 내란죄는 1912년 조선형사령으로 한반도에 일본 형법이 적용되면서 시작했다. “정부를 전복하거나, 국토를 참절하거나, 기타 조헌(朝憲)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하여 폭동을 한 자”를 처벌토록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국토참절 목적’을 이유로 내란죄에 걸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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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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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친위 쿠데타에 대한 일본 대심원(우리의 대법원 격)의 태도다. 1930년대 들어 일본군 장교들이 전·현직 총리들을 잇달아 살해한 사건에 대해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의회제도 자체를 부인한 게 아니라 내각 구성원의 변동만 초래했을 뿐이라는 논리다. 친위 쿠데타에 대한 면죄부였다.

1953년 제정된 우리 형법은 정반대 태도다. 반독재를 내건 엄상섭 의원이 입법을 주도해서다. 내란죄의 핵심인 국헌문란의 뜻을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 소멸, 국가기관 전복 등”으로 법에 못 박았다. “친위 쿠데타를 합법화하는 해석론이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라고 한다(신동운, 『형법각론』).

엄 의원은 1955년 추가논문도 발표했다. 내란범은 “의회나 법원의 권리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의사당이나 법원을 둘러싸고 폭동을 한 자”라며, 이 경우 “동기 여하를 막론하고 내란죄 (성립)”라고 했다. 학계에선 이승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이 탄 통근 버스를 통째로 끌고 간 뒤 발췌 개헌에 이른 사건(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본다. 동기 불문이니 “경고성 계엄” 같은 변명도 발붙일 여지가 없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내란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면 무엇을 우선 해야 할까. 헌법을 제정하던 제헌 국회에서 질문이 나왔다. “이것(내란 수사)은 지극히 중대하고도 급한 것이니까, 그런 때에는 탄핵을 기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헌법 기초자이자, 초대 검찰총장 출신인 권승렬의 답변이다. 내란 수사부터 하란 취지다(1948년 6월 28일 속기록).

국가적 혼란이 몇 달을 더 갈지 알 수 없다. 외신은 ‘혼돈에 빠진 한국’을 연일 보도 중이다. 지난 날 이미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거나 입법 취지가 명확한 사안은 쟁점에서 제외해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는 게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방편이 되리라 믿는다.

박현준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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