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계엄부터 權 비대위까지
국민의힘이 우리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쇄신해 나가겠다. 국민 기대에 부응하겠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일 첫 비대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12·3 불법계엄을 선포한지 한달 만에 국민의힘은 권영세 비대위를 출범시키며 본격 수습에 나섰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쇄신"을 입에 올리며 국민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지난 한달 간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 반대', '헌법재판관 임명 반대' 등 을 외치며 탄핵 민심을 거스르는 길만 걸어왔다. 불법 계엄 선포 직후 18명 의원들이 비상계엄해제결의안에 동참해 비상계엄을 막아냈고, 12명 소신파의 결단으로 탄핵안을 가결 시켰지만 거기까지였다. 탄핵 찬성을 주도하며 그나마 민심과 조응하려 했던 한동훈 전 대표 체제가 붕괴된 이후 국민의힘은 민심과 역행하는 선택만 고집해왔다. 윤 대통령을 '박절'하게 끊어내지 못하면서, 국민과는 갈수록 멀어지는 패착이었다. 권영세 비대위 출범을 계기로 달라질 수 있을까. 지난 한 달 민심의 심판대 앞에서 허우적댔던 국민의힘 주요 순간들을 6개의 장면으로 정리해봤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지난해 12월4일 새벽 무장 계엄군이 국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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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불법 계엄 함께 막았지만 = 지난달 3일 밤 윤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불법 계엄을 선포하자, 한동훈 전 대표는 1시간이 채 안 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고 못 박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메시지를 냈다.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막아선 가운데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에 모인 190명 여야 의원들은 계엄 선포 3시간 만에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친한동훈(친한)계와 중립 성향 국민의힘 의원 18명도 참여했다. '원외'인사인 한 대표는 본회의장을 지키며 여당 의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 시각, 국민의힘 의원 90명은 여의도 당사에 모여 TV 화면에서 중계되는 결의안 가결 장면을 지켜만 봤다.
②'비겁한' 탄핵 보이콧 = 불법 계엄 사태 나흘 만인 7일 국회에는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상정됐다. '내란 피의자'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민심에 호응한 국회의 응답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고, 표결 자체도 '보이콧'했다. 의원 108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하지 않으면 투표가 불성립한다는 점을 노려, 이탈표 자체가 나오지 못하도록 헌법기관의 투표 의무를 틀어 막고 나선 것이다. "당당하게 표결에 참석해야 한다"(김재섭)는 의견이 나왔지만 동조하는 의원은 10여 명에 그쳤다. 결국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이 당론에 따르지 않고 표결에 참석했지만, 정족수 미달로 탄핵안은 투표 불성립 폐기됐다.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는 탄핵안 표결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③'도로 친윤당' 권성동의 귀환 = 국민의힘은 12일 새 원내대표에 '원조 윤핵관' 권성동 의원을 선출했다. 총 투표수 106표 중 72표를 몰아줬다. 탄핵안 자율표결을 내세운 중립 성향 김태호 의원은 34표에 그쳤다. 사실상 '도로 친윤당' 회귀를 알린 셈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 등 윤 대통령의 재판 지연 전략에 발맞춘 듯한 발언을 내놓으며 노골적 엄호에 나섰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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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탄핵 가결에 갈등 폭발 = 탄핵안 부결 일주일 만인 14일 윤 대통령 탄핵안이 다시 본회의에 올랐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유지했지만, 여론의 거센 비판에 투표엔 참석하기로 물러섰다. 자율투표 결과 윤 대통령 탄핵안은 찬성 204명 반대 85명, 기권 3명, 무효 8명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에서 최소 12명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해석됐다. 탄핵 가결은 그러나 더 큰 갈등의불씨가 됐다. 가결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친윤석열(친윤)계는 비례대표가 다수인 친한계를 향해 "너네 다 탈당해"라며 극언을 쏟아냈고, 탄핵 찬성파를 향한 집단 린치가 이어졌다. 우위를 점한 탄핵 반대파가 오히려 탄핵 찬성파를 윽박지르면서 국민의힘을 향한 민심은 더욱 싸늘해졌다.
⑤한동훈 체제 붕괴, 사라진 소신파 = 한 전 대표는 탄핵안 가결 이틀 뒤인 16일 사퇴했다. 애초 "탄핵 투표 제가 했느냐"며 대표직을 지키겠단 의지를 밝혔지만, 친한계인 장동혁 진종오 최고위원이 14일 의총에서 사퇴를 선언하며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한 전 대표의 퇴장에 권성동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까지 겸직하며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에 목청을 높인 친윤계가 장악했다. 그나마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던 한 전 대표가 물러나면서, 국민의힘은 강성 보수층을 의식한 주장만 쏟아내기 바빴다. 그나마 남아 있던 당내 견제 목소리도 자취를 감췄다.
⑥권영세 비대위는 다를까 = 국민의힘은 구원투수로 권영세 비대위원장을 30일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 비대위원장은 비교적 합리적 성품에도 '친윤 꼬리표'를 피할수 없었다. 비대위는 쇄신과 화합을 강조했다. 계엄 해제에 찬성한 김용태 의원과 김재섭 의원이 각각 비대위원과 조직부총장에 임명됐지만, 구색 맞추기에 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권 비대위원장은 첫 일성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명확한 규정 없는 '모호한 사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를 언급하며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논란이 일었다. 강성 지지층에 고립된 국민의힘이 쇄신의 깃발을 세워 민심의 신뢰를 회복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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