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 시무식서 '2025년 신년사' 발표
통화정책보다 경제·구조개혁에 할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발표한 데 대해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최 권한대행이 대외신인도 하락과 국정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서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한은 본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발표하며 "이는 앞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치 프로세스와 독립적으로 정상 작동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이같이 말했다. 최 대행이 헌법재판관 3인 중 2인 임명과 '쌍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이후 여당과 대통령실 참모진의 강한 반발로 코너에 몰리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 총재는 "최 대행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비판할 때는 최 대행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에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를 고려해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국정의 책임이 있는 국무위원들이 그런 결정을 했다면 어떤 함의가 있는지 한번 고려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 신용평가사에서 하는 신용 평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해외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여야가 국정 사령탑이 안정되도록 협력해야 할 때"라며 "한국은행도 풍랑 속에서 중심을 잡고 정부 정책에 조언하며 대외 신인도를 지켜내는 방파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관심이 금융·외환시장 불안을 넘어 국정 컨트롤타워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로까지 확대됐다"며 "정치적 갈등 속에 국정공백이 지속될 경우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어 국정 사령탑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이외에도 신년사를 금리 인하나 통화정책에 대한 언급에 할애하기보다 현 경제적 상황에 대한 고찰과 구조개혁에 대한 언급을 이어갔다. 그는 "현 상황에서 통화정책만으로 우리 경제를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왜 통화정책 목표 간 상충관계가 갈수록 심화되어 통화정책의 손발을 묶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며 "금액 기준으로만 보면 지난해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둔화된 이유는 우리 수출 구조가 다변화되지 못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몇몇 주력 상품 위주로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밸류업을 위해 기존 기업의 배당률을 제고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경제 부문 만큼이라도 혁신을 제한하거나 기득권을 보호해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규제들을 하루속히 걷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480원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과 관련해서도 거론했다. 그는 "지난해 900억 달러 수준의 높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며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 상응하는 자금을 외국인과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빼 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우리 주식시장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 투자자들이 떠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며 "이렇게 해외로 자금유출이 계속되면 국내시장에서는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실기론에 대해선 "가계부채 관리를 좀 미루고 경기 부양에 더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그렇게 하면 당장의 경기둔화 고통을 줄이고자 미래에 다가올 위험을 외면해 왔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2%를 밑도는 성장률의 절대 수준만을 과거와 비교하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로만 사용한다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기적인 부양과 함께 고통스럽더라도 구조조정 문제에 집중해서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일례로 추경을 통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도와주더라도 이들의 현상 유지를 위한 지원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연체율이 치솟고 있는 자영업자에 대해선 "전체 취업자중 자영업자 비중은 23.2%로 미국(6.1%), 유로지역(14.1%) 등 주요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라며 "이 비중이 점차 낮아질 수 있도록 채무조정, 전직 교육, 퇴직자의 재취업 기회 제공 등을 통해 자영업자들이 보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진출하게 도와주는 구조조정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손자병법의 '근심을 이로움으로 삼는다'는 이환위리(以患爲利)를 언급하며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마라'라는 서양 격언은 모두 '위기는 곧 기회'라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가르쳐 준다"고 했다. 이어 "우리 모두가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해야할 것부터 차분하게 실천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서민지 기자 vitaminj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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